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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안철수, ‘인간의 얼굴’을 한 이명박 / 박가분

등록 2012-09-23 19:23

박가분 자유기고가
박가분 자유기고가
안철수가 출마 의지를 밝히자 대선 판도가 요동을 치게 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그를 둘러싼 여론의 변동이다. 출마 직전에 조사된 그의 지지율은 박근혜, 문재인과 비견해 볼 때 그리 높지 않았다. 또한 여론은 그의 출마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깨끗한 인물이 정치판에 더럽혀지지 않길 바라는 심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출마와 함께 발표된 기자회견문은 즉각적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그의 지지율이 삽시간에 반등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반전의 진짜 비밀은 대중이 그러한 드라마틱한 ‘반전’을 처음부터 기대했던 데에 있는 건 아닐까?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은 여론이 지닌 이러한 자기반영성이다. 출마선언을 하는 즉시 대중이 마음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여론에 반성적으로 고려되었기 때문에 그의 출마선언이 여론상에서 그를 ‘정치와 무관한 경영인’에서 ‘상식과 소통의 정치를 시작할 새 인물’로 바꾼 것이다.

안철수가 밝힌 비전은 ‘상식’과 ‘소통’이다. 이것이 대중에게 먹히는 것은 그만큼 지난 정치판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가 표방하는 이러한 가치들은 이전의 정치적 수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가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그가 정치권 바깥에서 공정한 게임의 룰을 지키며 기부를 행하는 등의 사회참여를 묵묵히 해온 데서 보이는 ‘진정성’이다. 그럼에도 안철수의 정치적 행보는 이전 정치권이 보여준 ‘탈정치’를 향한 행보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 극단에 도달해 있다. “죽음으로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시대는 끝났다”는 노무현에서부터 자칭 경제 대통령 이명박을 이어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선”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겠다는 안철수가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안철수의 비전에 담긴 탈정치적 핵심을 직시해야 한다. 이제 정치는 사회를 가로지르는 첨예한 적대에서 출발하여 보편적 정의(발리바르의 말을 빌리자면 ‘평등-자유’)를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게임의 룰 내에서 규칙을 공정하게 협상하고 준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게임의 룰 전체를 뒤바꾸는 급진적 정치는 자리를 잃게 된다. 정치를 이러한 ‘합리적 행정’으로 환원하는 데서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이명박에 가깝다.

대선 행보 속에서 안철수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추진해 왔던 이헌재를 멘토 삼았다는 사실은 덜 부각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안철수가 ‘복지’보다는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시장개혁’을 우선시하는 합리적 우파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진보주의자들의 불평은 복지라는 전통적인 진보적 의제가 복지 시스템을 지탱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시장경제를 전제하고 의존한다는 사실에 눈감고 있다. 성장담론과 복지담론은 동전의 양면이며 이에 따라 복지라는 화두는 그 자체로는 어떠한 정치적 급진성도 담보할 수 없다. 이런 착종된 정치적 현실 속에서 차별화를 꾀하는 일부 좌파들의 대선 대응에 관한 논의 속에서 진정한 급진적 정치가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나 징후를 찾기 힘들다. 복지와 성장 프레임 모두 안철수 식의 ‘합리적’ 우파가 선점한 상황에서 ‘비정규직/정리해고 철폐’와 같은, 현 체제에서 불가능한 요구를 고장난 자본주의의 질서를 고치겠다고 자처하는 개혁가들의 면전에 던질 필요가 있다. 그러한 요구를 중심으로 결집할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형성이 시급하다.

박가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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