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경제연구소와 자유기업원이 함께 마련한 일곱번째 직선토론 ‘한국 사회의 자유와 책임을 말한다’가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자유기업원 스튜디오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정호 자유기업원장,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신경민 전 <문화방송> 앵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비정규직 외에 실업 문제에도 관심 기울여야”
한겨레경제연구소-자유기업원 공동기획
직선토론: 자유와 책임-마지막회진영논리를 떠나 챙겨야 할 것들 ‘직선토론’은 진보와 보수가 생각이 다를지라도 만나서 대화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가치 차이에서 비롯된 이견은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같은 의견일 필요는 없다. ‘동의하지 않는 데 동의하기’(Agree to disagree)란 말이 있듯이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면 된다. 5월부터 매달 한 차례 진행된 이 토론은 <한겨레>의 새해 지면 개편과 맞물려 이번이 마지막회다. 그간 ‘보편복지’, ‘반값 등록금’,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등 우리 사회의 첨예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예상했던 대로 여러 쟁점에서 논의가 평행선을 달렸으나, 양쪽의 차이를 잘 드러내기만 해도 오해를 풀고 적의를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기업원 스튜디오에서 열린 마지막 토론은 진영 논리를 잠시 잊고, 양쪽이 놓치고 있는 것을 서로 조언하거나 자성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토론을 주제별로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눠 정리했다. 전체 토론은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개방
수입으로 내수 활성화 측면도국민에게 좋은 영향 인정해야 -김정호 사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있고 해서 최근 첨예해진 쟁점인 개방에 대해 얘기해 보자. 김정호 개방과 관련해 진보진영에 전반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수출은 좋고 수입은 좋지 않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개방을 싫어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한마리당 150만원까지 하던 홍어가 수입으로 4만원까지 떨어지자 전국적으로 ‘홍탁식당’이 늘어났다. 수입으로 내수가 활성화되는 측면도 있으므로, (이 역시) 국민에게 좋은 일이란 걸 받아들이면 좋겠다. 김대호 보수는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고 책임지려 하는 데 대한 공포가 있듯이 진보도 시장과 개방, 미국에 대한 공포가 있다. 개방은 비교열위 산업 등 적응을 잘 못하는 쪽에 위기를 초래하는 것인데, 우리가 그쪽에 상당히 매몰찼다. 한 예로 우리는 사회안전망이 상당히 취약한 나라가 아닌가? 그 점에서 시장과 개방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원재 한국이든 미국이든 시장이 개방되면 물건을 잘 팔 수 있는 사람은 더 잘 팔고 그렇지 못하면 낙오되는 측면이 생긴다. (진보진영에서는) 개인의 삶,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들의 삶 등을 내밀하게 봐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가를 한 덩어리로 놓고 국가 대 국가의 대결로, 즉 중상주의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번 한-미 에프티에이와 관련해서도 ‘미국이랑 뭘 같이 하느냐, 마느냐’ 여부로 논리가 치환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신중섭 그 전의 한-유럽연합, 한-칠레 에프티에이에 비할 때 한-미 에프티에이는 이견이 많았다. 이런 차이는 미국에 대한 인식에서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에 대한 인식은 자연스레 북한에 대한 인식으로 연결된다. 복합적인 상황이다. 진보든 보수든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한다. 약자를 대변한다는 정책이 실제로 약자에게 도움이 안 되고 (도리어 그들을)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 진보·보수를 떠나 필요한 것은 공공성·공공선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경쟁
