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선택 2012’- ① 경제 민주화
김진방 교수 인터뷰
김진방 교수 인터뷰
2012년은 한국인에게 선택의 해다. 연이어 열리는 총선과 대선에서 나라의 방향을 정할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된다. 한겨레경제연구소·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한겨레평화연구소는 한국인이 올해 무엇을 가늠자 삼아 이 선택을 해야 할지 짚어보기로 했다. 경제·사회정책·외교안보 분야 주요 정책 이슈를 제시한다. ‘선택 2012’는 분야별로 모두 세차례로 나누어 매주 수요일 싣는다.
김진방(사진)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벌개혁 연구자’로 이름을 날렸다. 2005년 그가 총지휘해 낸 다섯권짜리 연구서 <한국의 재벌>은 30대 재벌 700여개 계열사의 지배구조를 낱낱이 분석한 방대한 실증 자료였다. 한국의 대기업이 총수 일가와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대변하며, 소액주주·임직원·협력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대변하는 경영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선구적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는 2012년 한국 경제의 향방을 가늠할 이슈로, 경제 민주화, 복지 확대, 성장 등 세가지를 꼽았다. 이 가운데 정치세력의 성격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로는, 주저없이 ‘경제 민주화’를 꼽았다.
“복지가 여러 정치세력에 의해 주요 이슈가 됐다. 복지를 늘리는 것은 기정사실화한 채, 어떤 방식으로 늘릴 것이냐를 놓고 정치세력간 다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세계 경제위기 국면이다. 경제성장도 여전히 주요 이슈가 될 것이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는 이 둘보다 더욱 중요한 정책 이슈다. 정치세력 사이에 가장 큰 차이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는 정치 이슈라고 여긴다. 경제 민주화는 낯설다는 이야기다.
“경제체제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생산해서 나눌 것인가의 세 가지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를 민주적 성격을 가진 방식으로 풀자는 것이다. 정치의 문제와 경제의 문제는 이렇게 엮여 있다. 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경제라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책에는 수요·공급곡선이 있지만, 세상에는 없다. 경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다. 그 관계가 민주적이지 않다. 그래서 개선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열심히 일해도 생활 어려워
분노 표출하는 사람들 많아 -어떻게 하면 민주적이 될까?
“우선 경제체제의 결과가 불균등하다. 가진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격차가 크다. 또 기회도 불균등하다. 그러나 기회가 균등하다고 충분한 것은 아니다. 과정의 공정성이 중요하다. 출발이 같더라도 경쟁 과정에서 반칙과 특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결과·기회·과정이 균등하고 정당한 것이 민주화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정책이 가능할까? “핵심은 자본과 노동의 관계와, 자본과 자본의 관계 두 가지로 요약된다. 두 맥락 모두에서 참여가 중요하다. 하나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다. 독일에서는 감독이사회와 평의회 두 차원에서 경영에 참여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가 회사에 더욱 헌신하게 된다. 이럴 때 기업특수자산이 형성된다. 즉 그 기업에 고유한 네트워크나 지식 등을 노동자가 능동적으로 축적하며 기업 경쟁력을 높인다. 참여시키지 않으면 노동자는 다른 기업으로 언젠가 옮겨갈 준비를 하면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범용자산만 쌓게 된다. 두번째는 자본끼리의 참여다. 지배대주주가 외부 투자자를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진다. 지분의 5~10%를 가지고 외부 투자자의 참여를 배제해선 안 된다. 이게 재벌개혁의 과제다.” 보편복지, 무상만 강조 말고
공공성 강화 관점으로 봐야 -10년 전에도 김 교수는 재벌개혁을 외쳤다. 당시에도 경제 민주화 논의는 있었다. 여전히 유효한 이슈일까? “문제가 비슷한 것도 있고 악화된 것도 있다. 자본과 자본의 문제는 그대로다. 노동과 자본의 문제는 오히려 노동 약화로 악화됐다. 대·중소기업 문제는 파국까지 갔다. 중소기업이 이렇게 여력이 없다 보니 혁신·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리트머스 시험지는 산성일 때 붉게 변하고 알칼리성일 때 푸르게 변한다. 경제정책에서는 무엇이 색깔을 다르게 하는 기준일까? “재분배를 주요 이슈로 삼느냐,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제도와 체제 도입을 이슈로 삼느냐가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제에서 시장의 역할과 공공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보수는 재분배를 강조할 것이다. 시장은 그대로 두고, 그 과실을 어떻게 거두어 어려운 사람들과 나눌 것인가를 이야기할 것이다. 이게 시혜적 시각이고, 보수가 이야기하는 복지정책이다.” 노동 약화·경제민주화 후퇴
중소기업 소외로 혁신 둔화 -그렇다면 진보는 어떻게 다를까? 시장에서 생긴 과실을 나누는 문제에 천착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 않을까? “진보는 다르다. 경제 분야에서도 공공성 확대라는 체제의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다. 이게 바로 경제 민주화 이슈다. 보수가 강조하는 것은 재분배다. 소득세를 늘리고, 소득분배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개선하는 등의 구호를 외칠 것이다. 그 전제는 현재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승자독식 질서는 그대로 둔다는 것이다. 진보는 그 질서 자체를 건드려야 한다. 예를 들면 실업급여만 높이는 것은 시혜적 정책이다. 보수는 이것만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쟁의 관련 정책을 바꾸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며 연대할 수 있게 만들면, 노동의 교섭력이 높아져서 제도를 바꿀 힘이 된다. 이런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진보다.” 무릎을 쳤다. 경제활동에서 생겨난 잉여를 거두어 다시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잉여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바뀌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게 체제에 대한 이야기라는 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야기는 이어졌다. “어떻게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핵심 질문은 ‘우리 경제 체제는 경제의 공공성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경제는 사적 영역이라는 게 보수의 논리, 시장만능주의다. 