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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광장] 일자리·고령화도 SNS 통한 ‘큰 사회’ 만들어 해결한다

등록 2012-01-31 19:55

2010년 6월 ‘소셜이노베이션 캠프 36’에 참여한 소셜인 팀이 시민들의 정책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웹사이트 개발을 위한 토론을 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제공
2010년 6월 ‘소셜이노베이션 캠프 36’에 참여한 소셜인 팀이 시민들의 정책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는 웹사이트 개발을 위한 토론을 하고 있다. 희망제작소 제공
새로운 사회혁신의 시대
국내외 정부·기업·시민 협력모델과 방향
위키피디아는 경이롭다. 385만개가 넘는 영어 단어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익명의 개인들’의 협업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이를 ‘기술’혁신이라 할 수 있을까? 사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뤄낸 혁신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과 ‘위키 방식’이라는 발상의 전환, 평범한 이들의 열정적 참여와 협력, 지식생산과 유통구조의 혁명적 전환. 바로 ‘사회혁신’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100일에 즈음하여 그가 강조하는 사회혁신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 짚어 보았다.

‘거대한 전환: 새로운 모델의 형성’을 주제로 열렸던 올해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지난 1월29일 폐막했다. 세계 40개국에서 모인 2600여명의 글로벌 리더들은 세계 경제위기가 장기화될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한계에 봉착한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를 표출했다. 이들은 과거와 다른 방식의 혁신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세계 각국의 사회적 기업가 35명이 바로 그곳에 모여 “사회혁신이 세계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개선할 것”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미·영 정부, 사회적 기업과 협력
‘혁신 펀드·은행’서 소외층 지원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2010년 8월호는 ‘사회혁신: 그들의 아이디어를 들어보자’라는 글에서 미국과 영국 정부가 사회적 기업가들과 파트너십을 형성해 사회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9년에 ‘사회혁신과 시민참여 부서’를 백악관에 새로 설치했다. 동시에 사회혁신펀드가 만들어져 5000만달러의 예산이 2010년에 배정되었고, 자선재단들이 7400만달러를 거기에 더했다. 2010년 7월에 보건·고용·청소년 분야 11개 프로젝트에 대한 사회혁신펀드의 첫번째 투자가 이뤄졌다. 영국 캐머런 총리 역시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내용의 사업 구상을 발표했다. 그는 ‘큰 사회은행’을 설립하여 “사회적 기업, 자선단체, 자원활동단체 등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2억5000만파운드를 은행 설립에 사용할 것”을 약속했다.

사회혁신이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나라만의 관심사는 아니다. 유럽 각국은 물론 유럽연합 차원에서 다채로운 사회혁신이 시도되고 있고, 관련 연구와 지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유럽 정책자문관사무소(BEPA)가 조직한 2009년 1월 워크숍에서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위원회 위원장은 “재정·경제위기는 창조와 혁신을 만들어냈다. 특히 사회혁신은 지속가능한 성장과 안정된 일자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선언했다. 유럽의 새로운 발전전략을 담은 ‘유럽 2020’ 보고서(2010)에서도 사회혁신은 신성장동력으로 다뤄지고 있다. 유럽이 직면한 ‘거대한 도전들’(경제성장, 실업, 기후변화, 고령화, 사회적 배제, 공공부문개혁 등)에 적극 대응하고, 이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 역할을 사회혁신에 부여했다. 유럽연합의 사회혁신 관련 정책이 연구·개발사업과 함께 다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럽 정책자문관사무소가 낸 <사람을 키우고, 변화를 만들자: 유럽연합의 사회혁신>(2010) 등 여러 보고서들은 사회혁신이 이미 주류의 자리에 올랐음을 잘 보여준다. 한편 아시아에서도 아시아사회혁신경연대회(ASIA)나 아시아엔지오혁신회의(ANIS) 등의 행사를 통해 각국 사회혁신의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시도가 늘고 있다. 싱가포르나 홍콩 등에서 먼저 시작되었지만 중국과 한국 등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세계가 주목하는 ‘사회혁신’이란 과연 무엇인가? 영국의 영파운데이션은 사회혁신을 “사회적 목표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아이디어, 억압되어 충족되지 못한 필요를 충족시킬 새 아이디어를 디자인·개발·발전시키는 프로세스”라고 넓게 정의하거나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고자 하는 목표가 원동력이 되는 혁신적 활동과 서비스”라고 좁게도 정의한다. 미국의 사회혁신 연구를 선도하는 <사회혁신 스탠퍼드 리뷰>는 “사회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 즉 기존 해결책보다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해결책”이라고 사회혁신을 설명한다.

