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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무차별 범죄의 씨앗은 처벌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등록 2023-08-09 05:00수정 2023-08-09 11:08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서 행인을 상대로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조선씨가 지난 23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는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서 행인을 상대로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조선씨가 지난 23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하는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법무부, 검찰, 경찰 등은 연일 강경대응책을 제안하고 있다. 엄한 형벌과 격리 강화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괴물”(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라고 단언하기에 앞서 ‘예방’과 ‘교정’이 제구실을 하고 있는지 짚어보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원히 격리하는 방법이 필요하다”(한 장관)는 진단은 충실한 예방과 교정이 전제될 때 설득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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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당시 44살)씨는 2012년 8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한 무료급식소에서 한 여성을 밀쳐 넘어뜨렸다. 길을 가로막았다는 게 이유였다. 이 일 전후로 ㄱ씨는 장례식장에서,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을 향해 벽돌을 던지거나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집단·흉기 등 상해 혐의로 기소된 그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2년 대검찰청의 ‘묻지마 범죄 분석’ 연구에서 ㄱ씨는 명확한 동기 없이 무작위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폭력이나 살인을 저지르는 ‘무차별 범죄자’로 분류됐다.

연구 대상도 됐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2013년 ㄱ씨 등 무차별 범죄자 18명을 만나 ‘묻지마 범죄자 심층면접 연구’를 진행했다. ㄱ씨는 ‘반사회적 집단’으로 조사됐다. 이 교수는 “재범 가능성이 다소 높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출소 후에도 전문적인 치료와 관찰이 필요하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그러나 특별한 조치는 없었다. 법무부가 교정본부 심리치료과를 신설해 강력범죄자들에 대한 수감 중 심리치료를 도입한 것이 2016년 10월이기 때문이다.

■ 막을 수 있었다…10년 뒤 ‘상습 폭행범’으로

ㄱ씨는 계속 누군가를 때리고, 물건을 부순 혐의로 수감과 출소를 반복했다. 2014년 출소한 뒤로도 폭행 등 혐의로 모두 12차례 재판을 받았다. 판결문을 보면, 대부분 무차별 범죄다. 길거리, 편의점 등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사람을 폭행했다. 그는 출소 뒤에도 뚜렷한 직업 없이 노숙생활을 했는데 동료 노숙자를 폭행한 경우도 다수였다. 수감 중 폭행 사건도 있었다. 지난해에는 공연음란죄로 기소돼 현재 대법원에서 재판받고 있다.

2014년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를 했던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범죄분석·조사연구실장은 “당시에는 무차별 범죄에 대한 사회의 이해나 관심이 적었기 때문에 출소 후 적절한 조처가 없었던 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속된 범죄 전력은 무차별 범죄의 전조 증상이다. 2012년 대검찰청의 무차별 범죄 사건 55건 분석 기록을 보면, 무차별 범죄를 저지른 이들 중 76%(42명)가 범죄 전력이 있었다. ㄱ씨의 경우 첫 무차별 범행 이후 적절한 치료와 교육을 받지 못했고 그 결과 10년 동안 2년에 한번꼴로 폭행을 저지르는 상습 폭행범이 됐다.

서울 신림동 흉기 난동범 조씨도 스무살이던 2010년 신림동의 술집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시비가 붙었고, 소주병으로 이들 중 1명의 머리를 때려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수정 교수는 “조씨의 첫번째 무차별 범죄는 미성년자 시절 비행의 연장선상이었던 거로 보이는데, 그때 그의 범죄 전력을 보고 재범 위험성을 조사해 재범을 막기 위한 적절한 처분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치료적 사법’을 제안한다. 무차별 범죄자에게도 성범죄자의 경우처럼 재범 예방을 위한 교육·치료, 보호관찰 명령 등 사후 관리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윤 실장은 “법원이 폭행범에게도 교육 이수 명령을 내린다면 치료 프로그램이 더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감 중 프로그램도 활성화돼야 한다. 현재 교정본부 내 심리치료과는 대개 성범죄자나 아동학대 범죄자에 치중돼 있다. ‘동기 없는 범죄 수형자의 심리치료 이수 현황’을 보면, 이들에 대한 ‘치료’는 2017년 24건에서 2021년 7건으로 크게 줄었다.

조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사회안전교육연구원 법심리연구소장은 “심리상담이든 교정 프로그램이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범죄의 죄질에 상관없이 시행해야 한다”며 “초기 경미한 범죄 때부터 교정이 들어가야 하는데, 자잘한 범죄일수록 교정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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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을 수 있었다…소년범 교화도 실패

서울 신림동에서 흉기를 휘둘러 4명의 사상자를 낸 조씨가 소년범으로 14번이나 소년재판에 넘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년사법이 소년범의 범죄 경력만 더하는 ‘회전문’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행 청소년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개별적 처우가 없는 상황에서 ‘엄벌주의’만 강조하는 탓이 크다.

소년범죄의 배경에는 가정의 해체가 자리 잡고 있는데도 법원의 소년보호처분은 소년범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사회 내 처우’(보호처분 1~5호)에 집중돼 있다. 사법연감을 살펴보면, 2021년 소년법상 보호처분을 받은 2만2144명 가운데 79.3%(1만7569명)는 보호자 등에 감호위탁, 수강명령, 사회봉사명령, 장·단기 보호관찰 등 1~5호 처분을 받았다.

범죄의 ‘징조’가 나타난 이때부터 비행 청소년을 둘러싼 가정환경에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지만 “법무부의 보호관찰관은 아이들을 그냥 전과자 취급한다”는 게 현장의 평가다. 2021년 기준 보호관찰 대상 소년의 재범률은 12%로 성인(4.5%)보다 훨씬 높다.

범행이 3~4차례 반복되면 소년원 등 수용 처분(7~10호)이 내려진다. 부모의 이혼, 가출, 사망, 학대 등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소년범이라면 더 쉽게 소년원에 간다. 어른의 재판에서는 피고인의 행위에 따라 구속 여부가 결정되지만, 소년재판에선 범죄 경중보다 ‘보호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김광민 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소년범이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다 소년원에 다녀와도 가정환경이 그대로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청소년의 사회화 기회만 박탈해 사회 적응을 더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소년사건 전문가들은 소년범에게 형사 절차를 들이대기 전에 가정환경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복지적 개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년사건 전문인 박인숙 변호사는 “아이들은 믿어주는 어른이 1명만 있어도 범죄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 한번 범죄를 저질러 사법 절차로 편입되는 순간 보호시설이나 학교에서 일제히 손을 떼고 법무부 몫이 된다”며 “처벌보다 복지적 관점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소년법에는 ‘처벌과 복지 사이’의 처분 격인 ‘6호 처분’이 있지만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6호 처분은 비행 정도가 가벼운 소년범을 아동복지법상 보호시설에 위탁해 가정에서 배워야 할 역할들을 습득하고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도록 하는데, 2021년 기준 소년범 가운데 단 6.5%에게만 내려졌다. 6호 처분을 위한 아동복지시설이 부족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서울소년원 원장을 지낸 한영선 동국대 범죄심리학 박사는 “(조씨 사례는) 소년범에 대한 정부의 각종 처분이 교화에 효과가 없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소년 범죄는 가정·양육 등 성장 환경과 관련이 있다.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일률적으로 엄벌만 강조하다 보니 재범 예방에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비행 청소년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개별적 처우가 없는 상황에서 ‘엄벌주의’만 강조하면 골든타임을 놓친다는 지적이다.

오연서 loveletter@hani.co.kr 권지담 gonji@hani.co.kr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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