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일상화는 사람들의 언어 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이제 그 변화의 방향과 속도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다. 게티이미지뱅크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올 초 챗지피티(ChatGPT) 등장 이후 인공지능은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다. 개발 속도가 빨라지면서 능력과 기능도 날로 향상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늘 그랬듯 이를 두고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다가 차츰 불안과 우려가 커지는 양상이다. 실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인공지능을 둘러싼 규제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부터 정보조작과 악용, 저작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려의 범위는 매우 넓다. 이러한 우려는 그 문제의 중요성만큼이나 매우 타당하다.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공지능 도입은 긍정이냐 부정이냐보다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가 논의의 중심이다. 오늘날 사용하는 언어는 늘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에 관한 지적은 대체로 비관적이다. 젊은 세대의 언어 사용은 문제가 있다거나,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고 긴 글을 쓰지 못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언어 변화는 중립적 현상임에도, 그 사회가 그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으로 인한 언어 변화로는 어떤 게 있을까. 아직 초기 단계라 앞날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크게 네가지를 점칠 수 있다.
첫째는 간소화다. 인공지능이 구사하는 언어에는 반복이나 말 끊기, 다시 말하기 등이 없다. 문법적 실수도 없이 간결하다. 사회적 기대에 맞추기 위한 포장이나 돌려 말하기 등이 없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용 중심으로 소통한다. 이런 소통 방식이 인간끼리의 소통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간소화된 말과 글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컴퓨터나 인터넷 환경에서 맞닥뜨리는 오류 메시지는 그 내용만 전달할 뿐 요구가 없으면 원인을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간결한 메시지에 익숙해지면 사람들끼리의 대화도 어떤 설명 없이 상황 자체만 전달하게 된다.
둘째는 언어의 벽이 사라진다. 20세기 중반부터 이미 컴퓨터가 언젠가 언어의 벽을 깰 거라는 예측이 있었다. 디지털 혁명 초기부터 여러 시도를 거듭해왔고, 인공지능이 드디어 그 서막을 열었다. 아직은 사용자가 많은 언어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클릭 한번으로 거의 모든 텍스트가 번역되는 세상에 이미 살고 있다. 서로 다른 언어의 말과 글이 쉽게 번역되면서 외국어 학습 필요성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고, 앞으로 더욱 그럴 것이다. 언어의 벽이 사라짐으로써 예전에는 그 벽에 가로막혔던 정보를 손쉽게 획득할 수 있게 되어 지구가 순식간에 확 줄어들었다.
셋째는 언어 교육의 변화다. 아직까지 거의 모든 국가 교육과정에는 인공지능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사회적 책임이 무거운 까닭에 교육계는 세상의 변화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거나 유행을 즉각 따르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너무 늦어짐으로써 현실에서 멀어져서도 안 된다. 인공지능은 앞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외국어는 물론 다른 교육 전반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백과사전이자 보조교사, 나아가 소통의 상대가 될 수 있으니 언어 학습의 모델이자 동반자로 부상할 것이다. 나아가 미래세대는 언어습득 과정에서 오늘날의 부모 또는 교사의 역할을 인공지능을 통해 해결할 것이다.
마지막은 변화의 속도다. 언어는 늘 변하지만, 변화의 속도와 내용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게 되었다. 대중문화의 유행이나 코로나19 같은 사건에 따라 새로운 말이 생성되고 빨리 보급되지만 발음과 문법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변해왔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언어의 변화를 재빨리 파악하고 정착 가능성을 판단할 능력을 탑재함으로써 새로운 언어를 빛의 속도로 보급할 것이다.
변화의 키워드는 영향, 변화, 속도, 그리고 판단이다. 인공지능 사용이 많아질수록 언어는 영향을 받을 것이며 변화할 것이다. 이는 거스를 수 없다. 주목할 것은 속도와 판단이다. 악용되지 않도록,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여하도록 도입의 속도를 조절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판단할 여유가 우리에게 주어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