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송받든 받지 못하든 대통령이 임기 중에 사망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비극이다. 부디 장시간 노동에 과로하지 마시라. 1998년과 2000년 출산휴가를 받은 파보 리포넨 핀란드 총리처럼, 2000년 자녀 출산을 앞두고 2주 휴가를 떠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처럼, 윤석열 대통령도 긴 법정휴가를 떠나시라. 그렇다고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가 망가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21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신영전 | 한양대 의대 교수
대통령의 일상은 고되다. 30분 간격으로 일정이 잡히고, 수시로 국가 존망이 걸리는 중요한 문제를 다뤄야 한다. 큰 사고라도 터지면 새벽에도 일어나야 하고 순간순간 말 하나 행동 하나 긴장의 연속이다. 하루 24시간이 근무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주 52시간(6일 기준 하루 8시간40분) 이상 근무를 제한하는 현행 근로기준법이 가소로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쉬자”며 법정근로시간 연장을 꺼내 든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왜 과로사한 대통령은 없을까? 이승만 90, 윤보선 92, 박정희 61, 최규하 87, 전두환 90, 노태우 88, 김영삼 87, 김대중 85, 노무현 62. 퇴임 대통령의 사망 나이다. 이명박(82), 박근혜(71), 문재인(70) 대통령은 현재까지 살아 있다. 한 사람 빼고 재임 중 숨진 대통령은 없다. 그 한 사람도 금요일 저녁 7시38분 연회 자리에서 사망했으니,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근로기준법상 근무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적어도 과로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노동자는 다르다. 지난해 국회 자료에 따르면, 2017~2021년 과로사한 노동자는 2503명이다. 해마다 500명 안팎이 과로로 목숨을 잃는다. 물론 이는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거나 제외된 1인 자영업자, 택배기사, 플랫폼 종사자 등을 뺀 최소 수치다.
이 궁금증에 답을 준 유명한 연구가 있다. 정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영국의 ‘화이트홀 연구’다. 이름은 정부기관이 밀집한 런던의 거리 이름에서 따왔다. 연구 결과는 남녀 모두에서 연령을 보정하고도 낮은 직급에 종사하는 것이 관상동맥질환 발생에 유의한 영향을 주는 것(교차비 1.5)으로 나타났다. 결정 권한과 노력-보상의 불균형이 영향을 미친 결과였다. 그나마 이들은 어쨌든 안정적인 공무원이었으니 불안정 노동을 하는 이들과 격차는 더 클 것이다.
부연하면 대통령이나 재벌 회장은 언뜻 보면 바빠 보이지만, 그들은 언제든지 자기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고, 일을 미룰 수 있으며, 노력에 따른 유·무형의 보상이 충분히 이뤄지기 때문에 아플 가능성이 작다. 그러고 보니, 서울로 잦은 출장을 다녀야 하는 국회의원은 힘들겠다 했더니 “그때가 쉬는 시간이지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차! 나처럼 관용차를 타보지 못한 사람은 미처 생각할 수 없던 말이었다. 그 국회의원은 차 안에서 잠을 잔 시간도 자신의 근무시간에 포함시킬 것이다. 반면 퇴근시간이 언제 갑자기 연장될지, 언제 호출 올지 몰라 무작정 기다려야 하고 노력한 만큼의 보상도 받지 못하는 이들은 같은 시간 일을 해도 훨씬 힘들다. 따라서 대통령의 노동시간은 노동자의 시간과 비교될 수 없다.
지난 21일 1천명이 넘는 직업환경의학 분야 학자와 의사 등으로 구성된 대한직업환경의학회는 노동부의 근로시간 개편방안이 뇌심혈관질환, 안전사고 등 그렇지 않아도 오랫동안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산업재해를 대폭 증가시킬 것이라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또한 정부의 야간근로 건강보호 방안 등은 실효성이 없으며 노동시간 감축이라는 세계적 추세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한국 근로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네번째로 길고 미국(1791시간), 프랑스(1490시간) 등과 비교도 안 될 만큼 길다.(2021년 기준) 스웨덴처럼 하루 8시간 이상 운전을 금지하고 운전 뒤 11시간 이상 쉬어야 하는 기준을 가진 나라도 많다.
1960년생인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63살이다. 칭송받든 받지 못하든 대통령이 임기 중에 사망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비극이다. 부디 장시간 노동에 과로하지 마시라. 1998년과 2000년 출산휴가를 받은 파보 리포넨 핀란드 총리처럼, 2000년 자녀 출산을 앞두고 2주 휴가를 떠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처럼, 윤 대통령도 긴 법정휴가를 떠나시라. 그렇다고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가 망가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8시간 가족, 친구들과 쉬고 즐기는 것은 천명이다. 하루 8시간 노동은 전세계 노동자들이 피 흘려 얻은 것이고 엄혹한 일제강점기에도 죽을 각오로 외쳤던 노동자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무엇보다 건드린 자는 반드시 망한다는 노동자의 역린이다. 그러니 줄이면 줄였지 법정 노동시간 늘리지 마시라. 무엇보다 세상에서 제일 나쁜 대통령은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나쁜 대통령임을 잊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