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무장한 경찰특공대원들이 순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겨레 프리즘] 박수지 | 이슈팀장
“유능했더라면 피해를 최소화했을 텐데 뼈저리게 후회하고 살아가겠습니다.”
지난달 인천지법 형사 법정에서 전직 경위 ㄱ(49)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21년 11월 인천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당시 출동한 경찰관 두명 중 한명이었다. 빌라에서 층간소음 갈등으로 이웃이 위협한다는 112 신고를 받고, 경력 20년이 넘는 ㄱ씨는 임용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수습 단계였던 20대 순경과 함께 현장에 갔다.
범행을 눈앞에서 목격한 순경은 현장을 금세 빠져나왔다. ㄱ경위는 1층에서 피해 가족 남편과 비명을 듣고 현장으로 가다가 계단을 내려오던 순경을 만나 빌라에서 함께 벗어났다.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이 현장을 떠났다는 ‘부실 대응’ 비판이 거셌다. 두 경찰관은 해임됐고, 지난달 열린 1심 재판의 결심공판에서 직무유기 혐의로는 법정 최고형인 징역 1년형을 구형받았다.
잇단 무차별 범죄와 경찰의 대책을 보면서 2년 전 이 흉기 난동 사건을 복기하게 된다. 경력만 20년 넘는 베테랑이었던 ㄱ씨가 “유능했더라면”이라는 뒤늦은 가정을 하며 피해자 유족에게 참회했다. 그는 실탄 권총과 삼단봉을, 순경은 테이저건을 갖고 있었지만 이런 장비는 정작 현장에서 ‘무용지물’이었다.
‘어떻게 경찰이 범행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며 시민들은 충격을 받았지만, 사건 직후 일선 경찰관들은 신참부터 경력자들까지 “막상 상황이 벌어지면 총을 제대로 쏠 자신이 없다”는 말들이 나왔다. 그제야 알려진 지역경찰 및 형사 등 외근 경찰관 7만명의 ‘현장 대응력 교육’ 현실은, 테이저건을 예산 탓에 1년에 한명당 모두 한발씩도 채 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총기 훈련도 사정은 비슷했다. 범죄 현장은 흉기 난동이나 인질이 있는 상황 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정작 현장 경찰들은 고요한 사격 훈련장에서 표적을 맞히는 훈련만 했다. 경찰청은 올해부터 흉기 난동 상황 등 시뮬레이션 훈련을 포함한 총기 훈련을 연 두차례씩 하기로 했다. 올 들어 본격 도입된 교육이라, 일선에선 아직 이 훈련에 참여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경찰은 법적으로 민간인에 대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폭력(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인 만큼 물리력 행사에 대한 고도의 훈련을 해야 한다는 점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경찰관직무집행법 1조에서 경찰관은 물리력을 포함한 직권을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행사하고 남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는 이유다. 맨손으로 난동을 벌이는 범인에 대한 대응과 흉기를 든 채 인질을 붙잡는 범인에 대한 물리력 행사는 구별돼야 한다. 이는 개별 사건에서 피해자의 안전을 지키는 일인 동시에, 시민들이 안심하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잇따른 흉흉한 무차별 범죄에 살인 예고 협박글 등으로 불안한 시민들에게 경찰 일선의 “법원의 판단 때문에 경찰이 총을 못 쏜다, 면책권을 강화해야 해결된다”는 문제의식만 부각되는 건 다소 우려스럽다. 2년 전 문제 된 경찰의 ‘유능함’ 문제는 그새 해결되고, 법원의 판단만 문제인 걸까.
실제 일선 경찰관이 익명 커뮤니티에서 “경찰은 더는 버틸 수 없으니 국민이 각자도생하라”며 거론한 ‘문제적’ 판례 8건 중 경찰관 개인이 배상한 사건은 ‘0건’이었다. 심지어 경찰 개인의 ‘중대한 과실’로 인정된 사안에서도 경찰청은 “고의가 아니었다”며 구상금을 청구하지 않았다. 공무집행 중이었다며 사실상 면책해준 것이다. 이미 형사적으로도 ‘고의’나 ‘중과실’이 아니면 면책받고 있다. 달리 말하면, 더는 면책해줄 여지조차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경찰 개개인이 겪을 소송 스트레스는 정부가 ‘소송 지원 확대’로 풀어야 할 일이다.
총을 꺼낼 준비는 ‘면책권’이 자동으로 시켜주는 게 아니다. 그 누구도 현장 대응에 실패한 경찰이 법정에서 “유능했더라면”이라며 후회하는 모습을 다시는 보지 않길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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