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을 만든 것은 영국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영국은 오스만제국을 해체해 중동의 땅과 자원을 차지하려했다. 1차대전 이후 팔레스타인 땅을 장악한 영국은 이집트 수에즈 운하 이권을 보호하고, 송유관을 건설하기 위해 친영국 유대국가 건설을 지원했다. 영국 정부와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은 아랍인과 유대인이 공존하며 살아온 팔레스타인을 “민족없는 땅”으로 선전하면서 이곳에 유럽 유대인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1948년 5월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마을 500곳을 파괴하고, 수천명을 살해하고 75만명을 내쫓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나크바’(대재앙)라고 부르는 이날 ‘피난민’이 된 이들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현재 전 세계 팔레스타인인 1210만명 가운데 65%인 790만명이 난민이다. 난민들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영토인 서안(약 300만)과 가자지구(약 230만) 그리고,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 주변 아랍국가들의 난민촌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거의 절반은 국적이 없다. 사방이 높이 6m 분리장벽으로 둘러싸인 ‘세계 최대의 난민촌이자 감옥’인 가자지구 주민 230만명 중 70%는 이스라엘에 땅과 집을 빼앗기고 쫓겨난 난민들이다. 가자지구 안 8개 난민캠프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인데, 가자시티의 비치캠프에는 0.52㎢의 땅에 8만4077명이 살고 있다.(홍미정·마흐디 압둘 하디 <팔레스타인 현대사>)
하마스의 잔혹한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육·해·공 전면 공격에 나서려 한다. 이미 열흘째 물·식량·전기가 모두 끊겼고 피난행렬에까지 폭탄이 날아들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극우 정부가 하마스 ‘응징’을 내세워 주민들을 죽이거나 내쫓고 가자지구를 차지하려 ‘인종청소’를 벌이고 있다고 우려한다. 가자의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임박한 지상군 투입을 ‘제2의 나크바’로 여기는 이유다. 가자 주민들이 피난에 나선다면 그들이 살아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보장은 있는가.
지난 75년 동안 이스라엘은 유엔 결의로 정해져 있고, 국제사회와도 약속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지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자와 서안 주민에게 이스라엘 시민권이라도 주어야 하지만 그것도 거부한다. 이들을 받아들이면 아랍인이 유대인보다 많아져 ‘유대국가 이스라엘’이 흔들릴 것을 우려한다. 이스라엘 극우 정부는 그동안 가자지구는 하마스에 ‘맡겨둔 채’,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성지가 있는 동예루살렘과 그 주변 서안지구에서 더 많은 땅과 재산을 뺏는 데 주력해왔다. 하마스의 공격 직후인 9일 이스라엘 언론인 기드온 레비는 <하아레츠>에 “이 모든 일 뒤에는 이스라엘의 오만이 있다. 우리가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오만 때문”이라고 이스라엘의 성찰을 촉구했다.
하마스가 민간인을 학살하고 인질로 붙잡은 데 분노한 것과 똑같은 잣대로 가자지구의 고통을 직시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식 방법’으로 가자지구에서 민간인들을 희생시키며 하마스를 절멸시킨다 해도 그 다음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인간’이 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더 큰 절망과 분노, 증오와 폭력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박민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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