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 이후 열린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돈 매클레인의 친필 사인이 담긴 통기타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선물받고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는 집중이면서도 곁가지이다. 집중이 과해서 ‘올인’이 되고, 그 올인조차 곁가지 문제에 압도된다. 올인에는 김태효라는 참모가 있고, 곁가지 부각에는 김건희 여사가 있다.
지난 3월 윤 대통령의 방일에 앞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일본 강점기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의 해법을 두고 “사실 일본이 깜짝 놀랐다. 한국 국내 정치에서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우리로서는 학수고대하던 해법인 것 같다(고 반응했다)”고 말했다. 일본과 동맹을 강화하려고, 강제동원 문제에서 피해자인 한국 쪽이 모든 책임을 지는 해법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후폭풍은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쪽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과는커녕, 위안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독도 문제까지 밀린 빚 재촉하듯이 거론했다는 일본 언론들의 보도로 터져 나왔다.
김 차장은 윤 대통령의 방미에서도 최대 성과로 자랑하는 확장억제 강화 공약을 “사실상 핵공유”라고 올인하다가, 또 역풍을 불렀다. 다음날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이 “매우 직접 말하겠다. 우리는 이것(워싱턴 선언 내용)을 ‘사실상의 핵공유’로 보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워싱턴 선언과 확장억제 강화는 논란의 대상만 됐다.
동맹 강화라는 윤 정부의 외교노선을 설화들로 빛바래게 해도, 그는 갈수록 이 정부의 외교 실세가 된다. 방미에 앞서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등 대통령실 외교안보 참모들이 경질됐다. 이 사태를 불렀다는 레이디 가가와 블랙핑크 공연 행사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윤 대통령 외교의 모습을 보여줬다.
대통령 부인 행사로 계획된 이 공연 논란으로 윤 대통령의 방미는 시작부터 곁가지에 주의를 빼앗겼다. 윤 대통령의 취임 이후 첫 해외 방문인 나토 정상회의 참석 때 김건희 여사는 개인적 차원의 지인을 동반하면서부터,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마다 그를 둘러싼 구설에 언론 보도가 집중됐다.
지난해 11월 윤 대통령의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 때 김 여사가 프놈펜의 빈민 집을 방문해 아픈 아이를 껴안은 사진이 오드리 헵번을 흉내 내려고 조명을 설치한 연출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논란의 근본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지금 당장 대통령실 누리집에 가서 김 여사의 사진들을 보면 된다. 대통령 행사보다는 김 여사의 모습만 부각되는 연예인 화보집 같다.
올인과 곁가지가 외교의 주축이 되면서, 명분과 실리 모두가 증발한다. 이번 방미의 핵심은 정상회담 기자회견의 첫 질문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답변에서 드러났다. 기자는 바이든에게 “중국의 반도체 제조를 제한하는 것이 한국에 피해를 준다. 중국과의 경쟁 때문에 한국이라는 동맹이 피해를 받고, 그렇게 해서 국내의 정치적 지지를 규합하려고 하나?”라고 물었다. 이에 바이든은 “미국 제조업을 성장시키고 싶다. 미국이 반도체를 발명했다. 과거에는 반도체를 수입하는 것이 저렴했는데, 우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10%로 떨어졌다. 우리는 다시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답했다.
미국이 자국 산업을 부흥하는 데 누가 시비를 걸 것인가. 문제는 미국이 한국 등의 반도체나 배터리 회사들의 팔목을 비틀어서 미국에 투자하고,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고, 기술까지 내놓으라는 것이다. 보조금을 받으려면 공정 기술을 공개하라는 ‘반도체 과학법’, 미국 자동차 회사에만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이번 방미에서 현안이었지만, 애써 거론을 피한다. 오히려 미국은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에 진출한 미국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이 제재를 받으면, 한국 반도체 회사들이 중국 시장에서 그 부족분을 메꾸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가 나왔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대세인 드라마 <외교관>을 보니, 미국 대통령은 “동맹은 별거 없다. 내가 10살 때 친구에게 새끼손가락 걸고 ‘네가 맞으면, 내가 나서줄게’ 약속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미국은 ‘우리가 맞으면 핵으로 때려달라’는 윤 대통령 부탁에 생색내듯 다시 새끼손가락 걸어주고는, 바이든이 기자회견에서 말한 대로 한국의 투자 1천억달러를 챙겼다. 한국은 그 새끼손가락 약속을 ‘핵공유’라고 올인하다가 머쓱해한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의회 연설에서 영어 실력이 소름 끼친다. 그의 ‘아메리칸 파이’ 열창이 세기의 외교 의전이라는 등 기타 등등의 사안을 가지고 윤 정부는 성과를 자찬한다. 방일 때는 오므라이스 접대만 부각됐다. 기타 등등의 외교가 아닐 수 없다. 하긴, 그는 ‘아메리칸 파이’를 부른 돈 매클레인의 기타를 선물받기는 했다.
국제부 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