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ChatGPT)가 등장하자 교육계 등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고등수학 분야 등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이는 새로운 기술이 순수과학 발전에는 도움될 수 있다는 암묵적인 공감대 때문 아닐까. 게티이미지뱅크
김민형 | 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최근까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던 영국의 정치인 J는 공석에서 부족한 지식을 바탕으로 별 근거없는 논리를 그럴듯하게 전개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았다. J의 어떤 황당한 연설이 구설에 오를 때면 내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전형적인 옥스퍼드 교육의 산물'이라는 농담섞인 말이 오갔다. 교수와 만나 토론하는 ‘튜토리얼' 수업이 중요한 옥스퍼드대학에서는 배경지식과 뚜렷한 사고력 없이도 주워들은 문장들을 그럴싸하게 짜붙여서 달변을 늘어놓는 학생을 자주 목격한다는 이야기였다.
모방과 진정한 이해의 차이가 무엇인가는 상당히 오래된 인식론적 질문이다. 1980년대 철학자 존 서얼의 사고 실험 ‘중국어 방'은 이 질문에 관한 다양한 시각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떤 방 안에 갇힌 사람은 중국어는 못하지만 중국어 질문과 그 질문에 따른 답변 목록을 가지고 있다. 중국어 문장이 쓰인 종이를 문 밑으로 건네받으면 그는 목록을 참고해 적당한 반응의 중국어 문장을 적어 바깥으로 건넨다. 이 경우 바깥에서는 그가 중국어를 잘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서얼은 주장한다. 서얼은 이 실험에서 인공지능을 상징하는 중국어방을 통해 ‘이해'와 ‘이해의 모방'의 경계를 보여주며 인공지능의 한계를 보여주려 했다. 교육자 입장에서는 이 경계의 모호함을 너그럽게 받아드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학생을 오래 가르치다가 보면 모방 섞인 이해가 깊은 이해로 바뀌기도 하고 나 자신의 이해가 일부 모방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부단히 발견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ChatGPT)가 세계적인 관심 대상이 되면서 교육계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특히 논술형 과제가 문제가 된다. 여러 사람이 해본 실험에 의하면, 기계는 제시된 주제에 관한 괜찮은 수준의 수필을 쓰는 능력이 특히 뛰어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챗지피티가 정치가 J 정도 학위를 받을 실력이 될지도 모른다. 서얼의 ‘중국어방' 수준 에세이도 써낼 수 있지 않을까.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수학계에서는 큰 걱정이 (아직은) 제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즉, 대학교 수준의 수학은 실력평가 성격상 인공지능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는 인상이다. 이는 몇십년 전 비슷한 ‘위기'를 겪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계산기가 일상화될 무렵 수학계는 고민에 빠졌고, 평가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숙제나 시험을 변형시켜야 했다. 그렇지만 현재 계산기는 상당히 중요한 교육적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교 미적분학 강좌 등에서 계산기의 적절한 사용은 학생의 이해를 크게 증진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교육과 평가의 영역을 벗어나, 진리 그 자체를 탐구하는 과학계에서는 계산기와 비슷하게 챗지피티 같은 도구가 적극적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인 목적인 세상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사용할 수 있다는 개념적 기회주의가 연구자들 사이에 성행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덕분에 가능해진 과학의 발전은 당연히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몇년 전 신문에 실린 은하계 중심 블랙홀의 사진은, 고성능 계산기와 데이터 과학이 가능하게 만든 인간의 첨단 탐구능력을 대변한다. 또, 아직 기능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 양자컴퓨터는 노벨 물리학상 주제가 될 만큼 과학적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다양한 인공지능이 과학연구에 적용되면서 챗지피티 같은 초대형 언어 모델이 줄 수 있는 도움 또한 기대 대상이다.
계산물리학 박사과정을 밟는 학생 하나가 컴퓨터를 이용해 아인슈타인 방정식을 푸는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꽤 오래된 연구주제지만 더 효율적인 계산법을 찾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 학생은 새로운 방법론에 관한 논문을 쓰다가 주아이디어를 실현할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기계가 한번에 프로그램을 짜줄 능력은 없지만, (때로는 터무니없는) 오류 섞인 초안도 긴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히 유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요점은 연구목적이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해를 이용한 우주의 성질 탐구다. 여기서 코딩은 부수적인 작업이어서 길고 짜증스러운 일을 대신 해줄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코딩하는데 할애할 시간을 훨씬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불가피하게 만드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최대한 안정적으로 반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물론 중요한 정치적 과제다. 그러나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학자로서는 인공지능의 시대가 제시해 주는 가능성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