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소설가
전 재산이 29만원이었던 전직 대통령이 있다. 수천억원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2205억원의 추징금을 내야 하는 전 대통령. 그는 전 재산이 29만1000원뿐이라며 그만큼의 추징금만 내고 빈털터리가 됐다. 2010년 강연 수익으로 300만원을 벌었지만 그마저도 추징금을 내는 데 써버렸다. 때는 마침 추징 시효가 끝나가던 시기였다. 적은 돈이라도 내지 않으면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300만원의 추징금을 낸 덕분에 추징 시효는 다시 2013년으로 연장되었다고 한다.
그는 비록 가난하지만, 경호팀의 철저한 보호를 받으며 좋은 집에 살고 있다. 돈 많은 자식을 둔 덕분이다. 땡전 한 푼 없는 아버지와 달리 그의 자식들은 어마어마한 부자다. 그들이 가진 재산을 모두 합하면 미납된 추징금을 갚고도 남는다고 한다. 그의 손녀 역시 억대 호화 결혼식을 올릴 만큼 부자지만, 서류상으로 그는 현재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다.
전 재산이 29만원인 또다른 이들이 있다. 대학 졸업장이 취업과 승진을 위한 필수 자격증 취급을 받는 오늘날, 일년에 천만원 가까운 등록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반값 등록금을 주장했더니 ‘국민 세금으로 왜 네 등록금을 대신 내주느냐’고 욕을 먹고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 고졸 학력으로 어찌어찌 취업하게 되더라도 진급이나 연봉 인상을 위해 뒤늦게 대학 문턱을 기웃거리게 될 이 나라의 이십대. 대졸 자격증이 없는 경우 받게 될 불이익을 모르지 않으면서 진학을 ‘선택’이라고 쉽게 정의내리는 사람들의 자녀, 혹은 후배들.
시급 4000원을 받으며 하루 여섯시간씩, 한달 내내 일하면 72만원을 번다.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일년 동안 모으면 864만원이 된다. 일년치 등록금과 비슷한 금액이다. 그 돈으로 등록금을 충당하게 되면 밥도 집도 구할 수 없다. 집안 형편이 풍족하지 않아 스스로 돈을 벌어 자신의 밥과 삶을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학생들의 통장엔 얼마가 들어 있을까. 29만원은 될까?
등록금을 낮추는 대신 장학금 제도를 확장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루 여섯시간 넘게 돈벌이를 해야 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 출발선이 공평하지 않은 또다른 경쟁이 야기되는 것이다. 대학의 파렴치한 장삿속을 제재하여 등록금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춰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그렇게 부당하고 이기적인 요구인가. 그런 요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복지포퓰리즘이라고 몰아도 되는 것일까.
등록금을 대신 내달라는 말이 아니다. 대학의 부당한 등록금 책정을 제재해 달라는, 등록금 책정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라는 요구다. 사학 재단과 기업의 눈치를 보느라 그럴 수 없다면, 학벌과 학력으로 인간의 가치를 구분하는 이 사회의 부조리와 부당한 경쟁구조부터 손을 대야 한다. 그럼 등록금 문제는 절로 해결될 것이다. 대학 진학률은 자연히 떨어질 테고, 대학도 더는 장사를 할 수 없을 테니까. 물론 그 시스템 위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일이 그리되도록 가만있지 않을 테지만.
쿠데타를 일으키고 자국민 학살을 지시하고 수천억원대의 불법 비자금을 조성한 사람은 빈털터리지만 그 직계가족의 재산은 이천억원대라고 추정된다. 그리고 동시대의 청년 중 어떤 이는 29만원이 없어 신용불량자가 된다. 제힘으로 먹고살기 위해서 없으면 안 된다는 대졸 자격증 하나를 따기 위해 열심히, 그저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인데도 말이다.
최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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