그런데 자원 생산과 배분은 시장영역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공공영역에도 경제가 있고 생산·배분을 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는 최근까지도 바게트빵 가격을 지방정부가 관리했다. 많은 사람들이 빵값은 시장에서 수요·공급으로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누구나 빵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생각을 경제정책에 반영했다.” -하지만 빵은 이미 상품이다. 쌀도 상품이다. 많은 것들이 이미 상품화되어 있다. 근대 프랑스의 빵과 같은 재화를, 2012년 한국에서도 찾을 수 있을까? “현재 주거, 보육, 교육, 의료 같은 사회서비스가 이슈다. 이게 해결 안 되면 혁명에 준하는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프랑스의 빵과 비슷하다. 이들을 시장원리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공공의 영역으로 볼 것인가가 말하자면 정책 선택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영리병원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보수와 진보 사이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 주택을 부동산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보느냐 아니면 시민의 주거권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보느냐도 차이가 날 것이다.” 부동산시장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정책과 주거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정책은 그 결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경제에 대한 이런 관점은 복지와 여러모로 맞닿아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최근 화두가 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보수 시혜적 재분배 주장에
진보, 공공성 확대로 맞서야 “보편적 복지는 사실 개념 설정이 정확하지는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레저를 시장에 맡기지 않고 공공영역에서 맡는다고 하자. 여전히 경제영역이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면서 모두 무료로 할 수도 있다. 바우처를 이용자에게 발행해주고 민간기업 시설을 이용하도록 할 수도 있다. 민간기업 시설이지만 서민들이 이용하도록 가격 규제를 할 수도 있고, 취약계층만 싸게 해줄 수도 있다. 이렇게 방법은 다양하므로, 수혜자가 국민 전체가 된다거나 무상이 된다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곤란하다. 시장에 맡기는 것보다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 -요즘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로 경제 이슈에서 많이 터진다. 정부는 경제정책 기조를 일자리 중심으로 하겠다며 일자리 개수를 적극적으로 세기 시작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자리 개수가 크게 늘자 ‘고용 대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일까? “사실 분노의 이유는 실업이 아니다. 근로빈곤이다. 그런데 다들 일자리 이야기만 하니 답답하다. 일자리는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열심히 일해도 어렵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구호는 틀렸다. 소득을 어떻게 늘릴까, 그리고 공공의 역할을 어떻게 늘려 일자리 이외의 복지를 늘릴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야기를 돌려 보자. 영리 주식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뿐 아니라 다른 영역까지도 경제라고 본다면, 최근 주목할 만한 흐름이 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의 부상이다. 이들은 분명 사업체인데, 주식회사와는 달리 주주 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들이 새로운 경제 동력이 될 수 있을까? “다양한 형태의 경제문제 해결방식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로 협동조합이 중요하다. 특히 경제 민주주의와 관련해서는 더 중요하다. 정보 비대칭이 커서 소비자와 생산자 관계로 문제를 푸는 것이 시장에서는 고비용인 경우 생협 등이 효과적이다.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은 국가와 시장 사이의 경제 해법이다. 공동체적 문제 해결 방식이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 박사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시장 아니면 무조건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는 사고는 버려야 한다.” 사회적 기업·협동조합 등
시장·국가 이외 해법 필요 -이타적 인간이 출현한다면, 공동체적 해법은 각광받을 만하다. 하지만 개인이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면,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가능할까? “모두가 사익을 추구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어떤 영역, 어떤 집단에서는 이익이나 효용이 아닌 박애·우애·배려·보복심리 등이 작용한다. 요즘에는 경제학도 많이 바뀌었다. 행동경제학·실험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이타심에 근거한 경제학 연구를 많이 한다. 다만 정책 관점에서 볼 때는 조심할 점이 있다. 공동체의 실험이 있으면 그걸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가 나서서 실험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인, 비정규직 문제에서는 어떤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비정규직 문제는 유연성 문제가 아니다. 자본이 노동을 분리통치해 교섭력을 낮추는 게 문제다. 차별이 없어져야 연대가 가능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의 교섭력이 높아진다. 정규직 비율을 높이면서 기존 정규직이 유연성을 양보하는 해법도 있다고 본다. 교섭력이 커지면 이는 상쇄될 수 있다. 정규직화하면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는데, 어차피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비용은 발생하고 누군가 진다. 누가 지느냐의 문제다. 현재는 약한 개인이 너무 많이 진다. 기업의 부담이 더 커져야 한다.” 정리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분노 표출하는 사람들 많아 -어떻게 하면 민주적이 될까?
