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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노동 범죄에 관대한 사회 / 윤지영

등록 2012-08-19 18:50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에스제이엠(SJM) 폭력사태를 계기로 경비용역업체에 관한 기사가 연일 지면을 장식한다. 그중 학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경비용역업체의 모집공고에 응했다는 어느 20대 청춘이나 경비학과를 졸업한 뒤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서 경비용역업체에 들어갔다는 어느 30대 청춘에 관한 기사는 나를 슬프게 한다. 그들 역시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회사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했다고 한다. 가진 것 없는 자들끼리 싸우는 상황도 슬프고 그들을 가난과 실업으로 내몬 현실도 슬프다. 하지만 가장 슬픈 건 자신들이 한 행위가 범죄라는 것을 모르게 만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강도질을 해서는 안 된다. 설사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하더라도 그런 행위는 합리화될 수 없다. 그것은 상식이다. 살인이나 사기, 폭력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실을 그들이 모를 리 없다. 일상에서 그들은 범죄를 저지를 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노동자들에게는 폭력을 휘둘렀던 것일까. 노동자들의 파업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에 맞서는 자신들의 행위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했던 것은 아닐까. 일반적인 폭력은 죄가 되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은 정당방위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노동권,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의 가치를 그들이 알았더라면 선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비단 그들만이 노동권, 노동3권에 무지한 것은 아니다. 노동력은 인격과 결부되어 있고 생존을 좌우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헌법도 노동권, 노동3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노동권, 노동3권을 사용자가 가지는 재산권과 같은 수준의 것으로 판단한다. 노동자가 파업을 개시하면 사용자는 직장폐쇄로 맞선다. 노동자가 해고의 부당성을 주장하면 사용자는 경영상 이유를 들먹인다. 임금을 체불하거나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사용자는 ‘나도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을 이유로 댄다.

그러나 사용자의 재산은 사용자만의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용자가 자기 것이라고 내세우는 사업장은 노동자의 일터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법체계는 노동권, 노동3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범죄로 간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용자의 재산권과 국가경제를 반대 논리로 제시하며 노동권, 노동3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에는 유독 관대하다. 사용자는 아무렇지 않게 노동법을 위반하고 경찰과 검찰은 합의와 불기소처분으로 사건을 축소한다. 사법부나 입법부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 대통령마저 고소득 노조의 파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막말을 내뱉지 않는가.

범죄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는 가해자를 범죄에 무뎌지게 하는 것처럼 피해자도 피해에 무뎌지게 만든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피해에 무뎌진 사람은 자신한테 주어진 권리를 애초부터 포기하거나 아예 그러한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를 피해자의 지위에 맞추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잘못된 것을 바꾸려는 노력을 단념하고 정당한 권리를 가진 자를 끌어내리는 데 혈안이 되기 쉽다. 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을 비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투쟁을 비난하는 실업자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노동권, 노동3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에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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