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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법원장의 관운 [유레카]

등록 2023-11-13 14:40수정 2023-11-14 02:39

대법원장에 지명된 조희대 전 대법관. 김재욱 화백
대법원장에 지명된 조희대 전 대법관. 김재욱 화백

미국 연방 대법원장이 되려면 준비와 노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자질·경력·역량을 두루 갖춘 법조인이어도 ‘현직 원장’이 건재하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 종신직이라 사임이나 사망 말고는 바뀔 일이 없어서다.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도 마찬가지다. 초대 조지 워싱턴부터 조 바이든까지 45명 대통령 가운데 지명사를 쓴 사람은 15명에 불과하다.

어찌어찌 시운이 맞아도 ‘피아’를 구분하는 이념 검증(1차), 의회 인준 가능성(2차)이란 좁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마지막은 대통령이다. 친하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제13대 프레드 빈슨 대법원장이 그랬다. 전임 할런 스톤이 1946년 사망하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사교성 좋은” 자기 친구 빈슨(당시 재무장관)을 지명했다. 그런데 재임 7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1970년 여론조사에서 “실패한 대법원장으로 조사된 유일한”(‘미국 대법관 이야기’) 인물이다.

그의 죽음이 누군가에겐 기회가 됐다. 검사 출신 정치인으로 1952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얼 워런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막판까지 경합하다 접고 본선 캠페인을 도왔다. “대법원에 자리가 비면 주겠다”는 내약을 받고서다. 대선 뒤 법무부 장관직을 제안받고 고심하던 차에 빈슨이 급서했다. 애초 약조한 대법관이 아니라 대법원장 자리가 빈 것이다. 망설이는 아이젠하워를 압박해 기어코 지명을 받아냈다. 부당거래 혐의가 짙지만, 재임기 내내 민주당도 놀랄 만한 진보적 방향으로 대법원을 이끌어 ‘절차혁명’으로 평가받는 성취를 남겼다.

현직 존 로버츠(제17대·2005년 9월~)도 행운을 주운 경우다. 애초에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사임 의사를 밝힌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의 후임으로 그를 공개지명했다. 한데 인사청문회 직전 상황이 급변했다.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이 타계한 것이다. 때마침 태풍 카트리나에 대한 굼뜬 대처로 여론의 포화를 맞던 부시는 “지지기반을 기쁘게 할”(‘더 나인’) 국면 전환 카드로 그를 떠올렸다. 대법원장에 재지명한 것이다. 로버츠의 나이 쉰이었다.

우리나라에선 한달 넘게 공석인 제17대 대법원장 후보자로 조희대 전 대법관이 지난 8일 지명됐다. 이균용 후보자의 임명 동의안 부결이 조 후보자에겐 기회가 된 셈이다. 여느 법조인은 한번 하기도 어렵다는 대법관을 이미 지낸 터라 대단한 관운이라는 평이 나온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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