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사전] 원도 | 작가·경찰관
친구와 택시에 탔던 날.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니 기사님이 대뜸 우리에게 몇살이냐고 물었다. 답을 들은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아직도 이런 노래를 듣냐고 중얼거리며 덧붙였다.
“이런 노래를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도 즐길 수 있나요?”
글쎄. ‘이런’ 노래는 뭐고 ‘저런’ 노래는 뭘까? ‘이런’ 노래란 정신없는 멜로디가 바탕에 깔린 아이돌 그룹의 노래고 ‘저런’ 노래는 트로트를 말하는 건지. 반박할 말은 몽돌해변의 자갈보다 더 많다. 수록곡도 들어보셨나요? 이 그룹의 장점이 발라드라는 건 당연히 아시겠죠? 뭐, 아무튼.
참 이상한 질문이다. 지금 좋아하는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라 확신하는 저의가 놀랍다.
문득 휴대폰으로 자주 듣는 음악 목록을 확인해보니, 대부분 내가 초등학생 때 즐겨 들었던 노래다. 지금부터 약 20년 전 유행했던 노래니까, 그 노래가 나한테는 일종의 트로트인 셈이려나. 트로트는 음악의 장르 중 하나일 뿐이지 오랜 세월을 대변하는 말은 아닐 텐데도.
초등학생 때 인기를 끌었던 노래를 아직 듣는 나는, 그에 비하면 불과 얼마 전인 대학교 때 곧잘 어울리던 동기와는 연락을 끊은 지 오래다. 이전의 사람에게 했었던 유사한 맹세를 잊은 채, 일년 남짓 만난 사람에게 평생 사랑할 것을 새롭게 맹세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퇴색되는 마음이 있다는 상상은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린다. 달력이 뜯어질수록 뜨거웠던 사랑도 종잇장처럼 구겨지고 정으로 사는 거라며 푸념들 하지만, 유명한 화재 예방 문구도 있지 않은가? 꺼진 불도 다시 보자고. 사랑 그거, 쉽게 식는 거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거, 정말 쉬운 일 아니니까.
‘나중’은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다른 일을 먼저 한 뒤의 차례’, ‘순서상이나 시간상의 맨 끝’으로 풀이되는 말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흥겨운 아이돌 노래에 싫증을 느끼고 엄마와 함께 미스터 트롯을 보는 날이 올까. 사실 트로트 방송은 지금도 본다. 트로트가 오랜 세월을 대변하는 말이 아니듯, 트로트라는 대중가요 장르를 즐기는 데 나중이란 건 없으니까. 지금 들어서 흥겨우면 된 거다. 나중에 싫어지더라도 지금은 질리도록 듣고 싶다. 천문학자에게 8천년 정도의 역사는 얼마 전으로 퉁쳐진다는데, 정말일까?
나중을 핑계로 미뤄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왜 하필 나중으로 미뤄둔 일은 그사이 발생한 일로 인해 해결할 수 없게 되는지.
“엄마가 몸이 안 좋다 그러셔서 다음 주 병원 예약을 잡아놨어요. 예약만 조금 일찍 해뒀어도…”
부모의 죽음 앞에 무너지는, 중년을 넘긴 자식의 한탄. 이별은 언제나 느닷없다.
예고 후 찾아오는 건 약속이지, 결코 이별이 될 수 없음에 우리는 자주 황망하다.
나중에 시간 날 때 봐야지 하며 저장해둔 동영상과 나중에 시간 날 때 읽어야지 하며 링크를 복사해둔 신문 기사를 시간을 들여 보았다. 시간을 들여 볼 수 있는 건 이제 그만 쌓아두고 바로 확인하자고 결심해도 매번 어기고 만다. 나 역시 나중의 힘을 누구보다 더 맹신하고 있는지도.
사무실 벽에 새로 붙은 근무일지를 들여다 본다. 벌써 8월이 도래했다. 8월에는 정말 기타 레슨을 다시 시작해야지. 나중에 최고의 성과를 내기보다 지금부터 꾸준히 해야지. 이 결심이 부디 꺾이지 않기를. 트로트 가락을 흥얼거리며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