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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워하면서 닮아가는 ‘제왕적 대통령’의 욕망

등록 2023-08-08 13:39수정 2023-08-09 02:35

한국대통령제 100년 결정적 장면들_06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중에 “대통령중심제라고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꿈은 많고 의욕도 많고 어떻게든지 해보려고 했는데, 거의 안됐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때는 집권당이 국회 다수당이었고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강력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도 무언가를 실행하고 이루는 데엔 커다란 무력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검찰·감사원·국세청과 같은 권력기관의 칼로 무력감을 가리고 있는 게 아닐까.

대선 승리 직후인 지난해 3월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제왕적 대통령을 벗어나기 위해’ 청와대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청사를 이전하겠다며 직접 조감도를 놓고 설명하고 있다. 집무실 이전에도 불구하고 ‘제왕적 대통령’ 논란은 더욱 커졌다. 공동취재사진
대선 승리 직후인 지난해 3월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제왕적 대통령을 벗어나기 위해’ 청와대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청사를 이전하겠다며 직접 조감도를 놓고 설명하고 있다. 집무실 이전에도 불구하고 ‘제왕적 대통령’ 논란은 더욱 커졌다. 공동취재사진

대통령제 이미지컷
대통령제 이미지컷

사람이 문제인가, 제도가 문제인가. ‘제왕적 대통령’은 사람의 탓인가, 아니면 제도의 탓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이고 역대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제왕과 같은 권력을 행사한다는 논란과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직전 인터뷰에서 “제가 왜 ‘제왕적 대통령’인가. 권한이 있는데도 행사를 안 했는데 왜 제왕적 대통령인가”라고 항변했을 정도다. 대통령은 ‘제왕과 같은 권력을 누린다’고 비판받지만, 임기 말에는 친인척 비리나 지지율 하락으로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리는 일이 많다. 이런 이율배반은 사람 탓일까, 아니면 제도 탓인 걸까.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cy)이란 용어를 처음 쓴 건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였다. 슐레진저는 1973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권력 남용이 미국 헌법의 견제와 균형 원리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취지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라 불렀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의미는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은 삼권 분립을 뛰어넘어 국정운영과 정책 결정·집행, 인사 등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미국보다 강력한 권한, 예를 들어 예산편성권이나 법률안 제출권을 대통령에게 준 건 이를 뒷받침한다.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적인 모습 중 하나는 본인 또는 친인척 비리다. 5공화국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이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강한 권력과 가파른 추락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퇴임 이후 대통령 본인과 가족이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사는 건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의 순탄한 퇴임은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이 과거에 비해선 줄었음을 시사한다.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한국, 제왕적 대통령제의 함정’이란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적에 대한 전반적 평가를 보면, 대통령의 의제 설정 역량은 제한적이었고 그마저도 임기 하반기엔 상당히 침식됐다. 그러나 전임자들과 달리 커다란 스캔들 없이 퇴임했다는 점 자체가 문 대통령의 진정한 성과”라고 평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권한은 다시 막강해진 것처럼 보인다.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 청와대 집무실을 이전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대통령보다 강력해 보이는 건 왜일까.

여기엔 일종의 착시가 숨어 있다. 정치 환경과 제도 측면에서 대통령 권한은 꾸준히 제한돼 왔다. 다만 윤 대통령의 강한 퍼스낼러티, 그리고 검찰이라는 칼이 그를 ‘제왕적’으로 비치게 할 뿐이다. 윤 대통령은 인사나 주요 정책 결정에서 여론을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 정치사를 돌아보면, 훨씬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대통령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김대중·김영삼이다. 두 김 대통령은 인사권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았다. 디제이(DJ·김대중 대통령 애칭)는 국무총리의 국회 인준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긴 했다. 장상·장대환 두 총리 후보자가 야당인 한나라당 반대로 잇따라 낙마했다. 그러나 부처 장관에까지 인사청문회를 확대한 건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다. 디제이는 장관을 비롯한 주요 공직 인선에선 지금보다 훨씬 폭넓은 인사권을 행사했다. 인사청문회 제도 자체가 아예 없던 와이에스(YS·김영삼 대통령 애칭) 시절은 더 말할 게 없다.

