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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비용에 맞춘 진료’ 아닌 ‘최선의 진료’ 가능해야

등록 2010-06-27 22:00

최근 5년 간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및 응급의학과 전공의 확보율
최근 5년 간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및 응급의학과 전공의 확보율
공공의료는 재정위기 불가피해
스스로 보험료·보장규모 정하는
‘자기 책임성 강화’ 원칙이 대안
의료공급부족막을 수가현실화도
[싱크탱크 맞대면]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어떻게

우려는 비단 재정 측면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의료공급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지 못한다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은 보장될 수 없다. 재정과 의료공급이라는 두 측면을 다 고려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본격 대두되고 있다. 고령인구의 급속한 증가로 보험재정 압박요인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돈 낼 사람은 줄어들고 돈 쓸 사람은 빠르게 늘어나니 보험재정이 견뎌낼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다.

국민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비단 재정 측면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의료공급 측면에서도 국민건강보험의 지속가능을 위협하는 심각한 요소가 있다. 그럼에도 국민건강보험의 지속가능을 위한 논의는 주로 재정 측면에서만 거론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의료공급의 지속가능이 담보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보험재정의 위기를 극복해도,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은 보장될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의 지속가능을 위한 논의는 재정과 의료공급이라는 두 측면을 다 고려하며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커져가는 국민보험재정의 압박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놓고 최근 이런저런 대안이 거론된다. 대표적인 게 포괄수가제와 총액계약제다. 둘 다 의료공급의 제한을 통해 보험재정을 절감하자는 목적을 담고 있다. 포괄수가제나 총액계약제의 제시는 유감스럽게도 국민건강을 중심에 놓고 고민한 결과로 보이지 않는다. 논리적인 사고체계의 산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치열한 철학적 사유와 깊은 성찰의 산물인지가 의문이다.

현행 행위별 수가제는 물론 과잉진료의 유인이 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최선의 진료를 하게 하는 유인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오늘날 ‘최선의 진료’와 ‘비용에 맞는 진료’ 중 어느 것이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인가. 만일 국민건강보험과 같이 국가가 모든 걸 책임지는 시스템이 아니라 각 개인이 책임을 지는 체제라면 스스로 의료서비스를 구입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닌 경우 대개는 최선의 진료를 선택할 것이다. 동네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도 충분한 경증질환이나 만성질환 환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많게는 5배까지 비싼 대형병원을 찾는 현상이 그걸 말해준다. 국민건강을 중심에 놓고 사고한다면 건강보험 역시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옳다.

총액계약제도 마찬가지다. 총액계약제는 한마디로 돈(재정)의 범위 안에서 진료하라는 얘기이다. 이 역시 국민건강을 중심에 놓고 사고한다면 있을 수 없는 발상이다. 의료기관 개설을 쿼터제로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국민건강을 팽개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총액계약제는 국정운영 방식과도 맞지 않는다. 국정운영에서 정부는 먼저 사업계획을 확정하고 그에 따른 예산을 편성하여 재원을 조달한다. 총액계약제는 이와는 반대로 정해진 재원만큼의 사업계획만을 세워 집행하는 식이다. 이런 식의 국정운영은 있을 수 없지만 의료에 있어서는 더더욱 안 될 말이다. 의료의 경우 그 특성상 재정의 범위 안에서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재정의 범위 안에서만 질환이 발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포괄수가제나 총액계약제는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을 위한 대안이라고 하기 어렵다. 단순히 재정절감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모르지만, 국민건강보험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재정 이상의 복잡한 문제들이 있다. 의료공급의 지속가능이라는 측면을 생각한다면 특히 더 그렇다.

대한민국은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전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다. 그뿐 아니라 의료 접근성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게 있다. 이 눈부신 성과의 이면에는 의사들의 희생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것이 의사들의 자발적인 희생이 아니라 국가의 강제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위해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규격화하고 가격을 통제해온 결과이다.

의사집단의 희생을 강제하는 가운데 운영할 수밖에 없는 제도라면 그건 정말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텨왔지만 이대로는 더이상 의료공급이 지속가능하지 않음이 드러났다. 전공의 기피과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지난해 2월27일 2009년도 제4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의 의제는 ‘전공의 지원기피 진료과목 활성화를 위한 수가조정(안)’이었다. 이날 회의의 배경은 흉부외과·외과 등 외과 계열의 신규 의료인력인 전공의의 지원율이 저조한 상태이며 갈수록 악화되는 현실이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면, 외과 계열 전문의 수급 문제가 심각해져 국민의 기본적인 의료보장을 저해할 것이기 때문에 전공의 기피과의 수가를 인상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수가를 올려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은 기피과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당시 정부가 제시한 자료를 보면 2009년 기준으로 최근 5년간 전공의 모집 결과 성형외과·안과·피부과 등은 100% 확보, 흉부외과·외과 등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도의 경우 전공의 전·후기 모집 결과, 정원 대비 확보율은 흉부외과 27.6%, 외과는 64.8%에 불과했다. 정부는 이 추세라면 2015년부터 해당과의 전문의 공급 부족사태가 빚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왜 이와 같이 기피과가 나타났는가. 정부는 “과도한 업무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건강보험 수가 및 의료사고 위험 등으로 인해 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지원하는 전공의가 부족하니 전공의 1인당 업무량은 많아지고, 그래서 더 기피를 부채질한다. 수련 중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도 빈발한다. 뒤늦었지만 사태를 바로 본 것이다.

경제학에서 이런 현상을 시장의 복수라고 부른다. 시장은 시장기능이 작동하지 않을 때 이에 징벌을 가한다. 그리고 이는 시장기능이 작동케 하도록 하기 위한 교정과정이다. 예컨대 아파트 값을 시장기능에 의하지 않고 정부가 강제로 낮춘다면 당장은 좋은 듯 보이지만, 이는 곧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미치지 못해 가격폭등을 부른다. 그렇게 해서 시장기능이 작동케 하는 것이다.

의료라고 예외일 수 없다. 흉부외과가 기피과 1순위가 된 것은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특정 상품이 어떤 강제에 의해 제값을 받지 못하게 하면 상품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제값을 받지 못하면 상품 공급자가 상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는 것이다.

의료공급의 붕괴 위기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수술할 의사가 없어서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 기피과의 수가를 조금 올려준다 해도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따름이다. 주목할 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진료일수록 국가의 가격통제가 심하고, 따라서 공급의 지속가능성이 더 위협받는다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보험재정이 튼실해야 한다. 그런데 공공의료 제도는 끊임없이 보장성 확대 요구를 받도록 되어 있어 재정위기는 불가피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 책임성의 강화 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 의료소비자인 국민이 스스로 보험료와 보장의 규모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그래야 재정의 측면에서도, 의료공급의 측면에서도 국민건강보험이 지속가능할 수 있다.

조남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전문위원

※ ‘싱크탱크 맞대면’은 한국 사회 과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고민하는 연구기관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다양한 정책현안들에 대한 기관의 연구성과를 원고지 10장 분량의 간결한 글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두뇌집단이 내놓은 제안이나 자료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제시도 좋습니다. 문의와 원고는 한겨레경제연구소(heri@hani.co.kr)로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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