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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팬데믹 중간기’에 해야 할 일

등록 2023-05-09 18:52수정 2023-05-10 02:4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읽기] 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지난 5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장장 3년4개월 만에 ‘코로나19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의 위험은 여전히 있지만, 백신 접종과 감염으로 인해 인구 집단 면역 수준이 올라갔고 의료체계 대응 역량이 어느 정도 갖춰졌다는 판단이 있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예상 가능하고 관리 가능한 영역 안으로 들어왔기에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이 필요한 비상사태는 이제 지나갔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팬데믹 이후’를 차근히 준비하고 있다. 지난 3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발표한 ‘위기단계 조정 로드맵’에 따르면, 5월 중 코로나19 위기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조정되고 현재 남아 있는 소수 방역 조치는 대부분 권고로 바뀐다. 몇달 안으로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을 독감과 같은 4급으로 낮추는 안도 논의 중이다. 위기단계와 감염병 등급이 조정되면 현재 무료인 코로나19 검사와 치료 때 본인부담금을 내야 하고, 격리 때 생활지원금도 사라진다.

팬데믹이 끝나가는 지금 시점에 가장 시급한 과제 세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여전히 남은 코로나19의 위험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코로나19는 상당 기간 위협적인 질병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조사 결과 우리나라 인구의 98.6%가 코로나19 항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 5개월간 약 370만명의 확진자와 36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금도 새로운 변이 등장으로 유행의 증감이 지속하고 있다. 위기단계 조정 뒤에도 고위험군과 감염취약시설 위주로 관리체계를 유지하며, 개인 단위 위생수칙 준수, 주기적 환기, 아프면 쉬기, 정기 예방접종 등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조치를 안착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 지난 3년여간 코로나19가 남긴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코로나19 피해는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있던 집단에 집중됐다. 팬데믹 기간 중 빈곤층이 더 높은 확률로 코로나19에 감염됐고, 더 큰 소득 감소와 고용불안정을 경험했다. 휴교로 의한 학습 결손이 저소득층에 집중되며 교육 불평등이 심화했다. 여성, 청년, 비정규직, 소상공인, 이민자, 장애인 등이 코로나19 피해의 직격탄을 맞았다. 팬데믹의 불균형한 피해는 인적 자본 손실, 노동생산성 저하, 사회이동성 감소 등으로 이어져 전체 사회의 성장 동력을 저하시킨다. 피해를 당한 집단을 선별해 회복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셋째, 다시 올 신종 감염병 유행에 대비해야 한다. 지난 20여년간 신종 감염병의 유행 주기는 짧아지고 피해 규모는 커져왔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가 수년 내에 다음 팬데믹이 찾아올 것이라 경고하며, 세계보건기구 역시 하나의 감염병 유행이 안정된 이후 시기를 ‘팬데믹 중간기’로 정의하고 다음 유행에 대한 대비·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 우리나라에선 질병관리청을 중심으로 ‘신종감염병 대유행 대비 중장기 계획’을 준비 중이다. 지난 3년의 대응을 거울삼아 감염병 통합감시체계 구축, 보건안보 국제협력 강화, 의료 인프라 및 대응 인력 확충, 대응 거버넌스 정비, 신속한 백신·치료제 개발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상기한 세가지 과제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제한된 인력으로 비교적 좋은 성과를 내왔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2.5명)와 간호사 수(7.9명)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각각 3.3명, 8.2명)에 못 미쳤다. 감염병 전담 부처로 신설된 질병관리청 직원 수는 인구 100만명당 9명으로, 영국 공중보건청(82명),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35명), 독일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18명)보다 훨씬 적다. 적은 인원으로 최상의 성과를 낸 배경에는 의료기관 종사자와 담당 공무원들의 헌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헌신이 다음 팬데믹 때도 반복되리란 보장은 없다. 되려 핵심 인력들이 소진될 대로 소진돼 다음 위기 때 아무도 나서지 않을까 두렵다.

수많은 이해관계의 충돌, 예산 조달의 어려움, 관료제의 경직성을 고려하면 조직 확대와 처우 개선이 쉬운 과제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투자가 팬데믹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점을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를 통해 배웠다. 지난 유행의 교훈을 복기하며 다음 대유행을 준비하는 것이 ‘팬데믹 중간기’에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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