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사전] 원도 | 작가·경찰관
집 근처 인테리어 사무실의 사정을 들은 건, 뜻밖에도 동네 김밥가게에서였다.
“인테리어 사무실이라는 게 참 희한하지, 암만. 남의 집은 번쩍번쩍하게 뜯어서 고쳐주는데 정작 자기들은 돈이 없어서 직원을 다 잘랐다고 하네. 사장 부부 포함해서 세명 밖에 없단다.”
가게에 놀러 온 동네 어르신의 넋두리인지, 김밥가게 사장님과 오가는 대화인지, 그 중간 어디쯤의 말소리. 집에 가는 길에 화두에 올랐던 인테리어 사무실을 쳐다보았다. 통유리 창이라 내부가 훤히 보이는 사무실이 괜스레 넓어 보이는 건 어르신의 말씀 때문이겠지. 나는 김밥 한줄을 다 먹지 못하고 곯아떨어져 버렸다. 새벽 내내 이어지는 신고로 고단했기 때문이다. 이건 나만 아는 나의 사정.
어느 시골 주택에서 발생한 변사 현장. 꼬박 한시간을 운전해 도착한 낡은 초가집은 제대로 된 화장실조차 없는 곳이었다. 서까래에 스스로 목을 맨 변사자를 수습하고 검시 업무를 수행하는 선배의 얼굴이 점점 흙색이 되어갔다. 경찰차를 보고 무슨 일인지 궁금해 삼삼오오 모인 동네주민들에게, 선배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화장실 좀 쓸 수 있습니까?”
할머니가 가르쳐 준 마을회관 화장실로 달려간 선배의 사정 역시, 바로 옆에 있던 나조차도 몰랐다. 변사자에게 최근 고민스러운 일이나 괴로운 무언가가 있냐는 물음에, 허망한 표정으로 달려온 모친도 변사자의 사정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무슨 속사정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사정(事情)은 ‘일의 형편이나 까닭’을 뜻하는 말이지만, 누군가의 사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미성년자가 투신한 현장에서, 여기저기 널브러진 조각을 주워보아도 ‘사정’이라는 퍼즐을 완성할 순 없었다. 그의 유품을 이리저리 뒤적거려 보아도 남은 자의 눈으로는 도무지 읽히지 않는 고통의 문장 뿐. 이래서 김경주 시인은 ‘내 고통은 자막이 없다 읽히지 않는다’는 문장을 썼던가.
자신만의 사정을 품에 안고 바삐 갈 길을 재촉한 이들이 당도한 곳은 너무나도 먼 타국이라서, 한국에 발붙이고 사는 나에게는 닿을 수 없는 언어라서, 달라져 버린 모국어라서, 나는 그들의 사정을 도무지 읽을 수 없다. 답을 달라고 외치는 유족에게 해석을 제공하지 못한다. 낡은 옷을 걸친 허수아비처럼 뼈대만 남아 앙상한 꼴이다. 이게 경찰관의 속사정이라 한다면 누가 선뜻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여줄까.
짐이라고는 교도소에서 도착한 편지 한통 뿐인 어느 노숙인의 죽음. 출소하면 갚겠으니 돈이 있다면 10만원만 보내달라는 수형인의 부탁. 10만원이 필요했던 수형인의 사정도, 편지에 답을 하지 못한 채 간직하고만 있던 노숙인의 사정도 모두 미궁 속으로. 이 상황의 유일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노숙인이 떠나버렸으므로, 그가 남긴 단서는 바삐 치워질 것이며 주검은 부패하기 전에 화장돼야만 하니까. 행정의 사정이란 그런 것이다.
사정없는 일이란 없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보니, 꽤나 너그러워지는 기분이다. 왼쪽 깜빡이를 넣고서 오른쪽 차선으로 진입하는 운전자에게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테고, 놓치지 않으려 달려가는 나를 보고도 문을 닫아버리는 버스기사에게도 사정은 있다. 여러가지 병을 한꺼번에 앓는 사람이 물속으로 걸어가는 걸 지켜만 보는 가족에게도 사정은 있겠고, 볼일을 보다 심장이 멎은 사람에게도 사정은 있는 법. 암만, 말 못할 사정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렇고말고.
발달장애가 심한 아들을 달래주기 위해 하루에 세번씩, 꼬박꼬박 대교를 걸어 다녀야만 하는 어머니의 사정을 누가 알까. 천국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가슴에 품고 사는 각자의 불기둥을 꺼트려줬으면.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었으면.
곧 장마가 올 예정이라는 날씨예보를 보았다. 천국에 나의 기도가 닿은 것일까? 일기예보를 보고 표정이 풀어지는 나의 사정 역시,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