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6일 울산시 동구 에이치디(HD)현대중공업에서 하청업체 금영산업 노동자들이 현장 위험성 평가를 시연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김미숙 | 김용균재단 대표
재판장님!
저는 2018년 한국서부발전 하청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김용균의 엄마 김미숙입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단체교섭권 청구 소송 사건’이 대법원에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고 듣게 돼 대법관님들께 호소하고자 합니다. 2018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하청노동자들은 하청회사와 교섭하라며 이를 거부해, 수년째 재판을 하고 대법원에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겪어보니, 하청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관련해서는 하청회사보다 원청회사가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이 일하는 환경을, 안전을 하청회사가 알아서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용균이와 같은 죽음이 다시는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하청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관련해 원청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하고, 원청회사가 이를 정식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애지중지 키웁니다. 그런데 위험한 사업장이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음에 무지했던 저는, 그 몰랐다는 이유로 아들을 못 지킨 죄인 같은 심정입니다. 하나뿐인 아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위험한 현장에서 혼자 일하다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으로, 살아야 할 아무런 희망도 명분도 없는 죽은 듯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저뿐만의 일이겠습니까?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자식을 가슴에 묻은 수많은 부모 모두 저와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나마 용균이 사건은 정부 사고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진상규명 결과 아들의 잘못이 없음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그 진상조사 결과 내용은 참담했습니다. 원청은 하청을 줬으니 책임이 없다고 하고 하청은 내 사업장이 아니니 권한이 없다며 현장을 방치했다니 말입니다.
사업주는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킬 때 최우선으로 안전한 현장을 만들고, 그런 속에서 생산한 이익을 가져가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원청은 용균이가 안전하게 작업하도록 손쓸 수 있던 수많은 기회를 다 날려버렸습니다. 아들 사고 이후에야 위험한 현장이 이토록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안전은 스스로 챙기고 지켜야 목숨을 부지하고 일할 수 있다니, 심각한 모순덩어리 아닌가요.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우리나라 헌법을 무시하는 일 아닌가요. 사람의 기본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면서도 발전만 하면 된다는 나라 방침이 있기에 가능했을 일이라 생각합니다.
재판장님!
저희 아들이 소속된 곳에 하청노동조합이 있었고,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이나 위험성 개선을 28번이나 요구했지만 원청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원청 한국서부발전이 하청노동조합의 요구를 모두 묵살했으니 사망사고를 막을 수 없었을 겁니다. 만약 하청노동조합에 원청회사를 상대로 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주어졌다면 위험한 현장은 개선됐을 것이고, 저는 25살 꽃다운 아들을 잃지 않아도 됐을지 모릅니다. 아들을 살릴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용균이가 죽고 나서야 작업환경이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재판장님!
현대중공업에서도 해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원청회사가 공기 단축하라고 압박하고 안전조치를 못한 채 일하다 노동자들이 사망한다는 사실은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래도 이대로 놔두면 누군가 계속 죽어 나갈 게 뻔하지 않습니까? 위험한 노동조건이 왜 변하지 않는 걸까요? 아무리 특별근로감독을 해도 하청노동자들의 산재 사망사고가 계속 일어난 이유가 무엇일까요? 현대중공업이 하청노동자들의 실질적 근로조건을 지배 결정한다면 교섭에도 나서도록, 대법원이 올바른 판단으로 하청노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야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회사와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해나갈 수 있고, 억울하고 부당한 현장을 바꿔나갈 여건을 마련해나갈 수 있습니다. 대법관님들이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생명을 보호하는 것만큼 절박한 근로조건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