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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청년과 마르크스 / 박가분

등록 2012-07-01 19:14

박가분 자유기고가
박가분 자유기고가
20대에 마르크스주의에 빠지지 않았다면 바보이고 40대에 마르크스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해도 바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는 이 역시 옛말이다. 20대에 마르크스주의에 빠지는 사람들은 이제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음에도 마르크스와 젊음 사이의 연관은 자명하게 여겨진다. 마르크스 관련 강연 홍보물을 보면 ‘젊은이여, 자본론을 읽자’라는 식의 구호를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정치적 허무주의의 냄새를 풍기는 <상실의 시대>라는 일본 소설에서도 젊음의 고뇌를 안고 있던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미도리가 ‘자본론을 읽어보았느냐’고 묻지 않는가?

마르크스에 빠지지 않은 20대가 바보라는 말은 지금은 부당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마르크스를 권하는 분위기가 다시 형성된 것은 맞다. 최근 우치다 다쓰루의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라는 책이 번역된 것도 이런 사정과 멀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마르크스와 ‘청년 이후’와의 연관에 대해 별로 말하지 않는다. 오늘이라면 ‘20대에 마르크스를 읽는 것이 여전히 바람직하지만 이후에도 빠져나오지 못하면 바보’라고 말할 것이다. 마르크스를 20대 이후에 졸업하는 것이 좋다는 사고는 변하지 않았다. 과거를 풍미했던 포스트모던 사상도 그러한 졸업의식에 기인한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청년성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자신만만한 자의식이 시대를 지배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질곡을 겪으며 다시 청년성을 요청하는 시점으로 퇴행한 것이다. 마르크스를 청년기와 연관시키는 전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청년기가 아니라 오히려 성숙함과 연관되어야 한다.

우치다 다쓰루의 언급은 시사적이다. “젊은이들이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한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감과 연민, 양심의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으로, 어른이 되는 길을 찾는 방식으로 읽혀야 한다.” 마르크스는 청년기의 낭만이 아니라 어른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공감과 연민, 양심의 고통만으로는 어른이 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20대에 형성해야 할 중요한 미덕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마르크스 외에도 그것을 함양할 방법은 많다. 오히려 마르크스를 읽는 요점은 사회적 문제를 이성적으로 고민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기에는 어느 때보다 타인의 불평등, 빈곤, 사회적 위기에 민감하다. 그러나 청년들이 마르크스를 통해 입문해야 할 물음은 다른 것이다. ‘불평등을 계급과 무관하게, 빈곤을 경제적 착취와 무관하게, 위기를 자본축적과 분리해서 다룰 수 있는가?’

20대에 사회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나는 오히려 20대에 마르크스를 반드시 읽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20대에는 자본 자체를 건드리지 않고서 사회문제에 대한 개혁주의적/온정주의적 접근을 취할 수 있다. 오히려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시점은 ‘공감, 연민, 양심의 고통’만으로 아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의 장벽에 이미 부딪혀 본 어른이 되었을 때이다. 마르크스를 읽지 않은 20대가 바보라 할 수 없지만, 40대를 넘어서도 마르크스를 진지하게 읽지 않았다면 바보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자본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젊은 시절에 타인에 대해 가졌던 아름다운 연민의식이 소시민적인 자기연민으로 변질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박가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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