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씨 사망사건과 관련한 2심 재판이 열린 9일 오후 대전지방법원 앞에서 1심보다 후퇴한 재판 결과에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과 같이 재판에 참여한 중대재해없는 세상 만들기 대전운동본부 회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목숨을 잃은 김용균씨(이하 김용균) 사건 항소심 재판부가 원청인 한국서부발전과 당시 대표이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청노동자 일터 안전을 좌우할 권한이 있는 원청과 그 경영책임자에게 실질적인 고용 관계가 없고, 산재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몰랐다는 점을 들어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른 중대산업재해에 견줘 일터 안전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증거가 많은데도 실질적인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김용균 재판은, 그의 죽음을 계기로 제정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필요성을 드러낸다.
대전지법 형사항소2부(최형철 부장판사)는 9일 2018년 12월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운반용 컨베이어벨트 점검 작업을 하던 김용균을 숨지게 한 혐의(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업무상과실치사)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병숙 전 한국서부발전 대표와 서부발전에 무죄를 선고했다. 원청 소속인 권유환 전 태안발전본부장에게도 원심(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 밖에 기소된 원·하청 임직원 11명에 대한 처벌도 대부분 1심보다 가벼워졌다.
재판부는 ‘2인1조’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컨베이어벨트의 안전 덮개가 개방돼 있는 등 방호 조처가 없어 결국 “설비 과정에서 협착돼 숨졌다”는 사고 경위는 인정했다. 다만 김용균과 원청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청의 ‘안전조치의무’(산안법)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용균 재판에 적용된 옛 산안법은 원청과 하청노동자 사이의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따져 책임을 묻는다.
앞서 김용균씨 가족이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는 산안법상 실질적인 고용관계에 있는 사업주를 “사업장 내 위험을 관리·통제하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지닌 자로 보아야 한다”며 “원청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해석하면 결국 하청 근로자는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의 실질적 보호 없이 공백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고 짚었는데, 이같은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용균에 앞서(2012~2017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 피해를 겪은 59명 중 57명이 하청업체 소속이다.
특히 재판부는 원청 대표 등에 대해 “현장 운전원들의 작업방식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주의의무 위반’(업무상 과실치사) 면에서도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 대리인을 맡은 김덕현 변호사는 “아무리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이 있더라도 ‘모른다, 보고하지 말아라’ 하면 (중대재해로) 처벌되지 않는다는 위험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말했다. 권영국 변호사(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는 “이번 판결은 산안법 취지에 비춰서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전제로 “다만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여해 ‘몰랐다’가 애초부터 변명이 될 수 없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김용균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재판 직후 기자회견에서 “기가 막히고 억울하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해 사용자가 제대로 안전 조치하지 않아 발생한 모든 노동자의 죽음에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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