독점보다 경쟁이 일어날 때약자의 생존영역 더 넓어져 -신중섭 사회 개방을 얘기하다 보니 경쟁에 대한 시각 차이가 드러난다. 이 얘기를 해 보자. 김정호 경쟁은 소비자가 좋은 물건을 선택하는 과정이고, 기업이 선택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안철수연구소는 V3을 무료로 배포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굉장히 좋지만 다른 컴퓨터 백신업체로 보면 재앙이었다. 여러 중소기업이 이 시장에서 경쟁하다 지금은 안철수연구소가 시장점유율 58%로 1위다. 결국 경쟁은 세상이 진보하고 좋아지는 일인데 경쟁자(공급자) 입장에서는 괴롭기 때문에 매도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진보진영은 너무 경쟁자의 편을 드는 것 같다. 김대호 문제는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영역이 한국 사회에 너무 많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경쟁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경쟁을 하도록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힘센 쪽은 독과점으로 경쟁을 회피하는 반면, 식당종업원, 건설노동자 등 약자는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경쟁과 규제의 균형이 무너져 있는 것이 문제다. 이는 공공의 중심인 정치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중섭 경쟁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공공선이 확산되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경쟁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세력과 룰을 정하는 세력이 결탁했기 때문이 아닌가? 이걸 어떻게 깨는가가 중요하다. 또 하나의 편견은 경쟁을 약자와 강자의 대결로 보는 경향이다. ‘정글 자본주의’라고 하는데 실제 정글은 약자의 공간도 있고 조화를 이룬 상태다. 독점보다 경쟁이 일어날 때 약자의 생존영역이 확보되는 측면이 있으므로, 이념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분석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이원재 경쟁이 사회에 주는 이익은 혁신이고, 혁신이 나오는 경쟁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택시가 많아서 경쟁을 한다고 혁신이 나오지 않는다. 가치 있는 경쟁은 기업끼리 더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구애하는 과정에 서로 제품을 혁신하는 것이다. 진보진영의 중소기업관은 문제가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중소기업 간 경쟁 중 가치 있는 게 많은데 자꾸 벽을 쳐서 보호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정작 보호해야 할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는 내밀한 시선이 가지 못하는 혼선이 있다. 김대호 혁신을 촉발하는 경쟁과 자기파괴적 경쟁이 있을 때, 혁신적 경쟁이 필요한 곳은 경쟁이 일어나도록 하고, 자기파괴적 경쟁이 일어나는 곳은 규제가 필요하다.
성장
IT·BT·CT로 돈·인재 흘러들게 생산적 시스템 짜야할 필요 -김대호 사회 진보·보수 사이의 또 하나의 대립 지점, 전쟁터가 성장이 아닌가 한다. 경제성장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를 얘기해 보자. 김대호 보수도 진보도 성장을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말한다. 운동으로 치면 기초체력 같은 것인데, 사회의 자원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인센티브 체제 또는 상벌 체제가 유도하는데, 한국은 (성장의) 핵심인 돈과 인재가 벤처중소기업으로는 가지 않게 되어 있다. 금융업은 굳이 중소기업 금융을 하지 않아도 안정되게 수입을 올리는 구조다. 인재들 역시 국가에서 숫자를 조절하며 독점권을 보장하는 변호사·의사 같은 ‘사’자 직업으로 몰리고 있지 않나? 자원이 생산적인 방향, 글로벌 경쟁 영역으로 흐르게 시스템을 짜면서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문화기술(CT) 산업이니 하는 다른 성장정책으로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김정호 제조업과 건설업은 지난 50년 동안 선진국을 벤치마킹해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에 와 있다. 이 부분은 더는 베낄 것이 없고 스스로 실험(개척)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실험은 열 번에 한 번밖에 성공하지 못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다 그런 상황이라 본다. 따라서 이쪽은 더는 성장동력이 되기 어렵다. 이런 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25%라면 나머지 75%는 여전히 낙후된 분야에 종사한다. 역설적으로 여기에 희망이 있다. 공공부문, 농업, 교사, 병원, 관광 가이드, 동네 슈퍼마켓 같은 곳인데 이분들이 변해야 대한민국의 성장가능성이 생긴다. 이는 경쟁, 개방 그리고 인재들이 세계 시장으로 나가려 하느냐의 이슈와 모두 얽혀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원재 진보는 성장을 잘하는 곳은 견제하고 못하는 곳은 보호해야 한다는 규범 같은 것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성장을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렇다고 성장을 못하는 곳의 비전과 전략을 자신 있게 말하지도 못한다. 김정호 원장께서 개방하고 경쟁해서 더 혁신하고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굉장히 어렵다고 본다. 삼성전자처럼 경쟁해서 혁신할 수 있는 분야가 있지만 농업이나 소규모 유통업은 그러기 힘들다. 여기에 다른 비전을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경제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완전히 바꾼다든지, 사회서비스 분야는 국가나 시장보다는 시민사회가 국가의 재원을 활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진보진영은 이렇게 덩치가 크고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의 대안적 성장전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
