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수백가지 독성 화학물질 사용
반도체 분야 치명적 산재율이
생산직 평균의 2배이상 달해
국가적 조사 통해 해결해야
반도체 분야 치명적 산재율이
생산직 평균의 2배이상 달해
국가적 조사 통해 해결해야
[싱크탱크 맞대면] 첨단산업의 환경 공해
소비자들의 선망과 경제 정책 담당자들의 찬사에 가려져 있지만 IT 제품의 생산, 소비,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노동자 및 주민의 건강 위협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통신(IT) 선진국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통신망을 갖추고 있고, 국제적인 전자통신 기업들이 한국을 신제품 시험장으로 여길 정도로 신기술과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용력 또한 높다. 라디오, 흑백텔레비전 등 단순 가전제품에서 출발한 한국의 정보통신 산업은 1980년대 들어 컴퓨터, 반도체 등 기술집약적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담당해 왔다. 현재 엘지와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고 삼성전자의 2009년 순이익이 거의 10조에 달하는 등 이 첨단 산업 분야는 국내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소비자들의 선망과 경제 정책 담당자들의 찬사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이 정보통신 산업에도 어두운 그늘이 깊이 드리워져 있다. 최첨단 기능으로 무장하고 우아한 디자인으로 포장된 아이티(IT) 제품의 생산, 소비,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노동자 및 주민의 건강 위협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이티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수백 가지의 독성 화학물질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반도체 칩 생산에 필수적인 6인치 크기의 웨이퍼(반도체 기판이 되는 원 모양의 판) 하나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화학물질이 무려 9㎏에 이른다고 한다. 웨이퍼에 회로 디자인을 그려 넣는 에칭 과정과, 오염 물질 제거를 위한 세정 과정에 많은 양의 유기용제 솔벤트와 산화 용액이 사용되는데 이 물질들은 자연 생태계와 인체에 치명적인 것들이다.
그런데 환경문제는 누구나가 부닥칠 수 있는 보편적 문제지만, 또 한편 사회적으로나 계층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들에게 피해나 부담이 더 집중되는 불평등 문제이기도 하다. 이 환경불평등 구조는 환경 혐오 시설이 가난한 동네에 더 많이 몰린다든지, 공해 산업이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되어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건강 위협에 더 집중적으로 노출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드러난다.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되는 엄청난 양의 화학물질은 곧바로 생산 공정에 투입되어 있는 노동자들을 위협한다. 텔레비전에서 비치는 반도체 공장의 이미지는 클린룸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얗게 둘러싼 일명 ‘토끼복장’으로 상징되는 청정 산업이다. 하지만 클린룸은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공간이고 노동자들이 착용한 ‘토끼복장’은 체모, 피부, 땀으로부터 마이크로 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화학물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이 중공업 노동자들에 비해 치명적인 산업재해가 적다고 하나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 미국 노동통계국(BLS) 보고를 보면 2001년 전체 생산직 분야의 노동력 완전 상실 수준의 산재 발생률이 6.3%인데 전자산업의 경우는 9.5%이고 반도체 분야는 15.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티 산업의 환경 불평등 구조는 이 산업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났다. 아이비엠(IBM)과 페어차일드반도체 등 핵심 사업장에서 환경문제가 발생했을 때 특히 사회적 약자인 현장 노동자, 그중에서도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암, 유산 등 가장 집중적으로 피해를 당했던 것으로 보고된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하던 아이티 생산 공장들이 낮은 인건비와 느슨한 환경·노동 규제 지역을 찾아 아시아와 중남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아이티 산업의 환경 및 보건안전 문제는 이제 개발도상국의 노동자들에게 전가되었다.
페어차일드반도체나 모토롤라 등 외국 소유 아이티 기업들의 생산 기지 구실에서부터 출발한 한국의 아이티 산업은 1980년대 들어 독자적인 기술과 자본을 형성해 나가면서 국가 경제에서 점차 그 비중을 높여 나갔다. 하지만 이 첨단 산업에서 발생한 환경오염과 노동자의 보건안전 문제는 수출 주도산업, 첨단 클린 산업이라는 상징에 가려진 채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수년 전부터 삼성 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사례가 보고되기는 했지만 일군의 노동 및 보건 단체들로 구성된 ‘반올림’이란 민중단체가 이 문제에 외롭게 대응해왔을 뿐이다.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은 황민웅, 이숙영, 황유미씨 등의 연이은 사망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산재 치료 및 보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해 들어 산재 치료 및 보상을 애타게 기다리던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의 박지연씨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이에 대한 충격과 안타까움으로 많은 언론이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또다른 피해자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현재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 반도체, 삼성엘시디(LCD) 공장 등에서 일하다 백혈병, 림프종, 유방암과 희귀질병을 앓게 되었다는 노동자들의 수는 55명이고 이 중 이미 사망한 사람이 18명에 달한다. 이는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큰 재난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간 산업 안전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노동부, 반도체 제조장비의 안전기준을 관리하는 지식경제부, 그리고 제조 과정에서의 특정 화학물질 사용 규제를 담당하는 환경부 등 정부 부처들은 대부분 기업의 영업비밀 등을 더 중시하고 피해자들이 보호받을 권리에 대해서는 매우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객관적 사실을 검증할 책임이 있는 근로복지공단이나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등도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이제는 국회가 나서서 국가적 차원의 역학 조사를 실시하여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시급한 실정이다. 그것이 아이티 강국의 신화를 일구는 과정에서 스러져간 노동자들의 희생에 대한 예의이자 세계 최고 기업의 수준에 적합한 책임을 부여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서왕진 환경정의연구소장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이 중공업 노동자들에 비해 치명적인 산업재해가 적다고 하나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 미국 노동통계국(BLS) 보고를 보면 2001년 전체 생산직 분야의 노동력 완전 상실 수준의 산재 발생률이 6.3%인데 전자산업의 경우는 9.5%이고 반도체 분야는 15.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 손실 유발 직업병 비율
연재싱크탱크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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