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관한 제18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손원제 | 논설위원
최근 윤석열 정권의 통치 행태가 뚜렷한 이상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먼저, 강압 통치 행태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전 정권, 야당에 대한 수사 몰이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에까지 칼날을 번뜩이고 있다. 경찰은 집회·시위에 대한 강제 진압을 을러대는 한편, 대통령이 ‘건폭’ 딱지를 붙인 건설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대대적 수사로 몰아붙였다. 고 양회동씨 분신 참극이 벌어졌고, 한국노총 소속 노동자도 유혈 진압 대상이 됐다.
최근엔 사교육계 ‘일타강사’들에게까지 세무조사·수사 칼바람이 일고 있다. 이번에도 대통령이 직접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지목했다. 실은 자신의 무분별한 수능 개입 발언 파문의 책임을 돌리기 위해서임을 아무도 모르지 않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 목소리마저 ‘괴담’으로 몰아 “사법 조치”를 운운한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마저 사법 처리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다.
강압적 행태가 극우 퇴행과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묘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에서 문재인 정권에 ‘반국가 세력’ 낙인을 찍었다. 국민이 선출한 정부 정통성을 부정하는 자해적 발언이다. 다음날엔 “김정은 정권 타도”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는 인물을 통일부 장관에 지명했다. 또 “중국 공산당이 박근혜 퇴진 시위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같은 극단적 음모론을 펼쳐온 유튜버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에 임명했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 출신 박인환 경찰제도발전위원장은 “문재인이 간첩”이라고 했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까지, 이 정권 들어 극우 주장을 펴는 인사 기용이 너무 쉽고 잦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뉴라이트를 많이 썼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극우 유튜브 채널을 즐겨 봤다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정권의 이념적 지반이 위축돼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이상 행태가 집권 1년 만에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도 연구 대상이다. 권력기관을 앞세운 강압 통치와 이념적 극단화는 모두 정권의 정당성 기반이 취약할 때 동원되는 통치 행태다. 정권이 국민 다수의 동의 위에서 국정을 이끌어갈 능력을 상실할 때 벌어지는 일들인 것이다. 불과 1년 만에 강제력을 동원하고 극단적 강성 지지층을 응집시켜야 정권이 굴러가는 수준에 봉착했다는 징표다. 이런 점에서 강압 통치와 극우 인사는 강한 권력 장악의 신호가 아니라, 정권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사인이다. 윤 대통령이 선거연합을 스스로 해체하고 여권 내 합리적 비판 세력마저 잇따라 쳐내면서 벌어진 후과라고 할 수 있다.
현 정권이 약체라는 건 취임 뒤 줄곧 역대 최저 수준의 대통령 국정지지율을 기록해온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36%, 부정 평가는 56%로 그 격차가 20%포인트에 이르렀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나라에서 대통령의 힘은 권력기관에 대한 장악력 못지않게 국정에 대한 국민 지지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같은 여소야대 상황에선 더더구나 중요한 요소다. 윤 대통령은 이 중요한 힘의 원천이 협소한데다 말라 있다. 그러니 더욱 겨우 움켜쥐고 있는 강제력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럴수록 통치 기반은 더욱 협애해진다는 게 아이러니다.
국정 지지도를 좌우하는 요인은 국정 성과와 소통이다. 윤 정부가 악순환의 아이러니에 빠진 것도 결국 국정 성과를 내지 못하는 무능,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불통 때문이다. 앞에서 본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국정수행 부정 평가 이유로는 ‘외교’(22%),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11%), ‘경제/민생/물가’(9%), ‘독단적/일방적’(6%) 등이 꼽혔다. 1년 넘도록 무능과 불통이 관통하는 키워드다.
애초 윤 대통령의 국정 비전 자체가 취약했던데다가, 설령 노동·교육·연금 개혁 같은 추상적 목표를 가졌다 해도 이를 현실화할 정책 능력과 정치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책임윤리가 모두 박약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 이분법으로 세상사를 재단해온 검사의 경험과 시야에 갇혀 있다는 것도 한 요인이다. 주변에 직언하는 레드팀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같은 아부의 달인들만 눈에 띈다. 이런 사람들이 사법 처리 만능 국정을 편들고 부추긴다. 그러나 아무리 권력기관을 동원하고 사법 처리를 부르댄들 국정의 무능과 무책임이 결코 가려질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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