자원봉사·사회적 기업 근무 등자발성 북돋는 체제서 사회안정 -이원재 사회 성장을 논의하다 보니 자연스레 노동으로 관심이 옮아가고 있다. 김대호 잘나가는 부문은 계속 빠르게 성장해서 이걸 부가가치와 고용으로 전 사회에 쭉 퍼뜨려야 하는데 이 부분이 잘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진보의 책임도 있다. 노동시장 자체가 이중구조를 갖고 있다 보니 (정규직을) 구조조정하면 ‘살인’이라 난리치고, 결국 잘나가는 부분에서 외주 하청하다 안 되면 장시간 노동으로 처리한다. 그러면서 최대한 고용을 억제한다. 이 부분은 결국 ‘중향 평준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유럽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처럼 노동의 양과 질에 따른 공평한 처우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게 유럽의 진보가 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수가 좀더 책임져야 하는데 한국은 갑에 의한 을의 착취가 굉장히 심한 나라다. 가치생산 생태계가 상당히 불건전하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이 노사담합해서 협력업체를 빨아먹는 것 같다. 김정호 갑을 사이에 힘에 의한 거래 관계가 아니고 서로 사전에 잘 따져서 약속을 잘 지키는 관계가 돼야 한다는 데 200% 동의한다. 노동문제와 관련해 비정규직 문제가 시정돼야 할 중요한 문제인데 그 초점이 너무 대기업에 맞춰져 있다. 30대그룹 모두 합쳐야 고용된 인원이 100만명이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가능인구가 3천만명 가까이 되는데 나머지 2천만~3천만명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부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신중섭 노동의 문제는 일정시간의 총임금을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이게 골고루 나눠지지 않고, 일단 노동시장에 들어와 기득권을 획득한 사람이 성을 쌓는 것이다. 밖에서 떨고 있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도 어떤 식으로든지 노동에 참여해서 이익을 누리는 사람들의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고, 실업상태인 사람에 대한 고려가 없다. 대학교수도 마찬가지다. 지금 박사학위를 가지고 강사를 하는 사람이 수만명인데, 이미 들어온 사람이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장벽을 치고 있다. 대학도 그래서 아예 전임교수 다 없애버리고 비정규직 강사로 해서 효과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원재 한번 정규직 서클에서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불안이 있다. 그래서 해고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고는 살인’이 아닌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노동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란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자원봉사나 청년들이 사회적 기업에 가서 돈을 덜 받더라도 보람 있게 일하는 것 등이다. 이런 선의를 북돋우는 체제, 그래서 참여와 자발성이 동기가 돼서 내적 인센티브를 갖고 일하는 체제가 되어야 불안정이나 격차가 줄어드는 시스템이 작동될 것이다. 에필로그
보수와 진보 차이 인정하고거시와 미시를 같이 보아야 -신경민 그동안 7차례에 걸친 토론에서 양쪽이 공감한 것은 서로의 주장을 자세히 들어보면 나름대로 이해하고 취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이었다. 김정호 원장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며 “좀더 바란다면, 양쪽이 같은 사실, 즉 한국이 걸어온 역사 등에 대해 함께 인정할 수 있다면 지금 싸우고 있는 일의 많은 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청 토론자 중 유일하게 두 번 나온 신중섭 교수는 “지식인의 역할은 우리 시대의 도전에 대해 치열한 생각과 상상력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진보·보수의 각 대안이 합의를 볼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생각이 어떻게 정책화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공론을 통한 합의가 필요하며, 적법적인 절차를 밟았으면 존중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토론자로 나온 김대호 소장은 “우리 사회는 이론과 실물, 강단과 현실, 문과적 사고와 이과적 사고가 따로 놀고, 수많은 지적인 분단선이 있다”며 “서로가 이해하기 위해 귀를 열고 눈을 열어야 하는데 어리석음으로 인해 큰 소모적 갈등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재 소장은 “서로 차이를 인정해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고 대화를 하면 타협할 수 있다고 느꼈다”며 “다른 가치가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일이 우리 정치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9시 뉴스 앵커 시절 신선한 맺음말로 주목을 받았던 신경민 사회자는 이날도 인상적인 ‘클로징’으로 전체 토론을 마무리했다. 