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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일본의 통화정책, 과연 변화할 것인가

등록 2023-02-13 18:28수정 2023-02-14 02:40

지난해 12월20일(현지시각)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금융정책결정회의 관련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도쿄/교도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2월20일(현지시각)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금융정책결정회의 관련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고 있다. 도쿄/교도 로이터 연합뉴스

[세상읽기]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정부 부채가 그렇게 많은데 위기에 빠지지 않고 돈을 아무리 풀어도 물가가 높아지지 않는 등 일본은 여러모로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다. 이제 전세계가 일본의 신기한 통화정책에 주목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일본만 긴축이 아니라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은 마이너스 금리와 수익률곡선 통제정책으로 대표된다. 2013년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을 통해 본원통화를 증가시키며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간접투자하는 양적, 질적 완화 통화정책을 실시했다. 본원통화를 2년 안에 2배 증가시켜 인플레이션 2%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아베노믹스가 쏘아올린 첫번째 화살이었다.

아베노믹스는 1990년대 이후 오랫동안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에 시달린 일본 경제를 재생하기 위한 적극적인 거시경제 부양책이었다. 1990년대 초 엄청난 버블 붕괴로 인한 대차대조표 불황과 디플레이션으로 축소균형에 빠진 일본 경제를 돈을 풀어 다시 팽창시키겠다는 시도였다.

2016년 일본은행은 또 한번 파격적인 통화정책을 도입했다. 1월 일본은행은 금융기관들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과도한 지급준비금에 마이너스 금리를 매겼다. 9월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장기와 단기 금리 모두를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수익률곡선 통제정책을 도입했다.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과 매각을 통해 10년 국채금리를 0%로 유지하기로 했는데 이는 장기금리를 직접 통제해 투자를 촉진하고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기 위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 회복은 더뎠고 2% 인플레이션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베 정부는 2020년 막을 내렸지만 지금도 일본은행의 파격적인 통화정책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부터 회복하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이 급등하자 미국 연방준비제도 등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인상했지만 일본은행만 요지부동이다. 일본의 인플레가 다른 국가에 비해 낮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일본은행은 긴축을 시작해 인플레와 경기부양에 실패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커지자 엔화 평가절하 압력이 매우 커졌다. 실제로 지난해 엔화 환율은 계속 올라 10월에는 달러당 150엔을 찍기도 했다. 일본은행은 확장적 통화정책 고수와 엔화가치 유지 사이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헤지펀드들은 일본은행이 저금리를 더는 고수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하고 일본 국채금리 상승에 베팅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결국 지난해 12월 10년 국채금리의 변동폭을 0.5%로 확대하는 예상 밖의 결정을 내렸다. 구로다 총재는 통화정책의 변화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금리인상 효과를 냈다. 이 결정 직후 10년 국채금리는 0.5%로 치솟았다.

이후에도 일본 국채 매도가 계속돼 일본은행은 금리를 유지하기 위해 1월 한달 동안 사상 최대인 무려 23.7조엔의 국채를 사들였다. 한편 지난달에는 기존 금리 변동폭을 유지하는 동시에 일본 금융기관들에 국채를 담보로 한 대출을 확대해 국채 매입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금리라는 돈의 가격을 결정하는 금융시장 기능이 마비되고 있다는 비판과 이미 국채의 절반을 보유한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 지속가능성에 관한 의문의 목소리가 높다.

구로다가 퇴임하는 4월 이후 일본은행은 과연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꿀 것인가. 기시다 총리는 다음 총재로 경제학자인 우에다 가즈오를 임명할 계획인데 그는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지지한 인물이다. 아직 인플레와 경기회복이 정착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완화적 통화정책은 당분간 계속되며 매우 천천히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엔저로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까지 높아졌지만, 일본은행은 여전히 이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파악한다.

오히려 통화정책 전환의 계기는 임금인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정체된 임금이 올라야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로다도 임금이 높아지고 인플레가 정착된 이후에야 통화정책의 출구전략이 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최근에는 높아진 물가를 배경으로 임금인상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확산하고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결국 일본 통화정책의 미래는 물가-임금 상승의 선순환이 나타나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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