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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수직적 상생’ 넘어 ‘수평적 공생’ 이뤄져야

등록 2010-09-12 20:35

현대차계열 부품사와 비계열 부품사간 영업이익률과 당기순이익률의 변동추이
현대차계열 부품사와 비계열 부품사간 영업이익률과 당기순이익률의 변동추이
대기업이 주체 되는 상생
불공평 관계 지속시킬것
정부·기업 함께 참여하는
업종별 협력기구가 대안
[싱크탱크 맞대면] 대-중소기업 상생의 이면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재벌의 상생협력방안은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재벌의 테두리 안에 갇혀서 이뤄지는 종속적 협력안에 불과하다

최근 언론지상을 통해 대기업의 상생협력방안이 연일 집중 보도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을 필두로 한 10대 재벌들은 1차는 물론, 2·3차 협력업체까지 기술 및 자금지원의 확대, 사급제도의 도입, 협력업체 지원펀드 조성 등 상생협력방안의 ‘릴레이’를 하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8일은 중소기업 대표와의 간담회, 13일은 10대 재벌총수와의 회동 등 그럴싸한 상생협력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재벌과 정부는 왜 이리 자신의 상생협력의지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는 걸까? 최근 재벌들이 쏟아내는 하청업체 지원책은 지금까지 그들이 하청업체에 일방적인 횡포를 자행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부의 재벌때리기(?)는 공정사회의 화두를 선전하기 위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화장으로 얼굴의 흉터를 가릴 수는 있지만,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원·하청기업 간 불공정 하도급거래의 실상은 어떠한가? 현대자동차 그룹의 사례는 불공정 하도급거래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현대차그룹은 자동차시장은 물론, 부품수요시장에서의 독과점적 지위를 활용하여 중소하청업체들의 납품단가를 통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립그룹 선언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한 수직적 계열화 전략을 통해 산업연관부문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결과로 인해 현대자동차그룹 부품계열사와 부품비계열사 간의 영업이익률과 당기순이익률의 격차는 지난 10년 동안 계속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그림 1 참고)

한편 원·하청기업 간 불공정 하도급거래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불공정거래 시 하청업체의 마지막 생명줄인 서면계약서의 작성이 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한 불공정거래의 대표적인 행태인 단가 인하는 정기적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원청업체의 필요에 따라 임의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방적이고 부당한 부품단가 인하 방식을 1차 벤더들이 2차, 3차 하청협력업체들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사실이다. 한편 이러한 단가 인하 압력으로 부품업체들의 임률이 통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임금인상까지 제어당하고 있다. 또한 경쟁입찰제도, 복사발주와 발주이원화로 인해 중소하청업체의 과당경쟁과 출혈납품이 일상화되고 있다. 결국 불공정 하도급문제로 인해 하청업체의 혁신가능성은 제어당하고 부품산업의 발전기반은 약화되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퇴행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상생협력을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소기업 간 관계의 본질이 ‘갑’과 ‘을’로 표현되듯이 불평등한 관계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즉 ‘허울뿐인’ 상생협력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불공정한 하도급거래를 조장하는 원·하청기업 간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단순하다. 약자인 하청기업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고 원청대기업의 비리와 횡포를 막는 실효성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계약위반 시 대금의 3배를 환급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일정규모 이상 거래의 경우 표준계약서의 작성의무화, 핵심적인 계약내용의 공정위에 대한 공시의무, 납품단가의 광공업물가지수 연동 및 집단적 단가조정협의 등 원청대기업의 책임을 강화시키는 방안을 현실화시켜야 한다.


불공정거래를 줄이기 위한 방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대일 관계로 대표되는 상생관계를 넘어 모두를 위한 공생적 협력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실질적인 협력관계는 대등한 교섭력을 가진 경제적 행위주체가 의사소통, 인식공유, 공동목표를 만들어내고 기회주의적 태도를 제어할 때만이 가능하다. 만일 이때 기업 간 관계가 불평등하다면, 이를 시정할 수 있는 법제도와 제3의 조정자가 필요하다.

지금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재벌의 상생협력방안은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 재벌의 테두리 안에 갇혀서 이루어지는 종속적 협력방안에 불과하다. 1차 하청업체를 넘어서 2차, 3차 하청업체까지 지원하고 혜택을 주겠다고 하지만, 그 전제조건은 원청업체에 대한 하청업체의 복종이다. 즉 중소하청업체들은 그룹 차원의 협력회에 포함되기 위해 충성과 헌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일단 협력회의 일원이 되면 지원의 대가로 침묵을 강요받는 처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그룹 차원의 협력회는 그들만의 상생협력은 가능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비용과 이익에 대한 담합과 비용 전가로 인해 해당 업종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협력회에 포함되지 못한 수많은 중소기업과 소속 노동자들은 불공정거래와 출혈경쟁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종속적 기업관계를 재생산하는 ‘그들만의’ 상생협력이 아닌, ‘모두를 위한’ 공정하고 대등한 공생협력방안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그 첫걸음은 그룹 차원의 협력회를 대신하여 업종별 관련 대·중소기업 모두를 아우르는 공생협력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정부 산하의 대·중소기업 협력재단을 중립적인 공익기관으로 개편하고, 중소하청업체에 대한 지원 기준·과정·결정과 평가 등 주요한 의사결정을 정부대표, 대·중소기업의 노사대표 및 공익위원 등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독립적 운영감독위원회가 결정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한편 하청업체 지원에 필요한 기금조성은 해당 업종에 속하는 대기업들이 자신의 매출액 또는 시장점유율에 비례해 출자액을 나눠서 납부하고, 정부 또한 상생협력지원기금의 일부를 이 기구에 출연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공생협력기구를 통해 비로소 하청업체는 원청업체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기업역량과 기술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되는 공정사회를 실현하고 대·중소기업 간 협력적 관계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중소하청업체가 ‘반칙왕’인 재벌에 줄을 서야만 ‘떡고물’이라도 받을 수 있는 상생협력이 아니다. 산업관계의 균형과 대등한 기업 간 관계를 촉진할 수 있는 초그룹적인 업종별 공생협력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시장경제의 근본적 아킬레스건인 자본의 독과점과 과당경쟁을 제어하고 공생을 목표로 한 다층적 협력 네트워크가 구축되어야만 원·하청,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거래의 질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싱크탱크 맞대면’은 한국 사회 과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고민하는 연구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정책현안들에 대한 기관의 연구성과를 원고지 10장 분량의 간결한 글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두뇌집단이 내놓은 제안이나 자료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제시도 좋습니다. 문의와 원고는 한겨레경제연구소(heri@hani.co.kr)로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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