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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그들만의 해피엔딩 / 최진영

등록 2012-04-01 19:24

최진영 소설가
최진영 소설가
투표권도 발언권도 없는
청소년이 바라는 세상에 대해서는
후보자도 유권자도 무관심하다
선심성 공약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때다. 공약은 투표권이 있는 성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투표권도 발언권도 없는 청소년이 바라는 세상에 대해서는 후보자도 유권자도 무관심하면서, 늘어나는 청소년 문제에는 ‘요즘 애들’ 운운하며 비난부터 한다. 어른들의 정치적 논리와 이해관계가 만든 세상의 틀에 한창 자라나는 몸과 마음을 구겨 넣어야 하는 청소년들은, 그 틀에 맞지 않는 꿈과 희망은 잘라내거나 깔아뭉개면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배운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청소년 자살률 1위, 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의 나라에 살고 있다. 자살률의 가장 큰 원인은 성적과 진학 문제라고 한다(우리나라 청소년의 공부량은 오이시디 가입국 중 1위다. 성인의 노동시간도 가장 길다. 우리는 공부도 너무 많이 하고 일도 너무 많이 하는데, 그것 때문에 행복해지기는커녕 삶의 불만족도는 점점 커진다).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삶의 의욕을 잃고 공포를 느낀다는 것인데, 이는 전적으로 어른들이 청소년에게 그런 세계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공부를 못하면 돈이라도 많아야 한다고 어른들은 말한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드라마만 봐도 대부분 재벌 아니면 왕의 이야기다.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해피엔딩이란 사장이 되거나, 왕의 자리를 지키거나,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고가의 패딩 점퍼로 계급을 나눈다는 기사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들은 왜 고가의 점퍼에 집착할까.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은 대답을 해야 하며 동일한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곳이 학교다. 모든 것이 같아야만 하는 그곳에서, 자신의 지위나 정체성을 표현할 방법이란 성적, 힘(폭력), 돈뿐이다. 어른들의 세계와 흡사하지 않은가. 능력이 좋거나, 힘이 세거나, 비싼 물건을 가져야 기죽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세상. 성적을 비관해 자살하는 10대와 취업을 하지 못해 자살하는 20대와 직장에서 해고당해 자살하는 30~40대가 안고 있는 공포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입시지옥을 벗어나면 취업지옥이 기다리고, 취업지옥을 넘어서면 주택과 자녀 교육비 문제가 다시 시작된다. 성적을 비관해 자살을 결심하는 10대는 당장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하는 편견과 부당함 앞에서, 이후 끊임없이 겪어내야 할 삶의 여러 지옥문을 예감하고 그로 인한 공포와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는 것 아닐까. 남들보다 성적이 나쁘더라도, 최고가 아니더라도, 돈을 좀 덜 벌더라도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인생을 즐기는 여유와 희망을 그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가.

이제 겨우 30대로서 10대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면, 너희들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이냐는 것이고, 너희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어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들의 말에 공감하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말해줘야 한다. 그리고 진짜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한다.

또 이제 겨우 30대로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서른이 되어도 기반은 잡히지 않고 삶은 불안정하며 미래에 대한 확신은 요원하다는 것. 그리고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든 못했든, 30대의 고민은 대부분 고만고만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죽지 마. 인생은 길고 실수와 실패는 모두에게 가장 흔한 거니까. 어른들은 돈과 성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밖에 몰라서 그게 정답이라고 말하는 거야. 그것이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너희가 찾아줘. 이런 세상도 있다고 늙고 병든 어른들을 부끄럽게 해줘. 완전한 삶이 없다면 불완전한 삶도 없어. 세상에 완전한 동그라미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최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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