그는 “거시와 미시를 같이 봐야 하고, 차이를 인정해야 하며, 겸손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며 “결국 정치가 (문제를) 풀어 주고 가치를 조화시켜 주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가 만났던 모임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정리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직선토론: 자유와 책임-마지막회진영논리를 떠나 챙겨야 할 것들 ‘직선토론’은 진보와 보수가 생각이 다를지라도 만나서 대화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가치 차이에서 비롯된 이견은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같은 의견일 필요는 없다. ‘동의하지 않는 데 동의하기’(Agree to disagree)란 말이 있듯이 의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면 된다. 5월부터 매달 한 차례 진행된 이 토론은 <한겨레>의 새해 지면 개편과 맞물려 이번이 마지막회다. 그간 ‘보편복지’, ‘반값 등록금’,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등 우리 사회의 첨예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예상했던 대로 여러 쟁점에서 논의가 평행선을 달렸으나, 양쪽의 차이를 잘 드러내기만 해도 오해를 풀고 적의를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자유기업원 스튜디오에서 열린 마지막 토론은 진영 논리를 잠시 잊고, 양쪽이 놓치고 있는 것을 서로 조언하거나 자성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토론을 주제별로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눠 정리했다. 전체 토론은 <한겨레> 누리집(www.hani.co.kr)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김정호
수입으로 내수 활성화 측면도국민에게 좋은 영향 인정해야 -김정호 사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있고 해서 최근 첨예해진 쟁점인 개방에 대해 얘기해 보자. 김정호 개방과 관련해 진보진영에 전반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수출은 좋고 수입은 좋지 않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개방을 싫어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한마리당 150만원까지 하던 홍어가 수입으로 4만원까지 떨어지자 전국적으로 ‘홍탁식당’이 늘어났다. 수입으로 내수가 활성화되는 측면도 있으므로, (이 역시) 국민에게 좋은 일이란 걸 받아들이면 좋겠다. 김대호 보수는 국가가 지나치게 개입하고 책임지려 하는 데 대한 공포가 있듯이 진보도 시장과 개방, 미국에 대한 공포가 있다. 개방은 비교열위 산업 등 적응을 잘 못하는 쪽에 위기를 초래하는 것인데, 우리가 그쪽에 상당히 매몰찼다. 한 예로 우리는 사회안전망이 상당히 취약한 나라가 아닌가? 그 점에서 시장과 개방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이원재 한국이든 미국이든 시장이 개방되면 물건을 잘 팔 수 있는 사람은 더 잘 팔고 그렇지 못하면 낙오되는 측면이 생긴다. (진보진영에서는) 개인의 삶,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들의 삶 등을 내밀하게 봐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가를 한 덩어리로 놓고 국가 대 국가의 대결로, 즉 중상주의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번 한-미 에프티에이와 관련해서도 ‘미국이랑 뭘 같이 하느냐, 마느냐’ 여부로 논리가 치환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신중섭 그 전의 한-유럽연합, 한-칠레 에프티에이에 비할 때 한-미 에프티에이는 이견이 많았다. 이런 차이는 미국에 대한 인식에서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것 아니겠는가? 미국에 대한 인식은 자연스레 북한에 대한 인식으로 연결된다. 복합적인 상황이다. 진보든 보수든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생각은 버렸으면 한다. 약자를 대변한다는 정책이 실제로 약자에게 도움이 안 되고 (도리어 그들을)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 진보·보수를 떠나 필요한 것은 공공성·공공선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다.
