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 맞대면] 더 나은 ‘복지논쟁’을 위하여
무인도에 표류한 경제학자가 하루는 참치캔이 떠밀려 온 것을 발견했다. 기쁨도 잠시, 캔따개가 없다는 것을 깨닫자 이렇게 되뇌었다고 한다. “자, 캔따개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날 밤 경제학자는 ‘통조림을 먹은 것으로 가정하고’ 잠이 들었다는 인터넷 유머다.
‘케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Other things being equal)이란 뜻의 라틴어만큼 경제학 책에서 자주 마주치는 말도 드물 것이다. 이는 A라는 변수의 영향을 관찰하기 위해 B, C, D 등 다른 변수는 모두 고정됐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학이 학문의 제왕이 되어서 그런지, 학문적 가정법을 현실에 바로 대입하는 사고방식을 종종 목격한다. 즉, 현실의 여러 조건들이 시간과 함께 움직이지 않고 고정돼 있거나, 심지어 고정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떤 정책을 판단하는 것이다.
최근 가열되는 ‘복지와 재원마련 논쟁’에서도 이런 흐름이 관찰된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복지의 확대는 세금부담을 늘리고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키울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로 대표되는 복지확대를 비판하는 쪽은 ‘세금폭탄’이나 ‘미래 세대의 희생’ 같은 말로 공격을 한다. 이는 복지의 확대와 재정 건전성이 직접적인 상충관계(trade-off)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여러 나라가 복지와 관련해 재정위기를 겪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공격은 현재의 조건을 지나치게 고정적으로 보고 인간의 대응 노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새해엔 운동을 해야지’ 하고 결심을 하면 술자리를 줄이고 그 돈으로 헬스클럽에 가입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복지를 확충해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게 중요한 과제라면, 이벤트성 행사를 억제하고 국가의 개발사업을 축소하는 등 재정지출 구조를 손보고, 고소득 전문직의 탈루를 막고 대규모 자산소득에 과세하는 등 조세구조를 함께 개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도 부족하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복지의 중요한 기능은 소득재분배이기 때문이다. 조세구조도 손보지 않고, 재정지출구조 개혁도 없이, 고소득층이 세금 더 내는 것도 싫다면 ‘복지=재정파탄’이란 도식밖에 더 나오겠는가?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 ‘싱크탱크 맞대면’은 한국 사회 과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고민하는 연구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정책현안들에 대한 기관의 연구성과를 원고지 10장 분량의 간결한 글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두뇌집단이 내놓은 제안이나 자료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제시도 좋습니다. 문의와 원고는 한겨레경제연구소(heri@hani.co.kr)로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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