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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존버’와 신문

등록 2023-08-10 16:43수정 2023-08-11 02:39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쌍스러워 보이겠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당신은 신문에 ‘존나’라는 단어를 써도 된다고 보는가? 알다시피 ‘존나’는 거친 욕을 살짝 달리 발음한 것이다. ‘졸라’, ‘조낸’으로 바꿔 쓰기도 한다. 양의 차이는 있지만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즐겨 쓴다. 그래도 신문에 욕을 쓰는 건 무리겠지?

그렇다면 ‘존버’는 어떤가? ‘존나 버티기’의 준말인데, ‘끝까지 버티기’ 정도로 ‘예쁘게’ 의역한다. ‘존버 정신’이나 ‘존버 장인’이란 말로 확대되기도 했다. 생긴 걸 품평하는 ‘존잘(잘생겼다)’, ‘존예(예쁘다)’, ‘존멋(멋있다)’은 ‘존버’와 사촌지간이다.

말은 사전적인 뜻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모종의 감정이 들러붙는다. ‘존버’는 욕이기보다는 효율과 성과, 불합리, 과로를 강요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자구책 또는 삶의 지혜 같은 것이다(그게 ‘버티기’라니). 역설적이게도 긍정적인 느낌의 ‘끈기’나 ‘인내’와 비슷한 뜻이 되었다.

‘존나’라는 욕설이 섞인 ‘존버’는 이미 신문 여기저기에 쓰이고 있다. 아직 조심스러운지, 제한적이긴 하다. 외부 기명칼럼, 인터뷰, 문화면, 주식면 등에 주로 노출되는데, 대부분 따옴표를 쳐서 쓴다. 예컨대, “경력도 쌓고 퇴직금도 받으려면 ‘존버’해야죠” “(주식이) 언제 회복될지 감도 안 잡힌다. ‘존버는 승리한다’만 믿고 가야 하나” 식이다.

사람들은 일일이 어원을 따져가며 말을 쓰지 않는다. 당대의 상황을 생동감 넘치고 현장감 있게 담을 수만 있다면, 그 말이 하위문화나 비(B)급 언어이면 어떤가. 가끔 더 좋을 때도 있다. 입말과 글말의 문턱이 사라져 가는 조건에서 시대를 기록하는 기자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겠군. 존버할 건 존버하되, 유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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