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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량 살처분 실효성 상실…이젠 친환경 축산을

등록 2011-02-13 18:53

정범구
정범구
공장식 사육이 전염병의 온상
농장·마을 중심 방역에 힘쓰고
과도한 육식문화 성찰 계기로
[싱크탱크 맞대면]
‘구제역 쇼크’ 이후

이번 구제역 사태는 명백한 ‘관재’다. 우리나라는 ‘청정국’ 지위를 상실했다. 정부는 백신접종이 완료되면 구제역이 잡힐 것이라고 했지만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범구 국회의원
(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 민주당)

살처분된 가축 수가 320만마리를 훌쩍 넘어서고 전국 돼지의 30% 이상을 땅에 묻고도 계속되는 구제역에 대해 논하려니 가슴이 무척 답답하다. 살처분 보상금과 방역비 등 지금까지 국가가 사용한 예산이 2조원이 넘는다. 지방자치단체가 사용한 예산까지 포함하면 3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축을 묻은 전국의 4000여 매몰지에 대한 비용과 구제역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의 정신, 심리치료에 소요될 비용은 빼고서도 말이다.

이번 구제역 사태는 명백한 ‘관재’(官災)다. 발생 40여일이 지나서야 처음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대통령에게 농림수산식품부는 구제역이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보고한다. 1월6일, 매몰대상 가축이 95만마리에 육박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 근거는 최초 발생지인 경북에서 1월2일 이후 새로 발생한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때 이미 경북 축산기술연구소에서 구제역이 발생했고 이를 은폐하고 있었다. 정부는 이번 구제역 사태에서 초동 대응뿐 아니라 이후 사태에 대한 대응도 우왕좌왕하면서 예측도 주먹구구식이 많았다. 발생 두 달이 지나서야 발표된 감염경로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도 많은 의문점을 내포해, 전문가들의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정복 농림부 장관이 구제역 사태가 해결되면 물러나겠다고 했다. 장관 하나가 물러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지만 물러나려면 당장 물러나는 것이 도리에 맞다. 이미 구제역이 상시화되는 조짐을 보이는데 특별한 해결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백신의 전국 접종이 완료되면 구제역이 잡힐 것이라고 했지만 1차, 2차 백신 접종까지 모두 마친 천안의 국립축산과학원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부터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안이하고 국민들의 상처에 대해 무감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포항에 폭설이 내렸다고 포항 시장에게는 전화하면서 왜 자식 같은 가축들을 땅에 묻은 농민들을 위로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을까? 뮤지컬 관람도 좋지만 방역 현장에서 과로에 허덕이는 공무원들을 격려하는 모습도 대통령에게는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대통령이 방역 현장을 찾은 것은 발생 뒤 50여일이 지나고 이미 가축 188만마리를 땅에 묻은 뒤였다. 아덴만 작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설명을 하면서 왜 구제역 사태에 대한 대국민담화는 장관들에게만 맡겨 놓는 것일까? 언론도 마찬가지다. 아덴만 구출작전에 대해서는 9시 메인뉴스의 30~40분을 할애해 방송하던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이 미증유의 국가재난사태인 구제역에 대해서는 과연 얼마만큼의 성의와 관심을 갖고 보도했던가?

구제역으로 소요된 국가예산 (※클릭하면 확대)
구제역으로 소요된 국가예산 (※클릭하면 확대)
이제 우리나라는 구제역이 사실상 상시 발생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상실했을 뿐 아니라 가까운 시일 내에 이를 다시 회복하기도 어렵다. 일부에서는 청정국 지위를 상실했을 경우 중국 등 구제역 발생 국가로부터의 수입압력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 문제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 중국은 이제 식량수출국가에서 점차 수입국가로 전환하고 있다. 이미 쌀 등 곡물이 개방된 상황에서 축산물만 갖고 문제를 삼는다는 것도 어색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원산지 표시제도를 강화하며 소비자 판단에 맡겨야 한다. 나는 식당에서 판매되는 축산물의 원산지를 휴대폰으로 소비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해당 법률의 개정안을 제출해 놓았다.

구제역이 토착화 징후까지 보이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대량 살처분 위주의 방역대책은 실효성을 상실했다. 일단 예방백신 접종으로 대응해 나가면서 지금과 같은 공장식 밀집형 축산을 친환경 축산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방역대응의 경우, 기존의 도로 중심 방역보다는 농장 중심, 마을 중심 방역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보인다. 거점중심 방역을 해야 사료차나 분뇨차, 축산노동자와 수의사 등 차량과 인간에 의한 전염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이번 구제역 사태는 여러 가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준다. 그중 하나는 현재와 같은 과도한 육식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물음이다. 구제역이 발생하기 전, 우리나라에는 대략 돼지 1000만마리와 소 300만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인구 4800만의 나라에서 식용으로 1300만마리의 소, 돼지가 사육되지만 이는 국내 수요의 65% 정도만을 충족시키는 양이다. 돼지들이 생매장되는 현장을 보고 동물보호단체를 비롯하여 많은 시민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그들이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대량 도살되는 것과 대량 매장되는 것 사이에 과연 어떤 근본적 차이가 있을까?

농업에 대해서도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언제부턴가 농업은 ‘돈 버는 산업’으로만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콘크리트 정글인 도시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농촌에 대한 시각이 부족하다. 농민들은 언젠가부터 ‘돈 되는 작목’에만 관심을 갖고 우리 사회는 이것을 부추긴다. ‘돈 되는 농업’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이런 공장형 축산을 부추기는 것이다. 환경을 살리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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