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기계와 대화하는 시대, 당신의 준비는? [로버트 파우저, 사회의 언어]

등록 2023-02-15 18:47수정 2023-02-16 02:07

인공지능(AI)이 탑재된 스마트스피커가 몇년 새 널리 보급됐는데, 지난해 연말엔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ChatGPT)가 공개돼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의식하지 못하던 사이 ‘기계와의 대화’가 인간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이 탑재된 스마트스피커가 몇년 새 널리 보급됐는데, 지난해 연말엔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 챗지피티(ChatGPT)가 공개돼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의식하지 못하던 사이 ‘기계와의 대화’가 인간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로버트 파우저 | 언어학자

며칠 전 부엌에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동네 오래된 가게 사장 아들이 와서 작업했다. 그는 집에 있는 ‘알렉사’ 스피커를 보더니 자신도 최근에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알렉사’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아마존의 에코스마트스피커다. 써보니 어떠냐고 물으니, 편리하지만 쓸 때마다 필요없는 ‘땡큐’의 남발이 번거롭고, 기계와의 대화가 아직은 익숙치 않다고 했다.

내가 ‘알렉사’를 사용한 지 3년이 지났다. 익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신기할 때가 많다. 장난치듯이 영어의 여러 방언이나 어투로 질문해도 거의 백퍼센트 정확하게 답한다. 설치 언어를 스페인어로 바꾸면 내 스페인어 말하기 실력을 점검할 수도 있고, 듣기 연습도 된다. 설정 가능한 언어가 늘어날수록 다양한 단어와 표현을 말하고 들을 수 있게 되니 원하는 외국어 학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블라인드 설치를 끝낸 젊은이에게 나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하지만 알렉사와는 아무리 오래 대화해도 서로 인사하지는 않는다. 원하는 답을 얻으면 대화는 끝난다. 물론 기계에 불과하니 감사를 표현할 필요가 없다. 내가 고맙다고 해도 알렉사는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대화의 마지막은 늘 어쩐지 어색하다. 어색하다고 느끼는 이 감정은 어떤 걸까.

모든 사람은 하루에도 다양한 언어 코드를 사용한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처음 배울 때 반말과 존댓말 구분을 어려워한다. 한국인들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하루에도 여러번 반말과 존댓말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그때마다 용법에 맞는 어휘와 동사 어미를 잘 선택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한국어만 그런 건 아니다. 모든 언어는 상대방에 따라 말을 조절한다. 이를 통해 의사소통하고, 나아가 말을 넘어 관계도 조절한다.

말을 전혀 이해못하는 존재와 말할 때도 있다. 아이들은 태어난 뒤 한동안 말을 못한다. 부모는 스킨십과 동시에 꾸준히 말을 건넨다. 아기에게 걸맞은 어조로 ‘베이비 토크’를 한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도 비슷하다. 쓰다듬으면서 반려동물을 향해 말을 건넨다. ‘페트 토크’다. 이런 ‘토크’의 공통점은 목소리 톤이 높고 문장은 단순하다는 것이다. 질문을 많이 하고, 말 못하는 상대방 대신 직접 답하는 경우도 많다. 대화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워 보이지만 이런 대화가 상대와의 애정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기계는 다르다. 일상적으로 대화하듯 말을 끊거나 같은 말을 달리 말하면 기계는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답을 내놓는다. 무엇보다 명확한 답을 얻기 위해 말을 조절한다. 그래서 짧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을 주로 쓴다. 명령에 대한 반응이 좋기 때문에 명령형을 사용한다. ‘페트 토크’와 비슷해 보이지만 활동을 뜻하는 동사보다 구체적인 명사가 많다. ‘에이아이 토크’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기계와의 대화는 인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베이비 토크’나 ‘페트 토크’ 같은 전례가 없으니, 사람들은 각각 알아서 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사회에 보급되면 사회적 관습 형성은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뒤돌아보면 컴퓨터, 휴대폰, 에스엔에스(SNS) 역시 처음에는 각자 알아서 사용하다가 어느덧 만들어진 관습에 익숙해져 있다. 에이아이 토크도 초반이라 어떤 사람은 대화를 끝낼 때 기계와 감사인사를 나누며 대화를 끝내고, 또 원하던 답이 나오면 그걸로 끝인 사람들도 있다.

글을 써주는 챗지피티(ChatGPT)가 큰 화젯거리다. 학생들이 숙제와 보고서를 이걸로 작성할 수 있어 학교마다 비상이 걸렸다. 나아가 치열한 인공지능 경쟁시대가 본격 시작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기술개발을 위한 막대한 투자가 한창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그렇게 생각하면 앞으로의 시대는 땡큐 여부는 문제가 아닐 듯하다. 기술 발전으로 인공지능의 말은 더 정교해질 것이고, 사람과 소통이 늘어날수록 인공지능 안에 정보도 쌓여 상대방에 따라 적절하게 어투와 어조를 조절하게 될 것이다. 인사로 대화를 마치는 이에게는 인사로, 말 없는 이에게는 또 말없이, 반말로 하면 반말로, 존댓말로 하면 존댓말로.

자,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숙제가 생긴다. 날로 이렇게 똑똑해지는 기계와 인간은 어떤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할까. 단순한 정보의 원천? 반려동물 같은 삶의 동반자? 불편한 삶을 해결하는 생활보조자? 어떻게 어떤 관계를 만들어나갈 것인지 정한다면, 기계는 거기에 맞는 어투로 우리 말에 답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은 왜 이리 구차한가 1.

윤석열은 왜 이리 구차한가

윤석열의 ‘1도 2부 3빽’과 백색테러 [유레카] 2.

윤석열의 ‘1도 2부 3빽’과 백색테러 [유레카]

헌재에서 헌법과 국민 우롱한 내란 1·2인자 3.

헌재에서 헌법과 국민 우롱한 내란 1·2인자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원이 필요하다 4.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학원이 필요하다

트럼프·조기대선 ‘불확실성’의 파도 앞에서 [뉴스룸에서] 5.

트럼프·조기대선 ‘불확실성’의 파도 앞에서 [뉴스룸에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