EU ‘지속가능한 성장’에 활용
아시아, 엔지오 통해 정보 공유


사회혁신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지만, 결국 “어떤 사회문제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집단적 고민과 실천의 복합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새롭고도 효과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혁신’이라는 단어는 분명 매혹적이다. 하지만 사회혁신을 ‘혁신의 혁신’이라 하는 이유는 ‘사회’와 결합된 혁신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영파운데이션 상임이사를 거쳐 현재 국립과학기술예술재단(NESTA)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제프 멀건은 영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사회혁신 이론가이자 실천가이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소셜 아이콘 2011’ 기조강연에서 그는 “사회혁신은 더이상 ‘주변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사회의 르네상스’라 부를 정도로 사회부문의 창조와 혁신은 활발하다. 이러한 사회혁신은 정부와 기업, 사회 사이의 ‘협력’을 통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까지 폄훼되었던 ‘사회’가 새롭고 큰 의미를 부여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결국 사회혁신에 대한 이해와 전략은 사회와 혁신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선 “사회가 혁신을 이끈다”는 의미다. 재단, 정부기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지역주민단체, 중간지원기관, 시민단체,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회혁신의 주체는 다양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영국의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와 피프틴재단을 사회혁신의 사례로 소개했다. 음식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사회적 관계를 창출해낸 올리버가 사회혁신가의 전형이라는 설명이다. 동시에 그린피스나 옥스팸, 여성운동도 사회혁신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를 혁신한다”는 의미가 있다. 캐머런 총리가 “사회혁신을 통해 ‘큰 사회’를 만드는 걸 돕는 게 국가의 새로운 역할”이라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시가 준비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에서 ‘마을공동체’라는 것은 혁신의 주체일 수도, 대상일 수도 있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가 공동체적 가치와 관계로 맺어진 새로운 ‘사회’로 복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선 SNS-정보공개 연결
시민참여 혁신 인프라 구축 추진

마지막으로 “사회적으로 혁신한다”는 방법론적 의미이다. 오늘날 사회혁신은 ‘나’보다 똑똑한 ‘우리’, ‘미(Me) 제너레이션’이 아니라 ‘위(We) 제너레이션’을 출발로 삼는 경우가 많다. 리눅스 소프트웨어, 위키피디아와 같은 오픈 소스 방식이 ‘세계를 변화시킨 10대 사회혁신’에 선정된 것은 좋은 사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개인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며, 사회는 예전의 사회가 아니게 되었다. 그 점에서 서울시가 정보공개를 넘어 정보공유로 나아가겠다는 계획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창주 서울시 뉴미디어 특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정보공개를 연결하여 혁신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전진한 소장은 “시민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데이터 형태로 공개하는 것은 획기적 혁신”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를 통해 시민들의 시정 참여와 협력 수준이 질적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혁신은 사회의 경계와 역량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혁신은 새로운 협력을, 협력은 또다른 혁신을 만들어낸다. ‘사회혁신의 힘’에 세계가 주목하는 까닭이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iphong1732@hani.co.kr


시민섹터 주도로 비즈니스 모델 접목해 지속성 확보

한국의 사회혁신

한국에서 사회혁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는 주로 시민단체나 사회적 기업이 사회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혁신적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해 해결하려는 시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사회적 기업, 디자인,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의 분야에서 사회혁신이란 말이 주로 사용된다.

희망제작소는 일찍부터 사회혁신기관을 표방해왔다. 희망제작소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계를 넘어선 접근, 섹터간 협력, 새로운 기술의 적극적 활용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방법과 접근을 사회혁신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사회혁신의 씨앗이라고 볼 만한 시도는 이미 많이 있었다.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를 든다면, 성미산 마을, 희망제작소의 시민창안 프로그램과 해피시니어 프로젝트, 싱크 카페, 하자 센터 등이 있다.(표 참조)

위 사례들을 중심으로 살펴본 한국 사회혁신의 특징은 아래와 같이 볼 수 있다. 첫째, 한국의 사회혁신은 크게 세가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나타난다. 우선, 전통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가 정부, 기업, 심지어 시민사회도 실패해왔던 만성적인 문제들이다(예: 하자센터). 다음으로는 새롭게 대두된 사회 문제에 대처할 필요이다(예: 고령화 사회의 해피시니어). 끝으로 새로운 방법을 통해 기존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어야 할 필요성이다(예: 시민참여의 새로운 방법, 시민창안프로그램, 싱크 카페).

