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도로가 참 한산하구나.’ 택시기사들이 파업에 돌입한다더니, 그 사실을 보도가 아닌 도로를 보며 실감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우리나라에 이렇게 택시가 많았나.’ 기사를 찾아보니 전국의 25만대가 넘는 택시 중 20일 하루 동안 약 22만대가 멈췄다고 한다. 서울에도 7만대가 넘는 택시가 있는데 8000대만 운행을 했다고 한다. 택시의 수에 놀라고 파업 참가율에 또 한번 놀란다. 그런데 다른 기사가 눈에 띈다. “택시 파업, 퇴근길 대란은 없었다.” 전국의 택시가 멈췄음에도 퇴근길 대란이 없었다면 그동안 택시기사들은 얼마나 적게 벌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래서일까. 파업 참가자들의 요구사항에는 ‘택시요금 인상’이 들어 있다. 택시요금이 오르면 운송수입도 늘고, 운송수입이 늘면 택시기사의 수입도 늘어날 거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최소한 이런 논리는 택시회사 소속 택시기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요금 인상을 이유로 택시회사는 사납금을 올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다. 그래서 볼멘소리를 내는 택시기사도 있다. 가뜩이나 손님도 없는데 택시요금마저 오르면 우리는 뭘 먹고 사냐고.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택시지부도 이번 파업에 관해 ‘택시사업주 대변자 민주택시-전국 택시를 규탄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택시사업주의 배를 불리기 위해 택시회사와 어용노조가 선량한 택시기사들을 강제로 동원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파업은 노동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하기 마련인데 이번 파업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함께 벌인 것이다.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내막을 알기 위해서는 택시업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회사 소속 택시기사들은 매일 회사에 정해진 사납금을 내고 나머지 운송수입을 임금으로 가져간다. 사납금의 액수는 차종, 운행시간, 지역 등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보통 십만원 안팎이다. 따라서 택시회사에는 택시기사 수에 사납금을 곱한 액수만큼의 돈이 매일 안정적으로 들어온다. 반면 택시기사로서는 손님을 몇명 태웠나, 장거리를 얼마나 뛰었나에 따라서 운송수입이 달라지기 때문에 임금 역시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택시회사는 운행에 필요한 연료 중 일부만 제공한다. 나머지는 택시기사가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 결국 수입에서 사납금과 가스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며칠 전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하루 동안 택시 운전을 하고 9만7800원을 벌었으나 가스 충전을 한 뒤 돈이 부족해 자신의 돈 만원을 보태 사납금을 채웠다는 기사도 나오던데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있다. 관행으로 여겨지고 있는 사납금제가 실은 불법이라는 점이다. 사납금제가 택시기사를 착취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교통사고가 다발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관련법령의 개정으로 1997년 택시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를 도입하였고 연료비도 모두 택시회사가 부담하도록 한 것이다. 택시기사도 버스기사처럼 안정적인 월급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사납금제 폐지’, ‘완전 월급제 쟁취’를 내걸지 않은 이번 파업이 석연치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문수 지사가 이번 파업의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경험을 통해 택시기사의 고충을 잘 안다던 그가 사납금제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택시기사 복장을 하고 단상에 나선 그는 하트를 그리며 인사를 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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