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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진보정치와 노동자들의 정치 / 박가분

등록 2012-08-26 19:22

박가분 자유기고가
박가분 자유기고가
최근 진보신당에서 ‘사회연대를 위한 2012년 대선운동을 제안한다’라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진보신당은 지난 총선 때 원외정당으로 전락했지만 통합진보당의 내홍으로 정치적 기회를 얻었다. 게다가 다가오는 대선은 진보정치의 패권주의와 낡은 관행을 청산하고 새로운 진보좌파세력이 시험대에 오를 중요한 정세이다. 그런데 해당 기자회견에서 드러난 시대인식은 다소 실망스럽다. 이는 정치적 지지기반 없이 ‘구별짓기’를 통해서만 선거에서 주목받고자 안간힘을 쓰는 급진좌파들이 처한 곤경 어린 현실에 대한 서글픈 스케치를 보여준다.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낡은 정치의 대안임을 자처해야 할 진보정치”는 오늘날 통합진보당의 스캔들에서 볼 수 있듯 “사망선고”를 받았으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에도 무력하다. 그 주된 이유는 진보정치가 “거대 조직노동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리정치기구에 불과”했던 데 있다. ‘거대 조직노동’에 기초해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겨냥했던 이들이 역으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와 같은 ‘배제된 노동’을 버림으로써 “진보정치의 파탄에 근원적인 책임”을 지게 되었다. 따라서 “역사적 소임을 다한 이 진보정치 역시 새로운 주체형성을 위해 (…)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귀족노조’ 프레임을 충실히 계승한 이 기자회견이 행한 ‘거대 조직노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사실관계에서도 어긋난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오늘의 노동 현실에 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비정규직화/정리해고에 앞장서 투쟁했던 주체 역시 전국적 조직노동에 기반한 민주노조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진보의 죽음’이라는 선정적 표현을 통해 ‘청산 대상’이 된 거대(?) 조직노동 운동이 수행한 96~97 총파업과 2003 비정규직 철폐 요구 및 열사 정국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마저도 거대 조직노동이 ‘배제된 노동’을 저버리는 과정의 ‘슬픈 전주곡’에 불과했다고 한다면 이는 황색언론의 질 나쁜 농담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거대 조직노동’과 ‘배제된 노동’의 저 서툰 이분법은 현실의 투쟁 앞에서 무의미해진다. 예컨대 에스제이엠(SJM)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적 저항은 억압적 ‘거대 조직노동’과 저 애처로운 ‘배제된 노동’ 중 어디에 위치시켜야 하는가?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탈산업사회’를 운운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그와 그들의 표면상 적대자들인 정치적 급진파들이 어떻게 물질적/산업적 생산영역 및 그곳에서의 광범위한 조직적 투쟁이 효력을 상실했다는 주장(그 바깥에서의 담론적 호명이 때로는 더 중요하다 등등)을 공유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 극단주의란 실상 그와 반대되는 것, 즉 경제적 질서의 ‘토대’를 뒤흔들지 못하는 무능력을 증언하는 히스테리적 분출에 불과하다고 답해야 한다. ‘배제된 노동’에 대한 신파조에 가까운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태도 역시 불안정 노동을 양산한 실제적 원인으로부터의 후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대공장/정규직/남성 중심 노동운동을 비판해야 할 곳에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분할지배’ 전략을 간과한 채 그것을 단지 도덕적 문제로만 치환하고 있는 것이다.

신좌파들의 이러한 정치적 조급증에 맞서 좀더 차분한 자세로 노동의 분할에 맞선 노동자들의 ‘조직적 저항’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오늘날 정치적 주체로서의 노동계급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배제된 노동’의 호명을 둘러싼 탁상공론이 아니라 ‘현실의 투쟁’에서 찾아야 한다.

박가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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