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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한민의 탈인간] 인공지능이 가장 쉬웠어요

등록 2023-05-21 18:29수정 2023-05-22 02:36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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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인공지능(AI)은 스마트폰의 궤적을 밟고 있다. 기계가 스마트해질수록 그걸 쥔 사람은 점점 멍청해진다는 명제를, 우리의 기계 의존도가 증명해주고 있다. 불과 10여년 만에 우리는 잠시라도 폰이 방전되면 전전긍긍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물론 아무도 이를 전락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후진’은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 세상의 종말은 상상이 가도, 스마트폰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인공지능 역시 그렇게 우리 삶을 지배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떼돈을, 누군가에겐 푼돈을 벌어주며, 또 수많은 일자리를 앗아가며,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고, 이미 그러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방향의 변화는 아닐 것이다.

지난 세기를 돌아보면 우리는 마치 인공지능 황금기를 맞이할 준비라도 한 것처럼 필요조건들을 갖춰왔다. 인공지능이 범접하기 힘든 영역, 이를테면 윤리, 도덕, 인성, 가치판단, 비판정신, 참교육을 체계적으로 등한시해왔다. 그 일환으로 인문학도 사장시켰다. ‘불필요한’ 일자리를 없애는 건 당연하다는 신자유주의적, 사용자 위주의 사고가 보편화했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을 신봉하면서 그 부작용은 과소평가하는 환경이 조성됐다. 무엇보다 양적·물질적 가치가 다른 가치들을 완전히 압도해버렸다. 그러니 “돈이 된다는데” 인공지능의 부정적 측면을 따지는 것 자체가 고리타분하게 들린다. 그래도 말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에의 열광”이 우리 초점을 흐리고 있음을.

<에이아이(AI) 지도책>의 저자 케이트 크로퍼드는 인공지능이 자연지능·자연자원에 철저히 의존하기에 사실 인공도 아니라고 하지만, 잠시 인공을 제쳐두고 지능에 주목하자.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이 지능인가? 아니, 지능이 진짜 문제였던 적이 있었던가? 눈앞에 닥친 기후 문제만 해도 지능 부족 때문에 해결 못 하고 있나? 아니면 되레 너무 높은 지능 때문인가? 가령 세계 최고로 지능적인 변호인단·로비스트로 무장한 화석연료 산업처럼.

기후위기 대응책이 무엇인지는 수십년간 귀가 따갑게 들어 아는데도 대응이 요원한 이유는 정치적 의지 부족, 이익집단의 이기심과 근시안 등 한마디로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어리석음이란 순우리말로 ‘얼’이 ‘썩은’, 즉 정신이 썩은 상태다. 지능이 낮은 것이 아니다. 지능이 높아도 얼마든지 어리석을 수 있다. 천재적 지능의 소유자가 현실에 놀랍도록 무지한 일, 지능이 가장 높은 이들이 그 잘난 머리로 남을 속이거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얼마나 흔한가.

일각에서는 인공지능 규제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고 법안들도 차츰 마련되고 있다. 규제는 물론 해야겠지만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소수에게 부·권력을 집중시키는 도구가 되는 걸 막긴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대체 무얼 위해) 필요한가? 이미 편할 대로 편해진 문명 이기를 더 편하게 만드는 것 말고 어떤 공적 가치를 더하는가?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노동시장을 보면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 힘들다. 노조 걱정 안 해도 될 고용주는 좋겠지만….

우리는 답을 알고 있다.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들(빈부격차, 분배, 생태적 파국 등)은 무엇을 알고 모름이 아니라, 양심과 책임감이 살아 있느냐, 또 머리로 아는 걸 행동에 옮길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걸. 이제 기계는 그 정도 똑똑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기술이 돈벌이가 아니라 세상의 문제 해결을 위해 존재한다면, 차라리 인공양심, 인공문제의식, 인공지혜, 인공실천을 만들어달라 주문하고 싶다. 물론 그런 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지능은 인간 특유의 역량 중 유일하게 인공 제작이 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가장 아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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