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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잠금과 해제 / 김현진

등록 2012-02-19 19:00수정 2012-02-19 19:01

김현진 에세이스트
김현진 에세이스트
사람들이 에스엔에스로 얻는
즉각적 반응을 찬양할 때
나는 그 즉각적 반응이 두렵다
무엇을 쓸까 상을 펴고 앉아 있는데 술자리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지금 한겨레신문 마감 중이라 바쁘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더니 친구는 코웃음을 치면서 어차피 맨날 했던 얘기 또 할 거면서 그냥 나와, 했다. 바로 그 고민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정곡을 찌른 셈이다.

<한겨레>는 나의 십대 시절, 글자 쓰는 일과 처음 인연을 맺게 해준 지면이니 자연히 더 마음이 가서 고민도 더 컸다. 그때는 어른들이 글 쓰는 거 시켜주는 것만으로 기고만장했으나 어느새 30대 초반에 이르렀으니 68혁명 당시 청년들의 구호 중 하나였다는 ‘30대와는 말도 하지 말자!’로 따지면 어엿한 꼰대가 된 셈이다. 이런 연배로 신선한 글을 쓰기도 무리인데다 배움도 짧고, 요즘 젊은 필자들은 웬만한 사회적 이슈는 모두 소셜네트워크로 ‘흡수’한 후 시류에 맞는 빠른 분석을 금방 뱉어낸다는데 그게 이른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집단지성인가 싶지만 나는 소셜네트워크에서 맹인에 가깝다. 보지 않고, 보지 못한다.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은 당연히 누군가를 만날 때 트위터 주소를 묻는다. 없다고 대답할 때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경악’이다. 여러 사람이 보는 지면에 글을 쓰는 사람이, 사회적 사안에 대해 수많은 사람이 얼마나 다양한 의견을 내는데 그걸 보지 않느냐는 질책은 나에게 거의 죄책감까지 들게 할 정도였다. 뭐 러다이트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미시 교도로 살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렇게 원시인 보듯 하는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거나 가엾게 여기는데, 나는 독불장군은 아니다. 그러나 이 속도를 따라갈 자신이 없을 뿐이다. ‘2030 잠금해제’라는 지면의 이름을 듣고 ‘잠금해제’가 뭔지 한참 동안 생각하고 나서야 스마트폰의 초기화면 이름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물론 한때 블로그를 즐겁게 운영했던 적도 있고 네트워크가 얼마나 우리 삶을 다양하게 만들었는지는 충분히 느끼고 즐긴 세대다. 그러나 내가 그 수많은 블로그나 개인 홈페이지에서 마음에 드는 단 한 줄의 글에 그 사람에게 단숨에 호감을 갖고,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단 한 줄의 글에서 그 사람을 격렬하게 미워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두렵다. 블로거인 나에 대해서도 소위 내 ‘이웃’들은 그러했을 것이다. 한 줄에 사랑하고 한 줄에 실망하면서, 스마트폰과 트위터라는 것들이 더 빨리 의견을 내놓기를 요구하면서, 사람들이 에스엔에스로 얻는 즉각적 반응을 찬양할 때 나는 그 즉각적 반응이 두렵다. 내가 즉각적으로 반응할 자신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안을 보고 내 나름의 의견, 즉 오피니언을 글로 쓸 의욕이나 자신은 있으나 140자로 의견을 개진하고 140자로 대답하고 140자로 소통하는 그런 재기발랄한 젊은 필자가 되지 못할 것 같아 독자 여러분께 미리 양해를 구한다.

이 즉각적 세상은 빈칸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본디 말이 많은 사람이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그랬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뭐가 좋고 뭐가 싫은지 당장 알리지 못해 안달이 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많은 말들이 떠돌아서 그저께 뉴스를 3일 후 ‘지저귀는’ 사람은 멍청이가 된 것 같아 나는 여전히 ‘잠금’과 ‘해제’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이 즉각적 소통의 시대에서 빈칸은 저능아와 동격이다. 그렇지만 약간의 빈칸, 약간의 ‘잠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솜씨좋게 빚어놓는 그런 역할은 못하겠지만, 조금 잠근 다음에 해제하려고 한다. 여전히 했던 이야기 또 하겠지만, 이 이야기들은 반드시 성의껏 잠금의 시간 후에 해제하리라는 약속을 드린다. 더불어 종이 지면의 1800자 속도를 읽는 독자들을 다시 만나 뵙게 되어 감사하다.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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