“우선 경제체제의 결과가 불균등하다. 가진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격차가 크다. 또 기회도 불균등하다. 그러나 기회가 균등하다고 충분한 것은 아니다. 과정의 공정성이 중요하다. 출발이 같더라도 경쟁 과정에서 반칙과 특혜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결과·기회·과정이 균등하고 정당한 것이 민주화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정책이 가능할까? “핵심은 자본과 노동의 관계와, 자본과 자본의 관계 두 가지로 요약된다. 두 맥락 모두에서 참여가 중요하다. 하나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다. 독일에서는 감독이사회와 평의회 두 차원에서 경영에 참여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가 회사에 더욱 헌신하게 된다. 이럴 때 기업특수자산이 형성된다. 즉 그 기업에 고유한 네트워크나 지식 등을 노동자가 능동적으로 축적하며 기업 경쟁력을 높인다. 참여시키지 않으면 노동자는 다른 기업으로 언젠가 옮겨갈 준비를 하면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범용자산만 쌓게 된다. 두번째는 자본끼리의 참여다. 지배대주주가 외부 투자자를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진다. 지분의 5~10%를 가지고 외부 투자자의 참여를 배제해선 안 된다. 이게 재벌개혁의 과제다.” 보편복지, 무상만 강조 말고
공공성 강화 관점으로 봐야 -10년 전에도 김 교수는 재벌개혁을 외쳤다. 당시에도 경제 민주화 논의는 있었다. 여전히 유효한 이슈일까? “문제가 비슷한 것도 있고 악화된 것도 있다. 자본과 자본의 문제는 그대로다. 노동과 자본의 문제는 오히려 노동 약화로 악화됐다. 대·중소기업 문제는 파국까지 갔다. 중소기업이 이렇게 여력이 없다 보니 혁신·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리트머스 시험지는 산성일 때 붉게 변하고 알칼리성일 때 푸르게 변한다. 경제정책에서는 무엇이 색깔을 다르게 하는 기준일까? “재분배를 주요 이슈로 삼느냐,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제도와 체제 도입을 이슈로 삼느냐가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제에서 시장의 역할과 공공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보수는 재분배를 강조할 것이다. 시장은 그대로 두고, 그 과실을 어떻게 거두어 어려운 사람들과 나눌 것인가를 이야기할 것이다. 이게 시혜적 시각이고, 보수가 이야기하는 복지정책이다.” 노동 약화·경제민주화 후퇴
중소기업 소외로 혁신 둔화 -그렇다면 진보는 어떻게 다를까? 시장에서 생긴 과실을 나누는 문제에 천착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 않을까? “진보는 다르다. 경제 분야에서도 공공성 확대라는 체제의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다. 이게 바로 경제 민주화 이슈다. 보수가 강조하는 것은 재분배다. 소득세를 늘리고, 소득분배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개선하는 등의 구호를 외칠 것이다. 그 전제는 현재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승자독식 질서는 그대로 둔다는 것이다. 진보는 그 질서 자체를 건드려야 한다. 예를 들면 실업급여만 높이는 것은 시혜적 정책이다. 보수는 이것만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쟁의 관련 정책을 바꾸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며 연대할 수 있게 만들면, 노동의 교섭력이 높아져서 제도를 바꿀 힘이 된다. 이런 정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진보다.” 무릎을 쳤다. 경제활동에서 생겨난 잉여를 거두어 다시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잉여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바뀌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게 체제에 대한 이야기라는 데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야기는 이어졌다. “어떻게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다. 핵심 질문은 ‘우리 경제 체제는 경제의 공공성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경제는 사적 영역이라는 게 보수의 논리, 시장만능주의다. 그런데 자원 생산과 배분은 시장영역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공공영역에도 경제가 있고 생산·배분을 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는 최근까지도 바게트빵 가격을 지방정부가 관리했다. 많은 사람들이 빵값은 시장에서 수요·공급으로 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누구나 빵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그 생각을 경제정책에 반영했다.” -하지만 빵은 이미 상품이다. 쌀도 상품이다. 많은 것들이 이미 상품화되어 있다. 근대 프랑스의 빵과 같은 재화를, 2012년 한국에서도 찾을 수 있을까? “현재 주거, 보육, 교육, 의료 같은 사회서비스가 이슈다. 이게 해결 안 되면 혁명에 준하는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 프랑스의 빵과 비슷하다. 