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앞장서 불로소득 창출이라는 탐욕의 레퀴엠을 부른다는 점에서 김포시 서울 편입 주장은 역대 최악의 공약이 아닐까 한다. 한겨레TV ‘논썰’ 조소영 피디
현대 민주주의 약점 중 하나는 맹렬한 소수가 방관하는 다수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쏟아내는 인기영합 정책들이 정확히 그 점을 노리고 있다. 김포시 서울 편입이나 공매도 금지, 종이컵 규제 철회처럼 특정 소수가 강력히 원하는 정책은 확실한 내 편을 만든다. 김포에 집이 없거나 주식투자를 하지 않고, 식음료 자영업자가 아닌 불특정 다수는 큰 관심이 없다.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으니 반대의견이 있더라도 파괴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반해 카카오·은행 때리기와 사형 집행은 불특정 다수가 막연히 찬성하는 정책들이다. 특히 사형제의 경우 반대하는 세력이 소수에 불과해서 작은 기회비용으로 다수를 끌어들일 수 있다. 특정 소수가 강하게 원하는 정책과 불특정 다수가 막연히 찬성하는 정책에 공통점이 있다면, 찬성 여론은 결집해 있거나 소리가 크고, 반대 여론은 흩어져 있거나 소리가 작다는 점이다. 엎어치나 메치나 남는 장사라는 계산 결과를 미리 뽑아본, 나름 정교한 포퓰리즘인 셈이다. 영리한 두뇌들이 모여 회심의 선거 전략을 고안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와 여당의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오랜 국민적 합의를 깨버리거나(김포시 서울 편입), 주식시장의 글로벌스탠더드 준수라는 상식을 짓밟고(공매도 금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보편적 대의를 무시하며(종이컵 규제 철회), 대통령이 마치 검사처럼 혐의 사실을 적시해 망신을 주고(카카오·은행 때리기), 사형제 폐지라는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는(사형 집행) 등 시대와 상식에 맞지 않는 후진적인 정책들 일색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포시 서울 편입 주장은 이명박 정부의 뉴타운보다도 반서민적 성격이 명확하다. 뉴타운이 ‘새집 줄게 헌집 다오’라는 개발 공약이었다면, 김포시 서울 편입은 행정구역 변경만으로 앉아서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게리맨더링 같은 공약이다. 뉴타운은 새집이라는 부가가치라도 창출했지만, 김포는 완벽한 제로섬 게임이다. 다른 인근 자치단체들까지 가세해 이 정책이 정말 실행된다면 집 없는 수도권 서민들의 고통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더구나 여당이 앞장서 불로소득 창출이라는 탐욕의 레퀴엠을 부른다는 점에서 역대 최악의 공약이 아닐까 한다. 여당이 수도권 주민들의 귀에 대고 욕망을 감추지 말라고 속삭이는 메피스토펠레스가 된 꼴이다. 세계 여행객들의 증가로 요즘 갑자기 출몰한다는 빈대 같은 발상이다. 혹시나 하는 주민들의 기대에 탐침을 꽂고 표라는 피를 빨아먹으려는 것 아닌가. 아무리 불리한 선거라 해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바닥을 드러내는 여당은 난생처음이다. 만약 선거용 일회성 정책이라면 ‘떴다방’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종이컵 금지 정책 철회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세게 밀고 있는 사형 집행이야말로 윤석열 정부 우파 포퓰리즘의 정수에 해당한다. 이 정부가 기후변화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런 식으로 표와 바꿔먹으려고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재생에너지 사갈시에 이어 반환경으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이러다 트럼프처럼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할지 모를 일이다. 미국과 일본 같은 몇몇 예외를 빼면 후진국이나 독재국가에서만 하고 있는 사형 집행을 한 장관이 굳이 고집하는 이유도 단순하다. 일부 극악한 범죄자들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사형제 실시 여론이 높은 것은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다. 정부가 올바르게 계도할 생각은 않고 대중의 분노에 올라타는 건 우파 이념의 몰지성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으로, 나는 이 정부가 우민화의 단계를 지나 중우정치(衆愚政治)를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카카오·은행 때리기 역시 대중의 분노에 편승하는 것이다. 카카오택시라는 독과점 사업으로 전 국민의 공적이 되어버린 카카오와 이자 장사로 돈 잔치를 벌이는 은행이 돌팔매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문제는 독과점과 이자 장사의 구조를 만든 정부가 책임을 지기는커녕 함께 돌을 던지는 쪽에 서 있다는 점이다. 공감하는 척하는 정부의 분풀이는 사태의 본질을 은폐하고 근본적 해결을 어렵게 할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포퓰리즘 정책은 누군가의 이익과 열망 뒤에 공멸의 길을 감추고 있다. 건전재정이 중요하다면서 부자감세를 강행해 정부 곳간을 비우는 자가당착에 빠져 연구개발(R&D) 예산을 사상 처음으로 깎더니, 선거를 앞두고 주식양도세와 상속세 등 추가적인 부자감세에 또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반면에 국민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시급한 국민연금 개혁은 다시 요원해졌고, 인구 감소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주식매매를 하다 들키고, 사익편취행위 적발시 총수일가도 함께 고발하려던 공정위의 계획은 ‘아주 조용하게’ 없던 일이 되어가고 있다. 국운이 다해간다고 느끼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관하는 다수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결집할 수 있다면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는 거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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