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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 / 윤지영

등록 2012-09-16 19:29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직장폐쇄에 맞선 노동조합, 이 사례를 기반으로 어떻게 노조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지 설명해 보시오.” 프랑스 시민교육 중학교 4학년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다. 프랑스는 초중등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시민교육을 개설하고 학생들에게 노동자의 권리, 노동조합의 권리를 가르친다. 며칠 전 교육방송 <지식채널e>는 ‘그 나라의 교과서’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의 시민교육을 소개하였다. 그러고 보니 영국도 정규 교과과정에서 아르바이트 때 점검 목록 등 노동에 관한 구체적인 권리 내용을 가르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독일의 노동교육은 더욱 철저한데 초등학교 때부터 사용자 쪽과 노동자 쪽으로 나뉜 아이들이 수차례에 걸쳐 직접 모의 단체교섭을 벌인다.

방송을 보니 지난 경험이 떠오른다. 학교에 찾아가서 중학교 3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노동권 교육을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업에 관심이 없었으며 몇몇 아이는 대놓고 다른 교과서를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우리가 오늘 다루는 내용은 여러분이 노동자가 될 때뿐만 아니라 사장이 될 때에도 필요한 것이에요. 훗날 여러분이 사장이 되면 오늘 다루는 이야기를 기억해야 해요.” 이 말을 한 뒤에야 아이들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였다. 수업이 끝난 뒤 담임교사에게 아이들의 반응을 전달하였는데 당연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들은 노동자가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질책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우리 교육을 되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정규 교과과정에는 노동교육이 없다. 고등학교 ‘법과 사회’ 과목에 노동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기는 하나 선택과목인데다 그 내용이 지극히 적고 형식적이어서 사실상 교육 기회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성화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일터에 나가지만 아이들은 자신에게 어떠한 권리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뿐이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오로지 입시공부만 할 것을 강요한다. 노동이야말로 살아 있는 교육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일하는 청소년을 문제아 취급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하다가 다치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이 하소연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서른살이 되고 마흔살이 될 때까지 노동권이나 노동3권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이 사회의 주역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네 삶은 이렇게 팍팍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사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역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듯이 노동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노동의 존엄한 가치와 노동자의 권리를 어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작년 11월 고용노동부는 청소년들이 일하다가 발생한 문제를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103개 학교에 안심알바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전담교사를 배치하겠다고 홍보하였다.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교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모니터링을 했다. 대부분의 학교가 이름만 걸어놓고 운영을 하지 않았다. 설치 사실을 모르거나 ‘우리 학교는 아르바이트를 금지하고 있다’고 대답한 교사도 상당수 되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고용노동부는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은 채 최근 안심알바신고센터 설치 학교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전시행정의 극치라고나 할까. <지식채널e> 방송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 “시민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원하게끔 하는 데 있다.” 레옹 베라르 전 프랑스 교육부 장관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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