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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국가주의 넘어선 정의·진실의 상징

등록 2024-01-04 14:06

 

[나는 역사다] 알프레드 드레퓌스 (1859~1935)

프랑스 육군 포병대위 드레퓌스가 체포됐다. 적국 독일에 군사기밀을 넘겼다는 간첩 혐의였다. 1895년 1월5일 종신형이 선고되고 드레퓌스는 적도 부근 ‘악마섬’에 유배된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고, 드레퓌스는 결백을 주장했다.

1896년 우연히 진범이 확인됐다. 에스테라지 소령이었다. 군은 그를 구속하고 재판했지만 신뢰 추락을 우려해 증거를 조작하고 풀어줬다. 드레퓌스는 계속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는 차별받던 유대인이었다.

죄가 없으니 풀어줘야 한다는 드레퓌스 지지파가 있었다. 자유주의·공화주의·사회주의자들이었다. 반면 군과 국가의 위신을 위해 풀어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반대파도 있었다. 군국주의·국수주의·반유대주의자, 왕당파와 가톨릭교회 등이었다. 편이 갈린 프랑스 사회는 내전을 방불케 하는 갈등을 겪는다. 훗날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렇게 썼다. “자기 불만을 설명할 수 없던 사람들이 외국인을 비난하며 집단적 분노를 표현하는 일에 민족주의가 쓰였다.”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좌파와 우파가 ‘헤쳐 모여’를 했다. 한때 공화국 수호에 목숨 걸던 좌파가 ‘국가보다 정의’라는 가치를, 공화국을 흔들던 우파가 국가주의를 각각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식인들이 드레퓌스 지지파에 가담했다. 소설가 에밀 졸라는 1898년 1월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썼다. 군의 명예를 훼손한 죄로 졸라는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그의 글은 여론을 움직였다. 국가도 죄 없는 사람을 더는 유배지에 잡아둘 수 없었다. 드레퓌스는 1899년 대통령 특사로 풀려나고 1906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는다. 드레퓌스는 군에 복귀해 소령으로 승진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받는다.

프랑스 육군은 100년이 지난 1995년에야 드레퓌스는 무죄였다며 공식 사과한다. 프랑스 극우세력은 최근까지도 드레퓌스가 의심스럽다고 억지를 쓴다. 높은 사람이나 권력기관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모습을 가끔 본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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