특히 두 대통령은 집권당 총재직을 겸임했다. 여당 공천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1995년 10월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회견에서 ‘(다음 대선에) 깜짝 놀랄 만한 젊은 후보를 내세워 세대교체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당시 정치권과 언론은 대통령의 당무 개입, 경선 개입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후보가 누구냐’에 관심을 쏟았다. 40대의 이인제 경기지사는 그렇게 대선 후보로 발돋움했다. 대통령과 집권당이 한몸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두 대통령은 또한 부산·경남(김영삼)과 호남(김대중)이라는 강력한 지역 기반, 그리고 오랜 세월을 함께한 정치세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디제이와 와이에스는 여론과 언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두 사람 모두 오랜 정치적 경험을 통해 여론을 거스르지 않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아침에 조간신문을 직접 읽고 저녁엔 ‘9시 뉴스’를 꼬박꼬박 시청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수석을 지낸 박선숙씨는 “김 대통령은 매일 새벽 조간신문을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꼼꼼히 읽으셨다. ‘(공보수석실에서 올리는) 신문 스크랩이 있는데 뭘 또 신문을 직접 보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신문에는 우리 국민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문제가 들어 있다. 그 모든 문제에 정치인은 답을 내야 하니까 하나도 놓치지 않고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여론의 흐름과 요구를 누구보다 당신이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공보수석과 환경부장관을 지낸 윤여준씨는 이런 사례를 들었다. “1997년 한보 사태가 터졌을 때 김영삼 대통령 아들 현철씨가 연루돼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았다. 하지만 누구도 김 대통령에게 현철씨 문제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과 개신교 목사 두 분, 불교 원로 스님 한 분과 대통령의 면담을 주선했다. 그분들로부터 솔직한 얘기를 듣고 김 대통령은 곧바로 결심했다. 내가 대국민 사과문을 썼다. 내용 중에 ‘현철씨가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썼는데, 대통령이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로 직접 고쳤다. 아버지로서 아들의 무죄를 확신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정치적으론 검찰의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와이에스는 그렇게 여론에 민감했고 항상 여론보다 한 발짝 먼저 대응하는 게 체질화된 정치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10일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제왕적 권력을 나누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언론 인터뷰에선 “제가 왜 제왕적 대통령인가”라고 항변했다. 국회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10일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제왕적 권력을 나누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퇴임을 앞둔 언론 인터뷰에선 “제가 왜 제왕적 대통령인가”라고 항변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은 여론에 신경 쓰지 않는다. 장모가 은행 잔고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로 법정구속 됐는데도 ‘국민에게 심려를 끼쳤다’는 말 한마디 없다. 극우 유튜버를 공직에 기용하고 전 정부를 ‘반국가단체’라고 부른 데서 보듯이, 여론을 받아들이는 통로는 매우 협소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으로 일했던 인사는 “윤 대통령이 ‘강한 대통령’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 비하면 지역 기반이 약하고 ‘친박’ 같은 뚜렷한 정치세력도 없다.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국회는 여소야대다. 뭔가를 하려고 해도 민주당 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객관적으로 보면 ‘약한 대통령’이 맞는다. 다만 개인의 카리스마는 박근혜와 윤석열 두 사람 모두 매우 강한 점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인사는 “그때는 국회가 ‘여대야소’였지만 여당을 박근혜 대표가 꽉 잡고 있던 터라, 입법과 정책 추진에서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지금 윤 대통령도 비슷한 심정일 거다. 결국 내년 4월 총선이 분수령일 것이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그때는 정말 강력한 대통령의 출현을 보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진전과 함께 ‘제왕적 대통령’ 논란은 줄어들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승리해 재집권할 경우, 전통적인 ‘견제와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최근 보도했다. 윤석열 정부의 모습을 보면, ‘민주주의는 일정 단계에 도달하면 쇠퇴하기 시작해서 민주주의가 투쟁했던 과두정과 유사해진다’고 했던 1세기 전 독일 정치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의 말이 생각난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 중에 “대통령중심제라고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꿈은 많고 의욕도 많고 어떻게든지 해보려고 했는데, 거의 안됐다. 열심히 밤잠 안 자고 이렇게 고민해서 왔는데 결국은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그렇게 해보고 싶은 거를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그때는 집권당이 국회 다수당이고, ‘친박’ ‘종박’ ‘진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대통령의 당 장악력은 강력했다. 지금 윤 대통령도 무언가를 실행하고 이루는 데엔 커다란 무력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검찰·감사원·국세청과 같은 권력기관의 칼로 무력감을 가리고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박찬수ㅣ대기자 pcs@hani.co.kr

한겨레신문사에서 워싱턴특파원과 편집국장, 논설실장을 지냈다. 청와대와 국회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 한국 진보운동의 과제를 담은 <진보를 찾습니다>(2021년)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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