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제2공항 예정 부지. <한겨레> 자료사진
[전국 프리즘] 허호준 | 전국부 선임기자
국토교통부가 지난 8일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안을 고시했다. 환경부가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본안을 ‘조건부 동의’한 지 이틀 만에 나온 신속한 조치다.
앞서 2015년 11월10일 국토부가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를 제주 제2공항 예정지로 확정 발표할 당시 제주도지사는 원희룡 현 국토부 장관이었다. 도지사 재임 시절 정부에 제2공항의 조속한 건설을 지속해서 요구해왔던 원 장관으로서는 이번 환경부의 조건부 동의가 남다를 터다.
하지만 원 장관의 바람대로 제주 제2공항이 순조롭게 추진될지는 회의적이다. 이미 환경부가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관련 전문기관 검토를 받은 결과, 6개 기관 중 5개 기관에서 환경적인 우려를 표명하며 부정적 의견을 나타낸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국토부의 기본계획안 고시에 따라 제주도는 지난 9일부터 5월8일까지 주민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국토부는 기본계획 수립에 앞서 공항시설법에 따라 관할 지방자치단체장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지자체장은 14일 이상 주민에게 열람해 의견을 듣게 돼 있다. 그 일환으로 도민 의견 수렴 차원에서 ‘경청회’가 오는 29일부터 4월24일까지 3차례에 걸쳐 열린다. 여기에는 국토부와 용역진도 참석한다.
그러나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나뉘어 대립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경청회가 제대로 열릴지 의문이다. 이미 2017년부터 2019년까지 4차례에 걸쳐 진행된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 주민설명회나 입지타당성 재조사 도민설명회 등은 무산되거나 중단되는 등 파행을 겪은 바 있다.
제주도내 1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는 “제2공항 건설은 제주도민의 삶과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도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주민투표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 장관에 이어 제주도지사에 당선된 오영훈 지사는 지난해 당선자 시절부터 제2공항 문제에 관련해 머리를 맞대자며 원 장관과의 면담을 여러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10개월이 돼가도록 지금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제주지역에서 직전 도지사인 원 장관이 제주도를 ‘패싱’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제주도와 도의회의 협조 없이 국토부만 나서서는 제2공항을 순조롭게 추진할 수 없다. 제2공항을 건설하려면 기본계획 고시 뒤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돼야 한다. 국토부는 기본계획 고시에 이어 기본설계 절차를 진행하고 대규모 공사에 따른 환경영향 저감 방안을 마련하는 환경영향평가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환경영향평가의 주체는 제주도다. 이때가 오 지사가 언급한 ‘제주도의 시간’이 된다. 환경영향평가는 제주특별법과 관련 조례에 따라 제주도지사가 환경부의 의견을 수렴하고 제주도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제주도민 여론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제주 사회는 앞서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부지로 선정된 2007년 이후 벌어진 반대투쟁 과정에서 700여명이 연행됐고, 390여건이 재판에 넘겨졌다. 마을은 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지금도 해군기지 주변에는 ‘해군기지 반대’ 깃발이 펄럭이고 있으며, 그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과 소통 부재가 가져온 결과다. 제주도 출신으로 2014~2021년 제주도지사를 지낸 원 장관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오 지사는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원 장관을 두고 “전직 지사로 있었고 2공항 갈등 현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분이어서 상당한 협조체제를 기대했지만 지금의 2공항 대응은 매우 이해할 수 없다”고 불편한 심정을 토로했다.
원 장관은 제주도지사 재임 시절 소통을 강조해왔다. 제주 최대의 현안이자 국책사업이나 다름없는 제2공항 건설 문제를 놓고 장관과 도지사가 만나 소통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찬성과 반대 주민 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은 지방정부만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몫이기도 하다. 이젠 소통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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