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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광장] 러 ‘에너지 무기화’…유치경쟁 한·중·일과 밀고 당겨

등록 2011-11-15 19:38

민화협 - 한겨레평화연구소 정책토론회
남북러 협력과 한반도 정세…가스관 사업을 중심으로
한겨레 평화연구소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주최 4차 정책토론회로 한반도 가스관 사업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남·북·러 협력과 한반도 정세를 전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15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에선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대사가 기조강연을 통해 지난 2일 한-러 정상회담 이후 남·북·러 협력의 방향을 밝힌 데 이어, 3시간여에 걸쳐 ▷김연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러시아 에너지 전략과 동북아 국제정치의 변화) ▷윤성학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북-러 경제협력과 가스관 사업의 경제적 기대효과) ▷김남일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국제협력본부장(가스관 연결 사업의 쟁점과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가능성)의 주제발표와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토론이 있었다. 주제발표를 중심으로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 위에서 러시아의 에너지 전략을 살펴보고 한반도 가스관 사업의 쟁점을 정리했다.

강태호 한겨레평화연구소장 kankan1@hani.co.kr

‘송유관 노선 유치’ 일본 손 들어줬지만 미·일친화 경계
경쟁했던 중국에도 공급 불구 ‘자원기지 전락’ 우려
결국 시베리아 자원개발 ‘한·중·일 경쟁구도’가 전략

동북아의 에너지 지정학

러시아는 에너지 대국이다. 석유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의 산유국이자 수출국이며, 천연가스는 전세계 매장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집권 8년여 동안 러시아 에너지 안보개념 및 외교의 기틀을 잡은 블라디미르 푸틴은 대통령 시절 시베리아가 아시아, 특히 한국·중국·일본에 에너지 공급기지로서 중동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러시아는 그 계획을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으며 에너지는 외교안보 전략의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 중·일의 시베리아 석유노선 둘러싼 경쟁 1990년대 일본은 엄청난 자본과 기술을 내세워 동시베리아 사할린 등 자원 에너지 개발에 나섰다. 그러나 러시아가 미-일 관계에 대한 중·러의 대응전선 강화라는 전략적 고려에 따라 중국에 파격적인 원유 및 천연가스 공급을 약속하면서 중·일은 치열한 경쟁관계에 들어섰다. 이른바 동시베리아-태평양 석유(ESPO) 파이프라인의 노선을 둘러싸고 중국의 ‘다칭 라인’과 일본의 ‘태평양 라인’의 대립이었다. 이는 러시아 내부에서는 거대 에너지기업인 유코스와 국영 송유관 업체인 트란스네프트 간의 대립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금융지원 의사가 작용해 2003년 러시아는 극동 나홋카항을 종착점으로 석유를 실어나르는 태평양 라인을 발표했다. 또한 중국 라인을 추진한 유코스는 푸틴의 정적이었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사장이 구속되면서 또다른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에 인수·합병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이에스피오 송유관 계획은 타이셰트에서 시작해 바이칼 북단으로 가 중-러 국경선을 따라 나홋카의 코즈미노항까지의 4300㎞의 노선으로 확정됐다. 일본의 승리로 보였다.