이들을 시장원리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공공의 영역으로 볼 것인가가 말하자면 정책 선택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영리병원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보수와 진보 사이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 주택을 부동산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보느냐 아니면 시민의 주거권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보느냐도 차이가 날 것이다.” 부동산시장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정책과 주거환경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정책은 그 결이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경제에 대한 이런 관점은 복지와 여러모로 맞닿아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최근 화두가 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보수 시혜적 재분배 주장에
진보, 공공성 확대로 맞서야 “보편적 복지는 사실 개념 설정이 정확하지는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레저를 시장에 맡기지 않고 공공영역에서 맡는다고 하자. 여전히 경제영역이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면서 모두 무료로 할 수도 있다. 바우처를 이용자에게 발행해주고 민간기업 시설을 이용하도록 할 수도 있다. 민간기업 시설이지만 서민들이 이용하도록 가격 규제를 할 수도 있고, 취약계층만 싸게 해줄 수도 있다. 이렇게 방법은 다양하므로, 수혜자가 국민 전체가 된다거나 무상이 된다는 데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곤란하다. 시장에 맡기는 것보다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 -요즘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로 경제 이슈에서 많이 터진다. 정부는 경제정책 기조를 일자리 중심으로 하겠다며 일자리 개수를 적극적으로 세기 시작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자리 개수가 크게 늘자 ‘고용 대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일까? “사실 분노의 이유는 실업이 아니다. 근로빈곤이다. 그런데 다들 일자리 이야기만 하니 답답하다. 일자리는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열심히 일해도 어렵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구호는 틀렸다. 소득을 어떻게 늘릴까, 그리고 공공의 역할을 어떻게 늘려 일자리 이외의 복지를 늘릴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야기를 돌려 보자. 영리 주식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뿐 아니라 다른 영역까지도 경제라고 본다면, 최근 주목할 만한 흐름이 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의 부상이다. 이들은 분명 사업체인데, 주식회사와는 달리 주주 이익 극대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들이 새로운 경제 동력이 될 수 있을까? “다양한 형태의 경제문제 해결방식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로 협동조합이 중요하다. 특히 경제 민주주의와 관련해서는 더 중요하다. 정보 비대칭이 커서 소비자와 생산자 관계로 문제를 푸는 것이 시장에서는 고비용인 경우 생협 등이 효과적이다.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은 국가와 시장 사이의 경제 해법이다. 공동체적 문제 해결 방식이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엘리너 오스트롬 박사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시장 아니면 무조건 국가가 해결해야 한다는 사고는 버려야 한다.” 사회적 기업·협동조합 등
시장·국가 이외 해법 필요 -이타적 인간이 출현한다면, 공동체적 해법은 각광받을 만하다. 하지만 개인이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면,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가능할까? “모두가 사익을 추구한다는 생각은 틀렸다. 어떤 영역, 어떤 집단에서는 이익이나 효용이 아닌 박애·우애·배려·보복심리 등이 작용한다. 요즘에는 경제학도 많이 바뀌었다. 행동경제학·실험경제학에서는 인간의 이타심에 근거한 경제학 연구를 많이 한다. 다만 정책 관점에서 볼 때는 조심할 점이 있다. 공동체의 실험이 있으면 그걸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가 나서서 실험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요즘 가장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인, 비정규직 문제에서는 어떤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비정규직 문제는 유연성 문제가 아니다. 자본이 노동을 분리통치해 교섭력을 낮추는 게 문제다. 차별이 없어져야 연대가 가능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의 교섭력이 높아진다. 정규직 비율을 높이면서 기존 정규직이 유연성을 양보하는 해법도 있다고 본다. 교섭력이 커지면 이는 상쇄될 수 있다. 정규직화하면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는데, 어차피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비용은 발생하고 누군가 진다. 누가 지느냐의 문제다. 현재는 약한 개인이 너무 많이 진다. 기업의 부담이 더 커져야 한다.” 정리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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