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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삐걱대는 G20 ‘경제위기’ 해소 시험대에

등록 2010-08-02 22:40

S&P 500대 기업 주가와 주당수익
S&P 500대 기업 주가와 주당수익
국제적 공조 실패로 회의론도 확산
서울회의서 ‘체제적 공포’ 해법 주목
금융과 재정질서 구축 등 합의 절실
[싱크탱크 맞대면] G20 앞으로의 역할은

G20은 과연 세계경제를 위기의 풍랑에서 이끌어낼 항해사의 자격과 역량이 있는지를 가늠할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경제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지난 토론토에서 열린 주요 신흥20개국(G20) 정상회의의 공동성명은 재정 정책과 금융 개혁에 있어서, 한 신문의 표현대로 “의견을 달리하기로 의견을 모은다”(agree to disagree)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결국 각국 모두 알아서 제 갈 길 가자는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G20은 과연 세계경제를 위기의 풍랑에서 이끌어낼 항해사의 자격과 역량이 있는지를 가늠할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세계경제의 미래도 극히 예측하기 어려운 불투명한 상황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1970년대 초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진 후 일대 혼란에 빠졌던 지구적 금융 질서는 80년대에 들어서 몇개의 기둥을 마련하면서 서서히 새로운 체제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첫째, 제3세계 외채 위기를 기점으로 하여 국가간 금융 재정 관계를 규제할 수 있는 소위 ‘금융 엄격성’의 체제가 확립됐고,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이 여기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둘째, 금융 체제 안정성을 세계 주요 은행들의 자율적인 리스크 관리에 맡겨놓은 채 탈규제를 원리로 하는 지구적 금융 시장의 통합이었다. 셋째, 동아시아의 수출국들이 미국의 달러를 벌어들여 다시 미국 국채를 구입하면 이 자금으로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이 다시 자본을 수출하는 달러 환류 메커니즘이었다. 90년대 클린턴 정권 이래 확고하게 자리잡은 이 지구적 금융 질서는 최근까지 계속된 놀라운 지구적 ‘금융화’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2008년에 전면화된 지구적 금융 위기는 단순한 거품 붕괴나 경기 순환이 아니라 이 세개의 기둥이 모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지구적으로 넘쳐나는 유동성 속에서 지나친 ‘금융화’를 진행했던 나라들 다수가 줄줄이 국가파산을 맞이하였고 이에 아이엠에프와 세계은행은 이전과는 다른 성격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서브프라임 위기에서 명징하게 보여진바, 금융기관에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면 금융 체제 안정성이 저절로 달성될 수 있다는 신화는 근본적으로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서방과 신흥 경제,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지구적 불균형’은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따라서 2008년 말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지구적 움직임이 시작되었을 때 당면한 과제는 지구적 금융 질서의 주춧돌에 해당하는 제도 개혁과 레짐 창출이라는 실로 근본적인 문제였다. 따라서 그 규모가 G7이나 G8을 훌쩍 넘어선 G20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리고 2009년 4월 런던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에 G20은 이러한 큰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지구적 경제공황을 막기 위한 대규모 재정지출을 국제적으로 공조할 것을 결의했다. IMF 및 세계은행의 개혁은 물론 강력한 금융 규제 감독 체제의 확립 등을 약속하였다. 또 은행 건전성에 대해서도 새로운 규칙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후 같은 해 9월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는 ‘지구적 불균형’ 논쟁이 전면화됐고, 은행 임원 상여금 등 금융기관의 모험적 행태의 제재와 관련된 예민한 쟁점들이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토론토 정상회의는 작년의 G20 정상회의 스스로가 이루었거나 이루기로 약속한 것들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과 같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먼저 IMF가 제안한 ‘은행세’는 위기 동안 자국 은행들의 위기를 별로 겪지 않은 인도, 캐나다, 호주 등의 반대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애초 작년 초만 해도 금융기관의 투기적 모험적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훨씬 더 공격적인 ‘금융거래세’의 제안이 상당히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금융 규제 논의의 중심이 IMF로 옮겨오면서 이는 거부되었고, 이를 대체하여 겨우 나온 제안이 ‘은행세’였건만 이 제안조차 별다른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이다.

‘지구적 불균형’ 문제는 중국이 위안화의 달러고정 환율제를 관리변동 환율제로 전환해버림으로써 해결이 된 것도 아니면서 더 논의를 진행하기도 애매하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럽의 국채 위기 이후 긴축재정으로 전환하려는 유럽 각국 정부에 지구적 경기후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재정팽창 정책의 국제적 공조를 이어가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이 실패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재정 정책에 있어서 이제부터 각국은 자국 사정에 맞게 ‘알아서 할 것’을 합의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G20이 앞으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당장 이번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계획대로라면 그동안 논의되었던 핵심 규제 내용들, 즉 자본 건전성, 대형 금융기관 감독, IMF 및 세계은행 개혁 등에 대한 결정이 이뤄져야 하며, 위기 이후의 새로운 관리 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구축이 시작돼야만 한다. 하지만 토론토 회의에서처럼 각국의 입장과 이해타산이 제각각으로 갈라진다면 이러한 진전을 낙관하기 어렵다.

그런데 과연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G20 각국이 ‘각자 알아서 하자’는 식의 태도가 계속된 데에는 이제 위기도 대충 진정되고 ‘정상 영업’(business as usual)으로 돌아갈 시기가 되었다는 분위기가 확산된 원인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돌아갈 ‘정상 영업’의 상태란 게 존재하는 것일까? 혹시 지난 10년간은 지구적 자본주의 전체의 관리가 부실하여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두 불안해 마지않는 ‘체제적 공포’(systemic fear)의 상태가 아니었을까?

위의 그림은 1871년 이래 미국 S&P 500대 기업의 주가와 주당수익(EPS·그림 참고)의 추세를 일별해놓은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2000년 주가 폭락 이래 지난 10년간 이 두 추세가 대단히 긴밀하게 일치하였고, 시간적으로 주가의 변동이 주당수익의 변동을 뒤따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본래 미래 수익에 대한 공격적인 예측을 통해 주가가 형성되는 자본시장의 성격을 볼 때, 이러한 사실은 지난 10년간 투자자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으로 인해 섣부른 미래 수익 예측을 자제하고 기업 수익 발표가 나오면 그에 반응하여 행동하는 보수적인 태도로 전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행태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미래 자체가 대단히 불확실했던 30년대의 10년간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2008년이 아니라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지구적 자본주의의 제도적 안정성과 미래에 대한 투자가들의 관점은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80년대에 마련되기 시작하여 90년대 말에 그 전성기를 구가하던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가 과연 앞으로도 미래 수익의 예측을 가능하게 할 만큼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한 지 오래라는 것이다.

게다가 2008년부터 시작된 금융 위기는 올해 들어 이제 지구적인 재정 위기로 연결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불확실성으로의 진입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안정성과 지속성에서 믿을 수 있는 금융 및 재정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구적 합의는 실로 절실한 일이다. 지금 나오고 있는 여러 예측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의 세계경제는 경기후퇴의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벌어질 서울 정상회의가 과연 이러한 ‘체제적 공포’를 덜어낼 수 있도록 금융과 재정 질서 전반에 안정된 기반을 놓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한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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