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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어버이에게 연대의 카네이션을 / 윤지영

등록 2012-05-27 19:18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금 800,350원, 통장에 찍힌 이 숫자는 그녀가 받은 월급액수. 그녀는 이 돈을 받기 위해 아침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 6일 아파트를 청소했다. 회사는 임금을 줄이기 위해 근로계약서에 “근무시간 09:00~16:00”이라고 적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그녀는 물에 잠긴 아파트 지하에 내려갔다가 감전사를 당했다. 회사가 책임을 회피하자 그녀의 딸이 나를 찾아왔다. 그녀의 딸이 내게 보여준 각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본인의 귀책사유 없이 업무 중 사망하거나 사고를 당하더라도 본인은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택시를 몰던 그들은 해고를 당했다. 사납금제를 강요하는 회사에 맞서는 바람에 회사의 눈 밖에 났다. 회사는 그들이 고정적으로 타던 택시를 폐차한 후 그들을 예비기사로 발령하였다. 회사는 그들의 근무시간을 줄이고 근무 일수도 줄였다. 일하는 시간의 감소는 운송수입금의 감소로 이어졌고, 운송수입금의 감소는 다시 월급의 감소로 이어졌다. 어느 달의 월급은 60만원도 안 됐다. 그럼에도 계속 저항하자 회사는 그들을 해고했다.

그녀들은 도시가스 검침원이다. 그녀들은 각자 한달에 삼천가구가 넘는 집을 돌아다니며 도시가스를 검침하고 요금고지서를 배달한다. 회사가 폐업을 하자 그녀들은 퇴직금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월급에 퇴직금을 포함해서 줬다며 퇴직금 지급을 거부했다. 그렇게 그녀들이 받은 월급은 퇴직금을 포함해서 90만원.

그들은 임금을 올리지 말아 달라는 청원서를 가지고 집집마다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인건비가 고정된 상황에서 그들의 임금이 오르면 그들 중 누군가는 해고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경비가 그들의 일이지만 분리수거, 불법주차 단속, 화단 정리, 택배 보관, 청소까지 못하는 일이 없다. 주야 맞교대 근무지만 노동 강도가 낮을 거라는 편견 때문에 최저임금의 90%만 인정된다.

그녀는 어깨가 아파서 팔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것이 그녀의 일이지만 노인의 가족은 그 외에도 청소, 빨래, 식사 준비 등 온갖 허드렛일을 그녀에게 시킨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들인 시간과 비용이 무색하게도 어느 순간 그들은 ‘국가 공인 파출부’라 불리고 있다.

청소부, 택시기사, 검침원, 경비원, 요양보호사, 간병인, 가정관리사, 마트 계산원… 일 때문에 나는 이들 노동자들을 만났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대표되는 이들 노동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라는 것. 한 집안의 가장이며 생계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라는 것. 그러나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겪은 어머니가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정리해고 혹은 정년퇴직 이후에 아버지가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 역시 한정되어 있다. 육신은 노쇠해지는데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대부분 육체노동이다. 육체노동을 경시하고 노동생산성만을 강조하는 사회는 중고령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도 없다. 부재한 노후대책과 복지정책은 이들을 일터로 내몬다.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가 강조되는 반면에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노동 문제는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13살 이후로 직접 만든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적이 있던가. 내 안의 문제에만 골몰하지 않았던가. 어머니, 아버지에게 연대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면 어떨까.

윤지영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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