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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병역의무에서 시민적 의무로 / 박가분

등록 2012-07-29 19:09

박가분 자유기고가
박가분 자유기고가
한국에서 병역의무는 젊은 남성들의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권리의식의 신장으로 이런 고된 의무를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지만, 한편으로는 병역의무를 회피한 특권층과 유명인사에 대한 격한 반발심 역시 존재한다. 이 때문에 소위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에 대한 논의마저 질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병역의무란 이렇듯 젊은 한국 남성들의 깊은 콤플렉스뿐만 아니라 결속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내셔널리즘이 공동의 비참한 기억을 곱씹는 것에서 형성되듯 군대에서의 비참한 경험 역시 젊은 남성들에게 유사한 결속감을 제공한다. 이를테면 부조리한 상명하달이 존재한다면 다른 한편에는 이에 반발감을 느끼며 서로를 챙겨주는 전우/동기의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공동체 의식의 뿌리가 된다. 이 때문에 노골적인 권위주의 문화로부터 탈피하게 된 현대사회에서도 역설적으로 징병제로부터의 이탈은 어려워질 수 있다. 사회가 경쟁에 의해 불안해질수록 징병제와 같은 과거의 ‘억압적’ 국가장치들이 공동체 안에서 오히려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떠맡기 때문이다. 오늘날 군대는 호전적인 군사주의적 가치를 단언하는 것을 넘어서 공동체의 미덕을 내면화하는 재교육의 장으로 스스로를 홍보하기도 한다.

그동안 병역의무를 통해 한국 사회에 수용된 군사주의적/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비판이 줄이어 제기되었다. 그런데 군대를 폐지하자는 이상론으로 나아가지 않는 이상 병역의무에 대한 이런 비판은 모병제 이상의 대안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군사적 폭력성과 모험성에서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 역으로 전국민이 연루된 징병제를 채택하기 때문에 섣부른 군사적 모험을 저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징병제에 대한 소극적 비판을 넘어선 긍정적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병역의무를 섣불리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다면 오히려 이를 과감하게 확장하는 쪽을 생각할 수 있다. 만일 병역의무를 단순히 ‘일부 남성’들만이 떠맡는 ‘군사주의적 의무’가 아니라 남녀 구분 없이 모두가 떠맡아야 하는 시민적/보편적 의무로 확장한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반드시 모두가 총을 들 필요 없이 각자가 자신의 특성을 살려서 사회복지 영역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종사할 수 있다든지 말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사회적 복무제’의 골자이다. 그런데 이런 제도가 일방적으로만 부과된다면 징병제와 다르지 않고 오히려 사회적 필요와 무관한 거대한 관료제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복무제도에도 아래로부터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최근 진보신당 청년당원들이 병역의무자들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라는 소를 제기했듯, 군인 쪽에서도 시민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적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보편적/시민적 의무’라는 것이 성립된다.

이런 생각에 반발감을 느끼는 쪽은 되레 병역의무를 수행한 남성들일 수 있다. 자신들만의 병역의무는 비참함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유한 결속감의 원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병역의무의 희생자들은 전도된 우월성을 획득한다. 오히려 다른 곳에서라면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는 비장애 남성들의 비참에 여성과 장애인들이 ‘공감’해줘야 할 처지에 있게 된다. 그러나 만일 모두가 시민적 의무에 참여한다면 더는 누군가의 비참에 전도된 방식으로 공감해주는 식으로 공동체의 결속감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박가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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