신중섭
독점보다 경쟁이 일어날 때약자의 생존영역 더 넓어져 -신중섭 사회 개방을 얘기하다 보니 경쟁에 대한 시각 차이가 드러난다. 이 얘기를 해 보자. 김정호 경쟁은 소비자가 좋은 물건을 선택하는 과정이고, 기업이 선택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안철수연구소는 V3을 무료로 배포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굉장히 좋지만 다른 컴퓨터 백신업체로 보면 재앙이었다. 여러 중소기업이 이 시장에서 경쟁하다 지금은 안철수연구소가 시장점유율 58%로 1위다. 결국 경쟁은 세상이 진보하고 좋아지는 일인데 경쟁자(공급자) 입장에서는 괴롭기 때문에 매도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진보진영은 너무 경쟁자의 편을 드는 것 같다. 김대호 문제는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영역이 한국 사회에 너무 많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경쟁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경쟁을 하도록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힘센 쪽은 독과점으로 경쟁을 회피하는 반면, 식당종업원, 건설노동자 등 약자는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경쟁과 규제의 균형이 무너져 있는 것이 문제다. 이는 공공의 중심인 정치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중섭 경쟁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공공선이 확산되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경쟁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세력과 룰을 정하는 세력이 결탁했기 때문이 아닌가? 이걸 어떻게 깨는가가 중요하다. 또 하나의 편견은 경쟁을 약자와 강자의 대결로 보는 경향이다. ‘정글 자본주의’라고 하는데 실제 정글은 약자의 공간도 있고 조화를 이룬 상태다. 독점보다 경쟁이 일어날 때 약자의 생존영역이 확보되는 측면이 있으므로, 이념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분석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이원재 경쟁이 사회에 주는 이익은 혁신이고, 혁신이 나오는 경쟁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택시가 많아서 경쟁을 한다고 혁신이 나오지 않는다. 가치 있는 경쟁은 기업끼리 더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구애하는 과정에 서로 제품을 혁신하는 것이다. 진보진영의 중소기업관은 문제가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중소기업 간 경쟁 중 가치 있는 게 많은데 자꾸 벽을 쳐서 보호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정작 보호해야 할 비정규직 노동자 등에는 내밀한 시선이 가지 못하는 혼선이 있다. 김대호 혁신을 촉발하는 경쟁과 자기파괴적 경쟁이 있을 때, 혁신적 경쟁이 필요한 곳은 경쟁이 일어나도록 하고, 자기파괴적 경쟁이 일어나는 곳은 규제가 필요하다.
김대호
IT·BT·CT로 돈·인재 흘러들게 생산적 시스템 짜야할 필요 -김대호 사회 진보·보수 사이의 또 하나의 대립 지점, 전쟁터가 성장이 아닌가 한다. 경제성장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를 얘기해 보자. 김대호 보수도 진보도 성장을 얘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말한다. 운동으로 치면 기초체력 같은 것인데, 사회의 자원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인센티브 체제 또는 상벌 체제가 유도하는데, 한국은 (성장의) 핵심인 돈과 인재가 벤처중소기업으로는 가지 않게 되어 있다. 금융업은 굳이 중소기업 금융을 하지 않아도 안정되게 수입을 올리는 구조다. 인재들 역시 국가에서 숫자를 조절하며 독점권을 보장하는 변호사·의사 같은 ‘사’자 직업으로 몰리고 있지 않나? 자원이 생산적인 방향, 글로벌 경쟁 영역으로 흐르게 시스템을 짜면서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문화기술(CT) 산업이니 하는 다른 성장정책으로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김정호 제조업과 건설업은 지난 50년 동안 선진국을 벤치마킹해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에 와 있다. 이 부분은 더는 베낄 것이 없고 스스로 실험(개척)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실험은 열 번에 한 번밖에 성공하지 못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다 그런 상황이라 본다. 따라서 이쪽은 더는 성장동력이 되기 어렵다. 이런 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25%라면 나머지 75%는 여전히 낙후된 분야에 종사한다. 역설적으로 여기에 희망이 있다. 공공부문, 농업, 교사, 병원, 관광 가이드, 동네 슈퍼마켓 같은 곳인데 이분들이 변해야 대한민국의 성장가능성이 생긴다. 이는 경쟁, 개방 그리고 인재들이 세계 시장으로 나가려 하느냐의 이슈와 모두 얽혀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원재 진보는 성장을 잘하는 곳은 견제하고 못하는 곳은 보호해야 한다는 규범 같은 것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성장을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렇다고 성장을 못하는 곳의 비전과 전략을 자신 있게 말하지도 못한다. 김정호 원장께서 개방하고 경쟁해서 더 혁신하고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건 굉장히 어렵다고 본다. 삼성전자처럼 경쟁해서 혁신할 수 있는 분야가 있지만 농업이나 소규모 유통업은 그러기 힘들다. 여기에 다른 비전을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경제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완전히 바꾼다든지, 사회서비스 분야는 국가나 시장보다는 시민사회가 국가의 재원을 활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진보진영은 이렇게 덩치가 크고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의 대안적 성장전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원재
