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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그들의 끝나지 않은 노래

등록 2012-04-04 19:50수정 2012-06-06 11:06

윤도현 김제동
윤도현 김제동
조선조 연산군은 궁녀만으로 성이 차지 않자 전국 각지에 채홍사를 보내 기생들을 징발했다. 기녀만으론 재미가 없자 채청사를 두어 사대부 집 처자까지 강탈했다. 붙들려 온 여인은 1300여명에 이르렀다.

채홍사는 연산군의 황음과 학정을 상징하지만, 그의 시대에만 특별한 건 아니다. 왕조와 다름없는 독재체제 아래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라면 연예인을 관기 취급 했다는 사실 정도였다. 독재정권에서 채홍사 구실을 한 건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의전과였다. 박정희가 피살되던 밤에도 중정 의전과가 징발한 가수와 여대생이 술시중을 들고 있었다. 생전 육영수씨는 남편의 이런 문란함 탓에 적잖이 속을 끓였다고 한다. 의전과는 방한한 외국 유력 인사들에게도 여인을 붙여줬다. 원하는 여인을 선택하도록 준비된 사진첩을 내밀었다. 가봉의 봉고 대통령은 그 때문인지 뜬금없이 방한하곤 했다.

이렇게 권력이 연예인을 노리개로 삼는 사이, 시중에선 성을 외화벌이에 이용했다. 당시 일본인 기생관광이 얼마나 심했던지, 여대생들은 김포공항에서 반대데모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국무총리 김종필은 “성매매도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이라며 이죽거렸다. 이승만 정권 때는 ‘우방군의 사기를 진작할 필요가 있다’며 미군부대 주변에 위안소를 설치했다.

연예인을 노리개로 삼는 데는 정보기관의 사찰과 관제방송이 동원됐다. 정보기관은 일거수일투족 살펴 꼬투리를 잡았고, 방송은 밥줄이나 다름없는 티브이 출연과 음악 프로그램으로 통제했다. 권력의 수청을 거부하려면, 연예계를 떠날 각오를 해야 했다. 정권은 가끔 연예인 대마초 사건 따위를 터뜨려 군기를 잡았다. 그런 까닭에 연예인들은 권력에게 웃음, 노래 혹은 몸을 파는 해어화가 되어야 했다. 겉으로는 웃지만, 분장 속에선 눈물을 거둘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들이 권력의 노리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민주정부의 출현과 함께였다. 물론 그 자리를 일부 자본이 차지하긴 했다. 장자연씨 사건에서 보았듯 기획사는 돈을 앞세워 소속 연예인을 노예처럼 부렸다. 정권·언론·재계 실력자에게 이들의 웃음과 성을 상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권의 직접 통제는 힘들었다. 이것을 역전시키려 한 게 바로 이 정권이었다. 사유화된 권력은 연예인을 뒷조사하고 협박했으며, 정권에 예속된 방송은 방송 퇴출 등으로 연예인들을 길들이려 했다.

반발은 불가피했다. 방송 이외의 무대가 적잖이 는 까닭도 있지만, 연예인들 자신이 노류장화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개념 연예인, 소셜테이너 등으로 특별취급 할 일은 아니다. 이들은 그저 권력과 인기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고 싶을 따름이었다. 일종의 인간선언이다. 한 수구언론은 ‘(이들이) 본업을 벗어나, 대중을 즐겁게 하는 게 자신의 본래 영역인지 정치활동을 자신의 이미지 띄우는 수단으로 삼는 것인지 헷갈’린다고 개탄했다. 정신나간 건 그들이다. 왕조의 채홍사처럼 연예인을 노류장화로 여기니 어찌 이해할까.

칠레의 ‘노래하다 죽기로 한 사람’ 빅토르 하라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란 진정한 의미의 창조자여야 한다. 그 위대한 소통능력 때문에 예술가는 게릴라만큼이나 위험한 존재여야 한다.” 그런 이들을 여기에 꼽아본다. 김제동, 밴드 카피머신, 이한철 밴드, 공지영, 강풀, 김미화, 강산에, 디제이 디오시, 이적, 이승환(‘방송파업 콘서트’), 와이비(윤도현 밴드), 김C-뜨거운 감자, 안녕바다, 옥상달빛, 엑시즈, 이스턴 사이드킥, 루싸이트 토끼(‘개념찬 콘서트 바람(풍)’), 갤럭시 익스프레스, 바이 바이 배드맨, 비둘기 우유, 파블로프,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웨이크 업!-투표해 락!’),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지원하는 이효리, ‘가카, 그만 내려오시죠’라고 내지른 윤건 등 아주 많다.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사찰로 말미암은 불면의 밤을 김제동처럼 약으로 달래지는 말자. 대신 노래하자. “… 여기서 모든 것이 스러지고/ 모든 것이 시작되네/ 용감했던 노래는/ 언제나 새로운 노래”(하라의 ‘마니페스토(선언)’) 하라는 끝까지 노래하다가, 기타 치던 손이 짓이겨진 채 사살당했다.

곽병찬 논설위원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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