그러나 2008년 중·러는 이 노선의 중간지점인 스코보로디노에서 중국의 다칭까지 지선을 부설하기로 합의했으며 2010년 9월부터 석유공급이 시작됐다. 쿠릴열도 영유권 분쟁 등으로 일본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반면, 중국이 250억달러의 차관을 러시아에 제공하며 러시아는 중국 쪽에 연간 1500만t(하루 30만배럴)의 석유를 20년간 제공한다는 석유-차관 방식을 통한 자원 유치 전략을 펼쳤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 다칭 지선이 중-일의 경쟁에서 러시아가 중국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고 있다고 김남일 에너지경제연구원 국제협력본부장은 지적했다. 그러나 김연규 한양대 교수에 따르면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협력과 갈등의 양면이 존재한다.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관계와 중국의 에너지 수요를 고려할 때 러시아에 중국시장 선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시베리아가 ‘중국의 자원기지로 전락할 가능성’ 또한 크게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러시아의 전략은 시베리아 자원개발에서 중국·일본·한국이 서로 참여해 경쟁하는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 러시아의 경쟁구도 전략과 한-중의 천연가스 가격 협상 러시아의 이런 경쟁구도 전략은 천연가스 공급에서도 관철되고 있다. 애초 한국과 중국은 시베리아 코빅타 가스전으로부터 각각 100억㎥와 380억㎥의 가스를 도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가스프롬이 지배를 강화해 이를 통제하자 영국의 브리티시페트롤리엄이 코빅타 가스전 개발에서 철수하면서 무산됐다. 러시아는 그 대신 미국·일본 등이 우선권을 갖고 있던 사할린 가스를 한국·중국에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다. 그 결과 한국과는 2008년 8월에 사할린 Ⅲ에서 한반도 가스관 방식으로 100억㎥의 천연가스를 30년간 도입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며, 사할린 Ⅱ에서는 2009년 4월 가스공사가 액화천연가스 형태로 20년간 20억㎥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또 중국과는 2009년 서시베리아에 해당하는 알타이 지역으로부터 중국 북서부로 연결되는 가스관(알타이 가스관 등)을 통해 2015년부터 30년간 매년 700억㎥의 천연가스를 판매하기로 하고 가격협상을 진행해왔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동의로 남·북·러 가스관 합의가 구체화되자 이번엔 중국과 한국이 가격조건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북이 밸브 잠그면 어쩌나?…안전장치 확보가 최대 관건

남북러 가스관 연결 쟁점은

러에 안전보장 요청할수록
가격협상선 불리해질 수도
에너지가 북핵해결 핵심축
미국도 일단 사업에 긍정적

■ 개성공단인가? 금강산 관광인가? 개성공단은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었음에도 지난 7년여간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에 금강산 관광은 남쪽 관광객이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으로 인해 3년 넘게 중단된 상태다. 한반도 가스관 사업은 어느 쪽일까?

남·북·러 가스관 사업의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는 북한 리스크다. 달리 말하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가스공급을 위한 분쟁해결 방안과 안전장치들을 확보할 수 있는가다. 실제로 러시아와 유럽 사이를 연결해주는 가스관 통과국인 우크라이나는 통과 수수료와 가격 문제를 들어 2006년과 2009년 가스관 밸브를 두번 잠갔다. 가스 생산국과 통과국이 소비국인 유럽 여러 나라를 인질로 게임을 벌인 셈인데, 이런 현실이 북한 리스크를 가스관 사업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이날 발표에서 윤성학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실질적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우크라이나와 북한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둘 사이엔 차이점이 있다. 윤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본래 러시아 영토였다가 1991년 독립된 이후에 가스관이 국제 라인이 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이 가스관에 대한 통제장치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반도 가스관은 처음부터 국제 가스관으로 시작해 통제장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로부터 액화천연가스 대체 물량을 확보하는 것도 그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김남일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국제협력본부장은 북한의 ‘인질화 전략’에 대처할 수 있는 안전장치로 다음 네가지를 들었다. 첫째 남·북·러 3국 간 공급안정보장협정 체결이다. 북한 통과 가스관의 공급 안정성을 보장하는 3국간 협약(IGA)을 체결하고, 통과국 정부(북한)와 운송자 간 협정(HGA)을 체결한다. 둘째, 구매계약서에 공급안정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 조건을 명시한다. 구매계약서에 가스 소유권 인도지점을 구매국의 국경(남북 경계)으로 명시하여 러시아의 공급의무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셋째, 가스 파이프라인 소유·운영구조 및 감시위원회를 구성하며, 마지막으로 북한에 천연가스 공급·소비구조를 구축하는 것도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천연가스 발전소 건설, 도시가스 배관망 건설 등 북한 내 천연가스 활용 여건을 지원함과 동시에 통과료를 가스로 공급해 에너지로 활용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러시아가 대북 가스공급을 차단하여 공급 교란 우려를 완화할 수 있다.

