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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복지국가 모델, 토지의 해악 너무 가볍게 다뤄

등록 2010-07-04 17:51

자가총액 및 토지 불로소득 규모 추이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수위축·빈부차·토건사업 낭비
사회문제 대부분이 토지와 연관
보유세 강화로 불로소득 환수해
경제부담 줄이는 대안 제시해야
[싱크탱크 맞대면] 진보의 복지확대론 뭘 간과했나

대안모델은 경제제도, 사회제도, 조세제도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진보진영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복지국가 모델’은 기본 문제인식과 조세정책에서 많은 아쉬움을 보이고 있다.

6·2 지방선거 이후 정당개편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논의의 바탕에는 ‘촛불’로 상징되는 양식 있는 시민들이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당개편 논의가 생산적이려면 그 중심에는 ‘어떤 대안이 한국 사회를 제대로 바꿀 수 있는 모델인가’라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 일부에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먼저 이 모델의 기본 문제인식부터 평가해보자. 이 모델은 현재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뿌리에는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이 용어는 한국 사회의 난마처럼 얽힌 문제를 포착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말이라고 생각된다. 신자유주의 하면 일반적으로 감세, 작은 정부, 복지 축소, 노동의 유연성이 떠오른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는 더 걷어야 할 세금이 있고, 덜 걷어야 할 세금이 있다. 정부의 관리·감독을 확대·강화해야 할 부분이 있고, 축소·약화시켜야 할 부분이 있다. 복지를 늘려야 할 부분도 있고, 줄여야 할 부분도 있다. 기업 쪽에도 문제가 있고, 노동 쪽에도 문제가 있다. 진보가 추구하는 분배·형평성·안정성·연대성도 중요하지만, 보수가 지향하는 성장·효율성·역동성·경쟁 등도 중요한 가치이다. 그런데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 하면 전자는 옹호하고 후자는 홀대하기 쉬워진다. 왠지 시장을 부정해야 할 것 같은 생각부터 들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외환위기 이후 계속 벌어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문제를 살펴보자. 신자유주의라는 안경을 끼고 보면 이 문제의 원인이 기업(자본)에 있는 것으로 보기 쉽다.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고용·착취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원인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러나 안정성과 급여 면에서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는 정규직의 조직이기주의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원인이다.

이런 것은 중소기업중앙회가 매년 발행하는 <해외중소기업현황>과 <중소기업현황>을 통해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2000년 이후 일본의 500인 이상 대기업의 연간급여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1.5배를 계속 유지하고 있고 미국의 500인 이상 대기업의 연간급여도 1인당 지디피의 1배를 유지하는 데 비해, 정규직이 몰려 있는 대한민국 대기업의 임금 수준은 1인당 지디피의 1.88배(1997년) → 2.01배(1999년) → 2.09배(2002년) → 2.21배(2004년)→ 2.23배(2007년)로 해마다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업으로서는 이런 ‘가파른 임금상승’이라는 부담을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은 임금이 높고 까다로운 정규직 고용을 가급적 자제하고 임금이 낮고 상대하기 쉬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 이면에는 부실한 사회적 안전망과 높은 집값이라는 현실이 웅크리고 있다. 집을 사려면 엄청난 돈을 대출받아야 하고 퇴출되면 ‘시베리아 벌판’이라는 냉혹한 현실이, 비정규직에 대한 연대의식이 아니라 대기업 정규직으로 있을 때 더 많이 챙겨야 한다는 조직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러한 실상은 신자유주의보다는 ‘특권에서 비롯된 반칙’이라는 안경으로 봤을 때 더 잘 보인다.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착취도 반칙이고 다음에서 살펴볼 토지 불로소득의 사유화도 반칙이다. 이런 시각의 유용성은 ‘나쁜 시장’을 ‘좋은 시장’으로 개혁할 수 있는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세금문제를 살펴보자. 보편적·적극적 복지를 주장하는 이 모델은 기본적으로 복지의 재원을 누진 소득세에서 찾는다. 현존하는 복지국가인 북유럽 국가들과 비교해서 우리의 조세구조와 조세부담률이 이러하니 그리로 가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인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조세정책의 위치에 대해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조세정책은 재원 마련이라는 목적도 달성해야 하지만 기왕이면 경제효율을 해치지 않는 방향, 아니 더 나아가서 경제효율을 높여 복지의 필요를 줄이는 방향에서 고민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정책 방향이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토지보유세는 계속 강화하면서 경제에 부담을 주는 기타 세금은 감면하는 ‘패키지형 세제개편’이다.

토지보유세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면 금융권의 많은 자금들이 토지투기가 아니라 생산적 투자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토지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노력이 생산적 활동으로 바뀌고, 이것은 투자 증가와 노동공급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토지 불로소득 때문에 발생했던 빈부격차는 시정되고, 높은 진입장벽이라고 할 수 있는 고지가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창업활동도 더 활발해질 것이다. 집값의 하향 안정화는 내수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여기에다 경제에 부담을 주는 다른 세금까지 감면하면 경제효율은 더욱 높아지고 새로운 일자리는 더 많이 생겨나게 되며, 결과적으로 정부의 복지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복지국가 모델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토지의 독자성을 간과하고 자본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 오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모델이 토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루더라도 금융·주택에만 국한시키는 경향이 강하고 근본적인 문제 해법엔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검토해보면 토지를 가볍게 취급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내수가 위축되는 문제, 표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엄청난 토지 불로소득이 일부 토지소유자에게 집중되어서 생긴 빈부격차 문제, 도로와 같은 기반시설을 설치하기 어려운 문제, 창업하기 어려운 문제,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 문제, 엄청난 정부재정을 토건사업에 낭비하는 문제, 적대적 노사관계 문제, 부동산 거품 붕괴가 초래하는 금융시스템 마비 문제 등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상당한 원인이 토지에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것은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토지의 문제’다. 그런데 복지국가 모델은 토지문제가 초래한 광범위한 해악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가의 중요한 제도를 크게 셋으로 구분하면 경제제도, 사회제도(복지제도), 조세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좋은 대안이 되려면 세 제도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대안모델은 경제에 부담을 덜어 줄 뿐 아니라 오히려 경제효율을 높이는 조세제도, 경제를 더욱 활성화시켜 사회제도의 필요를 줄여주는 경제제도, 연대의 정신이 꽃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뿐만 아니라 역동적 시장 조성에 기여하는 사회제도를 구상하는 방향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진보진영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복지국가 모델’은 기본 문제인식과 조세정책에서 많은 아쉬움을 보이고 있다.

남기업 토지+자유 연구소 소장

※ ‘싱크탱크 맞대면’은 한국 사회 과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고민하는 연구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정책현안들에 대한 기관의 연구성과를 원고지 10장 분량의 간결한 글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두뇌집단이 내놓은 제안이나 자료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제시도 좋습니다. 문의와 원고는 한겨레경제연구소(heri@hani.co.kr)로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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