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제3회 국립공원의 날 기념식이 열린 광주 무등산국립공원에서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한 환경부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우리나라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못하다. 환경과 생태적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측면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환경과 생태에 비할 바는 아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무대응과 무관심, 에너지의 과도한 사용과 낭비, 일상화된 국토 훼손, 생물 종의 급격한 감소, 일회용품 쓰레기의 남발 등등. 부끄럽기 짝이 없는 성적표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국제적으로 기후악당 국가로 불리는 이 나라가 ‘녹색행보’를 제대로 못 한다는 것은 실은 새로운 소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번 2월27일 일어난 일에 비하면 모두 아무것도 아니다. 그동안 일어난 그 어떤 일보다, 그 어느 반환경적 노선보다 압도적이다. 바로 환경부가 설악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해준 충격적인 사건 말이다. 국가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정부부처인 환경부가 보란 듯이 내놓은 결정이다.
그간 너무도 형편없었던 한국의 환경 및 생태분야 실적 중 그래도 봐줄 만한 것을 하나 꼽자면 이것이었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지 않은 일. 뭔가 한 것보다 안 한 것의 의미가 더 중요했던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엎치락뒤치락이 있었지만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를 막아냈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했다. 적어도 2023년 2월26일까지는 그랬다. 왜냐하면 자연세계 특성상 환경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은 보통 계속해서 지켜낸다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강산이 4번 이상 바뀔 세월에도 여태껏 케이블카가 불허됐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체계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갈팡질팡하면서도 궁극에 가서는 존재 이유에 합당한 결론을 내렸고, 이는 대상 자연에 대한 객관적,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했다.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 등 무려 5개나 되는 감투로 설악산이 얼마나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지 만천하에 공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국가체계가 거의 작동하는 듯했다. 지난달 초 환경 전문기관 5곳이 이 사안을 검토한 끝에 반대 또는 부정적 의견을 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환경영향평가 전문기관인 한국환경연구원(KEI)은 다음과 같은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 “오색케이블카가 산양 서식지를 교란하고 상부 정류장으로 인해 아고산대 지형이 크게 훼손되는 데 견줘, 사업자가 제시한 보전 대책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저감하기 어렵다.” 제아무리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봐도 케이블카 자체가 일으키는 부정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환경부는 추가 조사와 저감방안 마련을 조건으로 허가를 해줬다. 케이블카라는 시설물 자체가 그곳의 자연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는 게 분명한데 대체 뭘 어떻게 저감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 기막힌 묘안이 가능키나 하다면 그것이 제시된 다음에 다시 결정할 사안이지, 이미 될 것으로 간주하고 허가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설악산의 자연생태는 2019년 환경부가 케이블카 설치에 부동의 의견을 냈을 때도, 지난 40년 동안에도 변한 것이 없다. 갑자기 케이블카가 들어서도 무방한 생태가 된 게 아니다. 이곳만은 자연을 지키자며 지정한 국립공원은 그 총면적이 국토의 5~6%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흑산도의 예처럼 개발하기 위해 해제되기도 한다. 결국 절대 안 되는 것도 끈질기게 떼를 쓰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선례를 남긴 것밖에 더 되나? 필자는 몇년 전 설악산 케이블카가 승인됐던 날을 지칭해 ‘생태적 국치일’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하지만 그땐 결국 무산됐다. 2023년 2월27일이 진짜 생태적 국치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