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자진출두’를 거부당한 뒤 돌아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최혜정 |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떠들썩한 방미 행보에 잠시 묻히긴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현재진행형 사안이다. 의혹의 ‘정점’인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검찰의 거부에도 ‘무작정 출석’을 고수하는 것도 자신의 입장을 선제적으로 밝혀 여론전 우위에 서겠다는 목적이 커 보인다.
21세기 대명천지 민주당 안에서 벌어진 매표 의혹은 앞으로 검찰 수사와 관련자들의 법적 책임을 묻는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만 민주당이 자신들이 그토록 경계하는 검찰에 당의 운명을 내맡긴 채 ‘처분’을 기다리는 모습은 역설적이다.
검찰은 2021년 5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윤관석·이성만 의원 등 송영길 후보 캠프 관계자 9명이 국회의원과 대의원 등에게 9400만원을 제공한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민주당은 당사자들의 통화 녹음 내용이 공개되자 자체 조사를 공언했다가 하루 만에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철회했다. 앞서 이재명 대표가 녹음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의원들을 개별 접촉했으나 이들이 모두 완강히 혐의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제 조사권이 없는 정당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결과를 내놓아도 검찰 수사에 ‘되치기’ 당할 수 있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고려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막대한 세금을 지원받아 운영되는 공당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스스로의 무능과 무책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당의 진상규명 작업은 민주당이 이 사안을 엄중히 여기고 있으며 책임질 각오가 되어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검찰 수사에 대응해 자체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쇄신 방안을 마련해 국민 앞에 제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짤막한 입장이 국민적 의구심에 대한 답변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민주당이 보인 태도는 오히려 퇴행적이다. 애초 검찰의 기획수사 가능성을 언급했던 이재명 대표는 뒤늦게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그뿐이었다. 이 대표는 돈봉투 의혹 질문에 이틀 연속 “김현아 전 의원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몰라요?” “박순자 의원 수사는 어떻게 되어갑니까? 관심이 없으신가 보군요?”라고 되물었다. 민주당 사건을 묻는데 불법 정치자금 수사를 받는 국민의힘 전 의원 건을 들이댄 데는 ‘왜 우리한테만 이러냐’는 억울함이 깔려 있다. 피장파장의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가겠다는 정략적 의도마저 엿보인다.
돈봉투 대책으로 제시된 대의원제 폐지도 논란이다.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영향력이 과도해 돈봉투 폐해가 발생했다는 진단에서 나온 처방인데, 매표 행위에 대한 단호한 대처 없이 문제를 제도 탓으로 떠넘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이는 권리당원 권한 확대 논란으로 이어져 계파 간 분란의 씨앗이 될 소지가 크다. 이 와중에 헌법재판소가 헌법·국회법을 위반했다고 지적한 민형배 의원을 제대로 된 논의·사과도 없이 기습복당시키고, 김의겸 의원이 송 전 대표의 소통 창구를 자임했다 철회한 해프닝에선 국민 시선은 아랑곳 않는 오만함 또는 무심함마저 느껴진다.
민주당은 이 모든 논란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여기는 것 같다. ‘고맙게도’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끊임없이 비판 소재를 제공해주니, 여권의 헛발질에 가려 돈봉투 논란은 자연스레 희석될 것이라 기대할 수도 있다. 당 안팎의 반발은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 것이고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개인의 문제로 꼬리 자르기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일련의 과정에서 민심을 고려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보다 온정주의가 앞서니 돈봉투 300만원이 “차비, 기름값, 식대 수준”이고, 돈봉투 의혹의 중심인 송 전 대표를 향해 “물욕이 적은 사람” “역시 큰 그릇” 등 낯뜨거운 칭송이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돈봉투 사건은 이미 민주당의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다. 이를 수습하기는커녕 남의 일처럼 대처하는 민주당의 안일한 태도는 불신을 더욱 가중하고 있다. 국민 눈높이에 맞춘 대처는 없고 파장 축소에만 골몰하니, “민주당 내에 악의 평범성이 팽배해 있다”(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는 질타까지 나오는 것이다. 박광온 신임 원내대표는 3일 의원총회를 열어 후속 조처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스스로 쇄신할 것인지, 쇄신당할 것인지 선택할 시간이다.
id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