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배추가격(10㎏)
시장논리만 기댈 땐 등락 반복
민간차원 대안영역 마련해야
생협 원칙은 책임소비·계획생산
생태친화·지속가능 농업 길 넓혀
민간차원 대안영역 마련해야
생협 원칙은 책임소비·계획생산
생태친화·지속가능 농업 길 넓혀
[싱크탱크 맞대면] 농산물값 급등락 해결책은
정부의 배추값 파동 대책들을 보면 ‘비용 절감을 통한 가격 안정화’ 논리에 머물러 있다. 이래서는 시장논리에 떠밀려 위기에 처한 농업과 식량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지난 한달여 동안 배추값 폭등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지난해만 해도 가격 폭락으로 배추밭을 갈아엎었는데, 불과 일 년 만에 그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것이다. 배추값의 폭등과 폭락 현상이 1~2년 주기로 계속 반복되니,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이번 배추값 파동에는 기상이변과 유통구조 문제, 4대강 개발사업 등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지목됐다. 이미 언론을 통해 수차례 다뤄진 내용들이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러한 요인들을 ‘올해’ ‘배추값’ 문제로 국한시켜서는 본질적인 해결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평균기온 상승을 보면 지구 전체(0.74℃)보다 우리나라가 두 배 이상(1.7℃) 높았다. 기상변동은 앞으로도 농작물을 포함한 식량생산체계에 상당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이번 배추값 파동을 통해 내놓은 정부의 대책들을 보면 ‘비용 절감을 통한 가격 안정화’ 논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중국산 배추를 검역도 소홀히 한 채 무관세로 들여다 가격을 조정하려는 것과 비교우위 논리로 농산물 개방에 앞장서 온 정부의 태도는 다른 것이 아니다.
이래서는 시장논리에 떠밀려 위기에 처한 농업과 식량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더라도 4대강 사업으로 줄어든 농경지가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다. 해마다 각종 개발압력으로 농경지가 줄어들고 식량 자급률도 계속 하락하는데 정부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최근 정부는 국내외 전문가들을 보강해서 농업관측 기능을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농지가 사라지고 농업을 포기하는 농민들이 계속 늘어날 경우 백약이 무효한 상황일 게 뻔하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에 대해 전향적 태도변화와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일 못지않게, 민간 차원에서 자율과 자립, 협동의 원리로 대안의 영역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매우 중요한 때다. 다가올 충격과 변화들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영역’(buffer zone)들이 다양하게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생태와 경제, 사회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완충영역들을 만들어 온 생협의 구실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살림을 비롯한 여러 생협 단체들은 그동안 친환경 유기농업으로 농업과 땅을 살리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얼굴 있는 거래’를 통해 호혜적 협동경제 영역을 만들고, 도농상생의 공동체운동을 통해 사회적 신뢰 관계를 확장하는 데 앞장서 왔다.
최근 배추값이 급등하면서 생협의 직거래 체계가 새삼스레 주목받았다. 단순히 시장가격의 논리만으로 접근해 ‘생협의 물품이 질 좋고 값싸다’는 식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 생협의 가격결정 방식은 일반 시장의 논리와 달라서, 매년 품목에 따라 일반 시장보다 싸기도 하고 비싸기도 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정적인 생협의 가격 체계를 기준으로 볼 때, 시장가격이 상황에 따라 불안정하게 오르내리는 것이다. 따라서 생협이 취급하는 물품의 안정성 못지않게 생협이 만들어가는 ‘비시장적 호혜경제’의 영역에 주목해야 한다.
한살림의 경우 적정 생산비 보장을 통해 생산자 농민들이 의욕과 긍지를 가지고 생태친화적인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생산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협의해 적정 가격과 재배물량을 미리 정한다. 직거래 활동에는 ‘계획 생산’과 ‘책임 소비’라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약속과 신뢰가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작동한다. 물론 생태, 경제적 환경 변화와 널뛰기하는 시장가격으로부터 생협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이 때문에 농업살림기금을 별도로 적립해 생산자의 손실 가격을 보장하는 체계도 갖추고, 급격한 생산비 인상과 물가 상승 등의 요인이 발생하면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살리는 방향으로 가격을 조정하기도 한다.
농업과 식량문제는 생산자 농민들만의 힘으로는 해결에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시장에 운명을 맡길 수도 정부의 정책적 처방을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다. 공동생산자(co-producer)로서 소비자들의 책임 있는 노릇이 필요하며, 그만큼 생협의 사회적 구실과 책임도 커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생협 조합원은 모두 약 40만명이다. 적지 않은 수지만 전체 인구에 견주면 1%에도 못 미친다. 이웃 일본의 경우 생협 인구가 약 22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7%를 차지한다. 생산자 농민은 물론 미래세대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도 생협이 지향하는 본래 가치와 역할에 대해 좀더 많은 사회적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정규호 모심과 살림 연구소 선임연구원
모심과 살림 연구소죽임의 시대를 넘어 생명을 모시고 살리기 위한 생명문화운동과 대안사회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살림의 지원으로 2002년에 설립된 민간연구소이다.
정규호 모심과 살림 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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