둘째, 한국 사회혁신 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성공 요소를 뽑아내면 △참여 △협력/협동 △조정과 매개라 할 수 있다. 이 중 참여는 소셜네트워크 등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덕분에 활성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협력은 거버넌스와 파트너십을 통해, 조정과 매개는 코디네이터와 중간지원기관 활동으로 나타나지만, 효과적이거나 활발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셋째, 현재 한국 사회혁신은 시민섹터가 주도하고 있다. 여기서 시민섹터는 전통 시민사회와 사회적 기업, 디자인, 소셜미디어 등과 관련된 사회혁신기관이나 관련 활동을 포함한다. 아울러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주체로 떠오른 일반시민까지 포함한다. 이처럼 시민섹터가 주도하게 된 것은 시민섹터가 창의성과 유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만 공공과 민간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지원할 만큼 한국 사회 내 사회혁신의 규모가 크기 않고 이에 대한 평가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넷째, 비즈니스 모델을 접목해 사회혁신 프로그램의 지속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최근 들어 활발해졌다. 사회적 기업이나 커뮤니티 비즈니스, 그리고 협동조합 등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 사회혁신에 대한 논의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사회혁신의 맹아들은 적절한 지원과 환경조성이 있다면 우리 사회 전체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회혁신을 발굴하는 다양한 플랫폼, 역량강화와 리더 육성, 중재자 역할을 하는 기관의 설립, 사회혁신 프로그램 지원 펀드 조성, 사회혁신 모델을 지원하는 법령 제정과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이다.

한선경/희망제작소 사회혁신센터 선임연구원


‘Go카드’ ‘마인드랩’등 통해 양육 지원·대민 서비스 개선

유럽의 사회혁신

영국 남동부 켄트주의 시어네스는 인구 1만3000명의 작은 도시다. 이곳의 아버지들은 자녀 양육을 엄마에게 맡겨버리는 무심한 남편이 아니다. 주정부가 도입한 ‘고(Go)카드’를 가지고 저녁이나 주말에 아이와 다트놀이도 하고 영화도 보며 놀아준다. ‘고카드’를 내밀면 주정부와 제휴한 업소는 요금을 깎아 준다. 주 당국은 ‘고카드’ 서비스에 가입한 아버지들에게 수시로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정보들을 업데이트해준다.

‘고카드’는 자녀 양육과 가사에서 늘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아버지를 되돌아오게 하려 만든 프로그램이다. 지방정부에서 아동 및 가족복지 서비스 제공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나 복지기관의 고민은 서비스 전달이 전적으로 어머니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시어네스에서 4살까지 아동의 발달을 지원하는 ‘시셸’이란 센터에 등록한 800명의 이용자 중 아버지는 1%에 지나지 않았다. ‘고카드’를 도입한 주 당국은 아버지가 자녀 양육에 적극적이 되면 많은 연구에서 확인된 대로, 아동이 좀더 능동적이고, 사교적이며, 자긍심 높은 아이로 자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카드’는 켄트주가 사회혁신 프로그램으로 도입한 정책 중 성공한 사례의 하나다. 켄트주는 행정과 주민서비스의 혁신을 위해 2007년 사회혁신실험실(SILK·Social Innovation Lab Kent)이란 기구를 만들었다. 실크는 공무원들이 정책적 난제들을 협력해서 창의적으로 대처하고, 경제의 혁신원리를 응용해 주민 처지에서 문제를 바라보도록 돕는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고카드’도 아버지들과 여러 차례에 걸친 대화, 회합, 면접조사를 거쳐 문제가 무엇이고 해결책은 어떤 것인지를 모색한 끝에 나온 것이다.

사회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나 지자체는 켄트주처럼 특별 기구를 설립한다. 덴마크의 ‘마인드랩’(MindLab)이나 프랑스의 ‘27th리전’ 등이 그 예이다. 이들 기구는 부서가 다른 공무원들이 합심해 대민 서비스 방식과 접근법을 확 바꾸도록 돕거나, 시민사회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사회혁신으로 계발하는 임무를 맡는다. 사실 이 두 가지 기능이 반드시 분리된 것은 아니다. 경제산업부, 노동부 등 3개 부서가 함께 만든 덴마크 ‘마인드랩’은 시민이 중심이 되는 혁신이란 목표 아래 정부와 민간기업, 연구소들을 묶어낸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기구를 설립하는 외에도 사회혁신 펀드 조성, 혁신 브로커 육성, 혁신 연구지원 등을 통해 사회혁신을 북돋게 된다. 소셜디자이너를 표방해 온 박원순 서울시장은 사회혁신을 서울 시정에 도입하기 위해 올 1월 초 사회혁신담당관을 신설하고 인사 발령했다. 이 부서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등과 협력하며 한국형 사회혁신의 디자인과 실행 방안을 모색중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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