■ 두 마리 토끼: 리스크와 가격조건 또다른 쟁점은 가격조건이다. 김남일 본부장은 “세계 천연가스 수급 상황과 시장구도의 변화를 고려할 때, 현시점은 가스관천연가스(PNG) 도입가격 협상의 호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통과에 따른 리스크를 러시아 쪽에 부담시키려는 조건(예컨대 북한이 가스공급을 차단할 경우 러시아가 동일한 물량을 액화천연가스로 보장하는 방안)과 가격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가스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려고 하면 할수록 가격 협상에서는 불리해진다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유리한 가격협상을 이끌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북한 통과의 리스크를 러시아 쪽에 부담시키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러시아가 수용한다고 하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이 가격에 반영될 소지가 크다. 그 수준은 한국이 현재 중동지역 등에서 수입하는 액화천연가스 도입가격(약 11~12달러/MMbtu: 영국 열량단위)을 최대치로 보면, 그보다 약간 낮은 수준으로 결정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김 본부장은 지적했다. 러시아가 중-러 가스협상에서 제시하고 있는 가격은 9.3달러/MMbtu다.

■ 미국은 남·북·러 가스관을 지지할 것인가? 김 본부장은 미국 기업 소유의 가스가 남·북·러 가스관을 통해 공급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미 거대 에너지기업 엑손모빌이 30%의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인 가스전은 사할린 Ⅰ(80억㎥ 수출 가능)이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사할린 Ⅰ의 천연가스를 가스프롬이 전량 구매해 통제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사업을 철저히 관리했다. 엑손모빌의 수출길을 막아버린 것이다. 지금 러시아가 한반도 가스관으로 공급하려는 가스는 사할린 Ⅱ 지역에서 분리해 외국기업에 개발을 맡기지 않고 직접 관리하는 전략 지역으로 지정한 사할린 Ⅲ에서 생산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사업적 이해관계와는 별도로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 지정학적 구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남·북·러 가스관 사업에서 미국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미국의 관여가 있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 정부는 이 남·북·러 가스관 사업에 대해 지난 10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상 차원에서 설명하고 미국 쪽의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국내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 쪽 관계자는 “러시아 가스관 연결 사업이 북한지역에 크게 확장되는 중국의 영향력을 상쇄하고, 북한의 불안정한 상황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 오바마 행정부는 현 단계에서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에너지 문제는 한반도 평화체제와 함께 북핵 문제 해결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대체에너지로서 기존의 경수로 건설 대신 시베리아 가스나 석유 또는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이 제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경우 미국이 이 가스관 사업을 더 긍정적으로 볼 가능성도 있다.

북 인권문제 ‘남남갈등’ 진보·보수 모두 반성을

사회통합위 ‘합리적 접근’ 책펴내

북한 인권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진보와 보수 사이에 첨예하게 맞서는 주제이다. 보수는 진보가 북한의 참담한 인권 현실을 외면한다고 비판하고, 진보는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보수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진보와 보수는 이 해묵은 ‘남남갈등’의 주제에서 접점을 찾을 수 없을까. 대통령 소속 사회통합위원회(사통위·위원장 나종일)는 최근 이를 위한 시도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합리적 접근: 사회통합적 시각’이라는 소책자(사진)를 냈다. 각각 진보와 보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김근식 경남대 교수와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이 책에서 진보와 보수가 성찰적 반성을 통해 공통 지점을 확인하고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합리적 접근법을 찾아볼 것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 우선 진보는 남북관계 특수성의 과잉을 지양해야 한다. 북한 인권 개선 요구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소극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는 인권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단선적인 북한 민주화론, 북한 정권 타도론은 비현실적이며 오히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악화시킬 소지가 크다. 이런 전제 위에 설 때 북한 인권 문제는 보편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글쓴이들의 주장이다.

책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접근법도 제시한다. 보편적 접근과 꾸준한 관심, 감성적·급진적 접근이 아닌 현실적·실질적 접근,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적극적 자세, 정치범 수용소 폐쇄를 위한 국내외 캠페인 지속 추진, 북한 이탈 주민 보호를 위한 외교적 노력 강화 등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인권 개선 요구에 대해 주권과 내정 불간섭의 원칙, 문화상대주의의 시각에서 대응해왔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일정 부분 국제사회의 요구를 수용하는 태도도 내보였다. 1998년 개정 헌법에 거주·여행의 자유를 보장하는 문구를 추가했고 2009년 헌법에는 인권 개념을 명시적으로 삽입했다. 또 2004년 죄형법정주의를 명문화했다. 국제사회의 꾸준한 문제제기와 노력이 낳은 결과라는 게 글쓴이들의 주장이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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