자원봉사·사회적 기업 근무 등자발성 북돋는 체제서 사회안정 -이원재 사회 성장을 논의하다 보니 자연스레 노동으로 관심이 옮아가고 있다. 김대호 잘나가는 부문은 계속 빠르게 성장해서 이걸 부가가치와 고용으로 전 사회에 쭉 퍼뜨려야 하는데 이 부분이 잘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진보의 책임도 있다. 노동시장 자체가 이중구조를 갖고 있다 보니 (정규직을) 구조조정하면 ‘살인’이라 난리치고, 결국 잘나가는 부분에서 외주 하청하다 안 되면 장시간 노동으로 처리한다. 그러면서 최대한 고용을 억제한다. 이 부분은 결국 ‘중향 평준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유럽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처럼 노동의 양과 질에 따른 공평한 처우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게 유럽의 진보가 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수가 좀더 책임져야 하는데 한국은 갑에 의한 을의 착취가 굉장히 심한 나라다. 가치생산 생태계가 상당히 불건전하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이 노사담합해서 협력업체를 빨아먹는 것 같다. 김정호 갑을 사이에 힘에 의한 거래 관계가 아니고 서로 사전에 잘 따져서 약속을 잘 지키는 관계가 돼야 한다는 데 200% 동의한다. 노동문제와 관련해 비정규직 문제가 시정돼야 할 중요한 문제인데 그 초점이 너무 대기업에 맞춰져 있다. 30대그룹 모두 합쳐야 고용된 인원이 100만명이다. 우리나라 전체 노동가능인구가 3천만명 가까이 되는데 나머지 2천만~3천만명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부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신중섭 노동의 문제는 일정시간의 총임금을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이게 골고루 나눠지지 않고, 일단 노동시장에 들어와 기득권을 획득한 사람이 성을 쌓는 것이다. 밖에서 떨고 있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도 어떤 식으로든지 노동에 참여해서 이익을 누리는 사람들의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고, 실업상태인 사람에 대한 고려가 없다. 대학교수도 마찬가지다. 지금 박사학위를 가지고 강사를 하는 사람이 수만명인데, 이미 들어온 사람이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장벽을 치고 있다. 대학도 그래서 아예 전임교수 다 없애버리고 비정규직 강사로 해서 효과적인 교육을 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원재 한번 정규직 서클에서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불안이 있다. 그래서 해고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고는 살인’이 아닌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노동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란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자원봉사나 청년들이 사회적 기업에 가서 돈을 덜 받더라도 보람 있게 일하는 것 등이다. 이런 선의를 북돋우는 체제, 그래서 참여와 자발성이 동기가 돼서 내적 인센티브를 갖고 일하는 체제가 되어야 불안정이나 격차가 줄어드는 시스템이 작동될 것이다. 에필로그
보수와 진보 차이 인정하고거시와 미시를 같이 보아야 -신경민 그동안 7차례에 걸친 토론에서 양쪽이 공감한 것은 서로의 주장을 자세히 들어보면 나름대로 이해하고 취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이었다. 김정호 원장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며 “좀더 바란다면, 양쪽이 같은 사실, 즉 한국이 걸어온 역사 등에 대해 함께 인정할 수 있다면 지금 싸우고 있는 일의 많은 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청 토론자 중 유일하게 두 번 나온 신중섭 교수는 “지식인의 역할은 우리 시대의 도전에 대해 치열한 생각과 상상력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진보·보수의 각 대안이 합의를 볼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생각이 어떻게 정책화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공론을 통한 합의가 필요하며, 적법적인 절차를 밟았으면 존중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토론자로 나온 김대호 소장은 “우리 사회는 이론과 실물, 강단과 현실, 문과적 사고와 이과적 사고가 따로 놀고, 수많은 지적인 분단선이 있다”며 “서로가 이해하기 위해 귀를 열고 눈을 열어야 하는데 어리석음으로 인해 큰 소모적 갈등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재 소장은 “서로 차이를 인정해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고 대화를 하면 타협할 수 있다고 느꼈다”며 “다른 가치가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일이 우리 정치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9시 뉴스 앵커 시절 신선한 맺음말로 주목을 받았던 신경민 사회자는 이날도 인상적인 ‘클로징’으로 전체 토론을 마무리했다. 그는 “거시와 미시를 같이 봐야 하고, 차이를 인정해야 하며, 겸손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며 “결국 정치가 (문제를) 풀어 주고 가치를 조화시켜 주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가 만났던 모임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정리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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