곽병찬 논설위원
지난 4·11 총선을 앞두고 야권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에 대해 ‘이명박근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대통령과 차별화에 애쓰고는 있지만, 결국 이명박과 박근혜는 샴쌍둥이라는 것이었다. 선거판에서 항용 나타나는 프레임 전쟁이었지만 유치했다. 새누리의 재빠른 변신 앞에서 힘을 잃어버린 정권심판론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지만, 공세를 위한 공세로 비쳤다.
당시 새누리당은 이명박의 흔적을 필사적으로 지우려 했다. 당명 개칭, 상징색 교체 등 페인트 칠만 새로 한 것이 아니라, 정강정책 등 노선도 바꿨다. 경제민주화를 정강정책에 포함시키고, 성장에서 복지로, 특권사회에서 공정사회로 좌회전하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명박근혜’는 수준 낮은 말장난 같아 보였다. 결국 정권심판론은 실패했고, 총선은 새누리당의 압승이었다. 이후 대통령선거 국면으로 접어들자 새누리당은 박근혜 당선은 곧 정권교체라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하면 유치한 건 ‘이명박근혜’가 아니라 순전한 화장발에 속아넘어간 안목이었다. 본격적인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비로소 드러난 두 사람의 관계는 연리목을 연상시킨다. 뿌리는 다르지만, 자라면서 서로 부대끼다가 몸통이 달라붙어버린 나무 말이다. 엊그제 내곡동 사저 특검의 수사 기한 연장을 거부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태도는 그 상징이었다. 박 후보는 국가 재산을 빼돌린 혐의를 받은 이 대통령 일가의 보호자로 나섰다.
돌아보면 이런 2인3각의 동행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엽기적인 과거사 인식이나 강탈재산 정수장학회 문제로 박 후보가 궁지에 몰렸을 때 정문헌 의원 등 이 대통령의 아전들은 터무니없는 서해 북방한계선 문제를 제기해 국면을 바꿨다. 심지어 이 대통령 자신은 돌연 연평도를 방문해, 빈 바다를 향해 주먹 불끈 쥐고 엔엘엘 사수를 외쳤다. 그 보답으로, 철책이 뚫린 ‘노크 귀순’ 사건에 대해 새누리당 대변인은 “고작 한 명 넘어온 것 가지고 뭐”라고 정부를 옹호했다. 이 정권은 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사실상 박정희 박물관처럼 운영할 전시기획까지 해놓는 등 박 후보에게 한 상 거나하게 차려 안겼다. 압권은 방송 장악 공조였다. 이 대통령의 하금열 비서실장과 박근혜의 김무성 선거대책본부장은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 해임 의결을 막았다. 내친김에 한국방송 사장 후보로 골수 여당 성향의 길환영씨를 뽑았다.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사내 구성원의 검증 작업도 생략했다.
총선에서 엠비 지우기로 한몫 톡톡히 챙긴 뒤 대통령선거 국면에선 정권의 힘이 필요했던지, 이 대통령과 한 몸이 된 셈이다. 방송만 해도 티브이 토론을 회피하기 위해서도 친정권 방송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후보는 화장발 뒤의 본래 얼굴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원칙과 신뢰의 포장이 벗겨지고, 변칙과 술수의 맨살이 드러난 것이다.
이미 확인된 것처럼 경제민주화는 구호에 불과했고, 혁신하겠다던 재벌을 동반자로 삼아버렸다. 이 대통령을 도와 내곡동 사저 특검을 좌초시킨 것은 엊그제 그가 발표한 정치개혁 공약의 허구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의 공약은 부패 척결과 기득권 포기를 뼈대로 상설 특별검사제와 친인척 관리 특별감찰관제의 도입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는 최고 권력의 비위 수사를 방해하고, 비위 행위를 보호했다. 반부패 공약은 거짓이었다.
최근 부산의 한 택시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후보요? 약속한 것은 지키잖습니까.” 부산 출신의 두 후보가 있는데도, 여전히 경북 출신의 박 후보가 부산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는 까닭은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과 달리 과연 그는 신뢰의 정치인인가. 새누리당 비주류 쪽 인사는 박 후보 쪽의 말 뒤집기를 ‘습관적’이라고 말했다. 김재철 사장 문제에 대해 ‘내가 책임지고 하겠다’고 보증한 것은 박 후보였다고 한다.
요즘 박 후보의 얼굴에 이명박의 얼굴이 포개져 나타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박 후보를 판단하는 게 어려우면, 이 대통령에 대한 판단을 대입해도 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권심판론이 복원돼야 하는 까닭이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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