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심의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영국에서 최대 규모 푸드뱅크를 운영하는 비영리기관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위기 가정에서 받은 비상식량 패키지가 300만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당 정부가 들어설 때 6만개 정도에 불과했던 공급이 공공서비스 예산 삭감과 ‘더 나은’ 공공부조 복지개혁이 시작된 2013년 이래로 급증했다. 이제 병원 종사자나 학교 선생님들까지 푸드뱅크의 이용자가 되고 있다고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푸드뱅크 이용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던 2013~14년에 보수당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여러 부정적 언어를 동원하여 대상자들을 비난했다. 이용자들을 ‘공짜 음식’을 얻기 위해 푸드뱅크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서비스를 남용하는 ‘무전취식자’나 ‘게으름뱅이’라 표현하고, ‘도움을 받을 가치 없는’ 빈곤층으로 규정하였다.
2014년 9월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는 빈곤층에 대한 예산을 약 5조원 삭감하면서 ‘세금을 올리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영국의 복지제도는 약자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약자가 확대 재생산되는 것 역시 막지 못하고 있다.
보수 복지 논리의 모순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보수 진영은 예산의 부족을 강조하며 더 빈곤한 이들에게 복지를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다 빈곤층이 증가하고 이들을 위한 복지지출이 증가하면 정말 이들이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의심한다. 이어 보수 정치인과 언론은 세금이 ‘바람직하지 못한’ 빈곤층에게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결국 빈곤층을 위한 복지 수급 조건은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빈곤층은 ‘어두운 표정’으로 열심히 빈곤을 탈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까다로운 제도로 변화해간다. 이 논리는 왜 선별적 복지를 강조하는 국가에서 약자의 상황이 더 좋지 못한지를 잘 설명한다.
최근 국내의 복지 관련 논의들은 우리 사회 역시 이러한 선별적 복지의 덫에 갇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하게 한다. 정부는 예산 부족을 끊임없이 강조하면서, 사회보험인 실업급여 수급자에게마저 ‘약자’로서의 ‘바람직성’을 강요한다. 실업급여를 받는 이들은 자발적 실업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계약이 종료되었거나 해고된 약자들임에도 말이다.
보수의 복지 논리는 동시에 문제를 을과 병의 형평성 문제로 환원시킨다. 노동 조건을 개선하지 않고 공공서비스 예산을 확충하지도 않으면서, 최저임금 수준을 받으며 노동을 하는 을과 실업급여를 받는 병 사이에 경제적 차이가 없음을 강조한다. 전자에는 고용센터 실업급여 대상자를 만나는 기간제 직업상담사도 포함될 것이다.
사회서비스에서도 유사한 논리가 발견된다. 현 정부는 경제력이 있는 이들이 이용할 만한 더 비싸고 양질의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을’인 돌봄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약자’가 ‘받을 만한’ 서비스의 질이 따로 존재한다는 암묵적 가정이 깔려 있다. 전반적 서비스 질과 노동 조건을 높여야 하는 국가의 당연한 역할은 사라지고, 돌봄시장에 진출하려는 보험업계의 요구는 커튼 뒤에 숨어 있다.
을과 병이 존재한다는 것은 거기에 갑이 있다는 것이다. 갑은 분배 방식을 결정하고, 약자가 누구인지를 정의한다. 약자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바람직성’도 결정한다. 그러한 결정 과정에 약자는 초대되지 않는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팬데믹으로 소득이나 고용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이들만이 참여했던 것처럼 말이다.
약자를 위한 복지는 더 강화되어야 한다. 가족돌봄 아동과 청년, 고립과 은둔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이들, 불법을 대물림하는 이주노동자의 자녀들 등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사회경제적 전환기를 맞이해서 더 많은 이들이 약자가 되지 않도록 선제적 체계를 구축하는 것, 꾸준히 사회정책과 공공서비스에 투자하면서 모두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데이비드 캐머런처럼 증세가 아닌 예산 절감을 하는 정책 방향으로는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없다. 복지가 자선이 아닌 권리인 미래가 되기 위해서는 적극적 증세와 재분배 그리고 사회정책을 통해서 강자와 약자의 구분을 약화하고, 사회의 연대를 증진해야 한다. 이것이 보편적 복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